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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Dec 16. 2023

끝, 그리고 시작 2

  해가 바뀌면서 전 세계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휘말렸다. 여기저기서 확진자가 홍수처럼 터져 나왔고, 그 중심에 대구가 있었다. 길거리조차 텅텅 비는 날이 많았다. 사업장도 피해갈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사람을 구경하기가 가뭄에 콩 나듯 하였고, 매출은 날이 갈수록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임대료도 밀리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끝을 향하여 곤두박질치는 중이었다.


   J도 마지막 길을 걷고 있었다.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거듭하다가,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하루가 다르게 코로나가 번져가는 상황이라 면회도 갈 수 없었다. 다만 꺼져가는 숨결에 귀를 기울이듯, 문자로만 그녀를 흔들어 깨울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J도 늦게라도 답을 보내왔다. 짧은 답이었지만 아직 살아있다는 손짓 같았다.  먼 길을 떠나기 전날 밤 그녀는 꿈에서나마  나를 잠깐 찾아와 주었다. 이십대의 젊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친구야, 이 문자를 마음으로 읽을 것이라 믿으며 보낸다. 간밤에 네 꿈을 꾸었구나. 이십대 우리 젊은 시절로 돌아갔었지. 오랫동안 못 봤던 친구들도 몇몇 보이더구나. 봄에 가자고 했던 꽃구경을 갔단다. 넌 여전히 꽃보다 더 예뻤어. 보고 싶다고 했더니 꿈에까지 찾아와줘서 정말 고마워. 친구야 우리 왜 더 일찍 만나지 못했을까. 너의 따뜻한 손을 잡고 수다도 마저 떨고 싶은데. 친구야 오늘은 조금 더 편안해지기를, 몸도 마음도 더 아프지 말기를 간절히 빈다. 꿈에서가 아니라 진짜 얼굴 볼 수 있기를.’     

 잠시 후 J의 남편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그녀가 긴 투병 생활을 접고 기어이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짧은 만남 이후 또 다시 긴 이별이다. 영정사진은 꽃밭에서 찍은 사진이다. 꽃보다 J가 더 예쁘다. 남편과 두 아들은 이승의 꽃밭에다 망부석처럼 앉혀둔 채다. 아마도 이들 부부는 수도 없는 이별 연습을 해왔을 터였다. 한 고비 한고비 넘길 때마다 꾹꾹 다져왔을 울음일 테다. 어미를 잃은 두 아들의 눈은 컴컴한 동굴 속에 갇혀 있다. 저들은 또 언제쯤 저 동굴 밖으로 빠져나올 수가 있을까. 생과 사가 원래 그러하듯 떠나는 자는 말이 없다. 슬픔은 오히려 남겨진 자만의 몫이 된다.


  언제부턴가 장례식장 근처에만 오면 쪽머리가 아파왔다. 떠난 자와의 인연이 깊을수록 그 통증은 더 강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심상찮더니 점점 깨질듯이 아파온다. 조문을 마친 친구들과 옆 칸 식당에 모여 앉았다. 할 말이 많을 것도 같은데 또 그다지 말들이 없다. 한 친구의 죽음 앞에서 수다를 떨 기분도 아니지만, 그보다 세월의 서먹함이 먼저 가로막고 있었다. 나오면서 J의 영정 사진 앞에 다시 마주섰다. 아프던 쪽머리에서 작은 음성이 들려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고마웠어. 너도 용기를 내. 그래도 넌 사랑하는 가족들이 곁에 남아 있잖아.’  

   

  불교에서의 죽음이란, 이승에서는 이별이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만남이라고 했다. 기독교에서도 천국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이제 남은 자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위한 기도뿐이다. 그래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저마다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일 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 역시 끝을 향해 달리고 있지만, 이 끝이 정말 끝이 아니리라. 또 그렇게 십년이 지난 후 문득 뒤 돌아다볼 때, 지금 이 순간 역시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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