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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Sep 28. 2023

옹이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 작품 - 선정수


  구두 수선집에 고개를 들이민다. 어뜩비뜩 툭 불거진 옆구리가 민망하다. 다 닳은 밑창보다 신발 옆구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자꾸만 벗나가는 엄지를 버텨 온 신발도 힘들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수선집 아저씨가 묻지도 않는데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그래도 이 신발이 편해서….”     


  성한 신발이 몇 켤레 없다. 엄지가 들앉은 자리는 신발도 딱 그 모양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스크래치도 그 부분이 심할 수밖에 없다. 견디다 못한 가죽도 김밥 옆구리 터지듯 실밥이 터지기가 일쑤다. 다행히 실밥만 터지지 않으면 최대한 늘어난 신발이 엄지에게는 오히려 더 편하다. 구두 수선집을 나서는데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주인을 닮은 발이나, 발을 닮은 신발이나 거기서 또 거기인 게다.  

   

  무지외반증이라 했다. 엄지발가락이 거의 십오 도 각도로 누웠다. 병원에서도 수술을 권했다. 수술 날짜를 잡았다가 취소한 지도 벌써 십 년이 넘는다. 그동안 부대낀 세월만큼이나 엄지는 더 각을 세워 누워버렸다. 관절이 약한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나름의 사연도 한몫을 거들었다. 지난날 매일 삼백 배 기도를 한 적이 있다. 아마 그때 무리가 갔던 것 같다. 갑자기 찾아온 엄지의 통증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한번 휘어진 뼈는 돌이켜 세울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뼈를 깎고 철심을 박는다고 그랬다. 몇 날을 고심하다 결국 수술을 최대한 미루어 보기로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사십 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다. 그 후 특수 신발에 발가락 교정기까지 총동원을 시켰다. 통증은 증상이 처음 시작되던 초기가 가장 힘들었다. 그것도 잠시 삶의 마디가 무디어지듯, 엄지의 뼈마디도 차츰 무디어 갔다.    

  

  베란다에 있는 나무들도 한결같은 방향으로 누워 있다. 마치 자석이 끌어당긴 듯 태양이 비치는 창 쪽을 향해 비스듬히 휘어져 있다. 나무야 밝음을 향하느라 휘었지만, 엄지의 굽은 등은 주인의 외골수를 향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몸이 보내오는 신호도 가끔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었는데, 난 늘 일방통행이었다. 그런 주인의 고집을 닮아 엄지는 더 벗나가 버린지도 모른다. 게다가 돌부리에 이리저리 차이느라 굳은살마저 두툼하다. 부지런히 걸어야만 나아갈 수 있는 길 위에서 엄지는 어느새 휘다 못해 나무의 옹이를 쏙 빼닮아 버렸다. 

     

  사실 나무의 옹이는 줄기가 견뎌 온 인고의 흔적이다. 바람에 부러지고 산짐승에 꺾인 그루터기 상처에 몸부림치듯 새살이 돋은 것이 바로 옹이다.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아마 더 단단한 옹이로 박혔을 테다. 목재가구에 무늬진 옹이의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오히려 흠 하나 없이 매끈한 가구보다 옹이 진 가구에 자꾸 눈길이 머문다. 나도 모르게 무늬진 세월을 한 번 더 어루만지게 된다. 그 무늬가 크면 클수록 그것은 다름 아닌 상처와 바람을 잘 견뎌 낸 나무만의 훈장이기 때문이다.  

    

  나무의 옹이는 자신을 더 단단하게 지키려는 방어 수단이다. 반면에 인간의 마음에 박힌 옹이는 자신을 갉아먹는 벌레와도 같지 않을까. 돌아다보니 세월 여기저기에 옹이가 박혀 있다. 이는 나에게도 저 나무들처럼 빌붙을 그늘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조금이나마 나누어 가질 양분이 있었기에 그 밑에서 서로 부대끼느라 얻어진 생채기일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말 없는 나무는 온몸으로 옹이를 품지 않는가. 그 또한 자신의 일부로 같이 성장하는 것이다. 나 또한 마음의 옹이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다부지게 걸어왔으리라.  

   

  이제는 걸음마저 뒤뚱거린다. 그렇다고 걸어온 길마저 휘지는 않았다. 멋쟁이 여자들처럼 하이힐은 신어 보지도 못했지만 투박한 통굽일망정 당당하게 걸어온 길이었다. 길은 곧은길만 있지 않았다. 자꾸만 휘어지는 길 위에서 갖은 용을 쓰느라 엄지는 더 굽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도 나름은 잘 살려고 몸부림친 반증일 테다. 세월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이 다름 아닌 발이지 않은가. 갈수록 드러눕는 그림자마저 삐뚤어지지 않을까, 신발 속에서 더 바짝 숨죽이며 버텨 왔을 터이다.  

     

  가끔씩 왔던 길을 톺아본다. 오랜만에 마주친 길에서는 금방이라도 예전의 길로 돌아갈 것만 같다. 하지만 왔던 길을 되돌아가더라도 똑같은 길을 밟을 듯싶다. 여전히 고집은 한 방향을 가리킬 테고, 융통성도 없이 쭉 곧은길만 고집하겠지. 결국 그 길 위에서 또다시 넘어지다 일어서는 반복을 할 것 같다. 그렇게 넘어지고 아파한 자리에는 더 많은 옹이가 또 박힐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들이 하나의 물결처럼 마음의 무늬로 남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나무도 옹이를 끌어안고 더 단단한 줄기를 세우듯, 마음에 박힌 옹이가 있기에 인생의 나무도 더 단단한 뿌리를 내리는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깊어져야 할 그림자는 아직도 바람에 휘청거린다. 수양버들처럼 아량 깊은 그늘은 더더욱 아직 없다. 하지만 먼동은 어둠을 건너왔기에 더욱 밝듯, 나무도 벌레가 먹고 바람이 할퀸 자리에 차오른 옹이가 단단한 법이다. 마음도 또한 마찬가지겠지. 단단히 아문 상처에는 더 튼튼한 결실이 익어 가길 바랄 뿐이다. 등 굽은 나의 엄지를 내려다본다. 무거운 세월을 같이 버티느라 옆의 발가락마저 덩달아 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나무의 옹이처럼 나를 지탱해 온 버팀목이다. 

    

  이제는 벗어 둔 신발만 봐도 그 속내를 들켜버린다. 비록 볼품없이 굽어버린 엄지이지만, 이도 역시 밝음을 향하여 살아온 흔적일 테다. 그래, 세월의 바람을 잘 견뎌 낸 바로 나만의 훈장인 게다. 구두 수선집을 나서는 두 어깨에 햇살이 슬며시 힘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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