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닮다
가을의 길목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낙엽의 잔치는 어느새 끝나버린 후다.
가을은 반백을 넘긴 중년의 모습이다. 그것도 곧 들이닥칠 겨울을 코앞에 둔 나의 모습 같다. 마음 같아서는 가을이 오는 길목을 멀찌감치 돌아서 가고 싶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마저 들린다. 찬비가 한 두 차례 지나고 나면 밟히는 낙엽마저도 땅 속으로 스밀 것이다. 우중충한 하늘을 보다가 비보다 한 발 앞선 옛 기억에 젖어든다.
어렸을 적은 단독 주택에 살았었다. 마당에는 텃밭 같은 작은 정원이 있었고, 철따라 목련을 시작으로 철쭉, 장미, 무궁화가 피고 또 졌다. 가을 한복판은 노란 모과와 대추가 달려 있었다. 그 시절에는 가을이 참 귀찮게 느껴졌다. 낙엽이 마당 여기저기를 뒹굴 때면 그 낙엽을 치우는 일은 맏딸인 나의 몫이었다. 바람이 한번 지나가면 낙엽은 날 놀리기라도 하듯 내 발밑을 쫓아 다녔다. 나도 꾀를 내어 나무를 흔들거나 빗자루로 때려도 보았다. 하지만 언제나 비웃듯 낙엽은 요리조리 도망쳐버렸다.
낙엽에 눈이 뜨인 것은 소녀 시절부터다. 그 나이엔 누구나 한번쯤은 시인을 꿈꾸지 않을까. 굴러가는 낙엽만 보고도 까르르 웃던 시절이다. 가을이면 중 고등학교마다 시화전이나 문학제등이 열렸다. 그때마다 기다렸단 듯 어설프게 적은 시와 그림으로 시화전에 참여하곤 했었다. 상도 여러 번 받았던 것 같다. 아마 그 시절 꾸다 만 시인의 꿈이 있어 지금도 글을 긁적거리는지 모르겠다.
인생에도 계절이 있다. 봄인가 싶었던 계절이 어느덧 겨울이듯 인생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나는 따뜻한 봄도, 펄펄 끓는 여름도 다 지난 가을이다. 목석같던 내 마음도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내가 이 계절 한복판을 지나가고 있음이다. 게다가 뼈아픈 인연이 떠난 계절도 가을이어서 일까. 가끔씩 아련한 아픔이 밀려오기도 한다. 물론 가을이 무조건 싫지만은 않다. 현재 나에게 가을이란 아름다움과 슬픔이란 두 감정이 애매하게 공존하는 계절이다.
만물이 이 땅에 왔으면 또 돌아 갈 때가 있는 법이다. 그 돌아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은 건 아마 인간만이 가지는 욕심일 테다. 벌써 겨울이 성큼 다가섰다. 올해는 떠나가는 가을 자락에 시라도 한 편 부쳐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