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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정수 Jul 12. 2023

날개를 접는다는 것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 작품 - 선정수

   새들도 날개를 접는다. 길도 없는 길 위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 저 높은 허공에서도 잠시 날개를 접는다.     

 산에서 막 내려오던 길이었다. 큰 새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돌진하듯 날아오던 새가 한순간 허공에서 날개를 접었다. 몸은 허공에 둥실 떠 있는 채였다. 잠시 후 새는 눈여겨본 나무까지 날아가서야 비로소 날개를 파닥이며 사뿐히 내려앉았다. 새는 자신의 가속도를 줄이기 위해 잠시 날개를 접은 것이었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허공이지만, 날개를 접음으로써 다시 날개를 펼칠 힘을 얻는다는 것을 새는 알고 있었다.     

  온 세계가 삶의 날개를 잠시 접은 지도 어느덧 삼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온 세계가 들썩거렸다.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흡사 폭풍이 지나간 듯하였다. 그 폭풍 속에서 나 역시 팔 년 동안 운영해 오던 가게의 문을 닫았다. 힘들게 꾸려온 가게였지만 문을 닫을 때에는 한순간이었다. 생업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어디 나뿐이었을까. 그로 인해 잃은 목숨이 또한 얼마이던가. 언제쯤 끝이 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이제나마 그 힘들었던 터널의 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마스크 착용도 점차적으로 해제되고 있다. 최근에는 대중교통이나 실내에서의 의무적 착용마저도 해제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눈치를 살피는 중이다. 불안한 마음이 여태 남아 있는 까닭이다. 심지어 사방이 탁 트인 산책로에서도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더러 있다. 사실 가끔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 편할 때가 있다. 아마 마스크라는 또 하나의 가면으로 얼굴뿐만 아니라 속마음까지도 가리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들은 삼 년의 시간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또 너무 많은 것에 익숙해져 버렸다. 오랜 시간 날개를 접은 까닭에 날개를 펴는 방법도 잊은 것은 또 아닌지.      

  나무에 앉은 새는 잠시 날개를 가다듬더니 더 높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개를 접을 때와 다시 펼 때를 아는 것이 바로 새들의 지혜인가 보다. 잠시 허공에 줄을 매단 듯 접었던 날개는 이제 더 크게 파닥이며 하늘 높이 오르는 중이다. 요즘의 일상이 또한 그러하다. 멀어졌던 사람들과의 관계도 서서히 회복 중이다. 커피숍이나 식당에도 예전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지루했던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날개를 펼쳐 더 높이 날아오를 일만 남았으리라.     

  그동안 나에게도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그 와중에 친정엄마까지 돌아가셨다. 자식들은 이미 중년을 훌쩍 지난 나이지만, 마치 둥지를 잃은 새가 따로 없었다. 바람이 이리 저리 뒤척이는 사이 우듬지에 홀로 앉은 아버지는 점점 말을 잃어 가고 있었다. 한쪽 날개는 부러지고, 남은 날개마저 퍼덕일 기력을 잃은 듯하다. 그럴 때마다 엄마 산소에 자주 모시고 간다. 아버지에게는 꽃구경이니 단풍 구경이 따로 없다. 엄마 산소에 모시고 가는 날이 아버지로서는 접은 날개를 잠시 가다듬는 날이기에.     

  나 역시 서서히 날개를 펼치는 중이다. 어릴 적 꿈을 뒤늦게 좇아가고 있다. 날개가 있는 줄도 까마득히 잊고 살아온 세월이었다. 수십 년 고이 접어 두었던 작가라는 꿈의 날개를 매일 파닥이는 중이다.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날아오를 리는 만무하다. 아마 수도 없는 곤두박질을 치는 과정에서 굳었던 날개에도 조금씩 힘줄이 돋고 피가 도는 것이리라. 접혔던 세월만큼 더 간절한 날갯짓에 바람도 등을 떠밀어 주리라. 엄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 

 ‘이제 네 날개를 활짝 펼쳐 보렴.’     

  그날 등산로에서 보았던 새는 엄마의 화신이지 않았을까. 접었던 날개일수록 더 크게 펼칠 수 있다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 잠시 다녀간 것이리라. 얼마 전 이국땅 해변에서 그 새를 다시 만났다. 바닷가 언덕을 아들과 산책 중이었다. 언덕에서 마주친 새는 날개를 활짝 펼친 채 우리와 한동안 눈을 맞추었다. 바람조차도 잠시 정지한 듯싶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듯 손을 흔들어 주자, 새는 그제야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큰 날개를 펼쳐 더 높이 훨훨.     

  사실 그 새가 그 새일 수는 없다. 엄마를 그리는 마음이 새로 투영되었으리라. 하지만 그 새의 날갯짓이 많은 것을 일깨워 주었다. 길에서 길을 찾느라 쉼 없이 달려온 인생길이 아니던가. 돌부리에 넘어지고 부러진 날개를 이제는 더 높이 파닥이라며, 그날 그 새가 일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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