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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라니 Mar 06. 2024

두 딸과 어학연수 가기

출발 전

처음에는 신랑이 반대했다.

대기업을 다니는 자기 주변에는 어학연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없다고.

자금처인 신랑이 반대하니,

내 의지와 무관하게 포기하게 되는 것이 싫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큰돈인데, 그도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필리핀 마닐라는 위험한 곳이니 걱정이 앞선 것은 당연하리라.


Hannah의 소개로 어학원을 소개받았다.

내 자식이면 거길 보내겠다는 말에 그동안 알아본 견적들을 더 이상 살펴보지 않고 그녀의 말을 믿고 목적지를 정했다.


1월 5일 출국을 앞두고,

12월 21일 밤 신랑이 평소와 다른 목소리를 나를 불렀다.

자다가 깬 나는 상황파악을 미처 하지 못했고,

그의 옷을 주섬주섬 챙겼다.

신랑은 그날 차로 5시간 거리의 시댁에 홀로 달려갔다.


시아버지는 뇌출혈이었다.

골든타임이 4시간~6시간 인 것을 신랑이 출발한 후 유튜브로 검색해서 알았다.

출혈량이 많아 시술로 안되고 개두수술을 했다고 한다. 충격을 줄이기 위해 한 달간 중환자실에서 수면을 하며 안정을 찾아야 된다고 들었다.


신랑에게 자세히 묻는 것이 혹여 그의 신경을 거스를까 봐 듣기만 했다.

그리고 어학원 원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시아버님께서 뇌출혈이시라 가기 어려울 것 같다고 카톡을 보냈다.

원장님께서는 쾌차를 빈다고 정중한 말씀을 해주시며, 계약금은 마닐라의 연휴가 끝나면 되돌려 주시겠다고 하셨다.

임박한 시간임에도 그렇게 큰 배려를 해주신다니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필리핀에어아시아로 티켓을 취소하려니,

 얼리 체크인도 한 상태라 그런지 원칙은 취소 불가라고 AI가 말해준다.

비행기값 125만 원은 날렸구나 싶다.

그게 뭐 대수랴.

신랑은 내가 있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어학연수를 가라고 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두려웠다.


신랑이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시아버지는 수술 후 바로 의식이 돌아오셨고,

불편한 것을 못 견디시셔서 간호사분을 힘들게 했다는 일화를 들으니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괜찮아지셨구나! 다행이다.


신랑은 어학연수비를 계산을 해서 주었다. ’ 아끼며 살아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의 방식으로 아이들과 잘 놀다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우리에게 좋은 기회를 쥐여준 신랑에게 감사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5시간 거리의 시댁으로 갔다. 시어머니의 두려움과 외로운 시간을 함께 하러 아이들과 다녀왔다. 가지 않을 걸 그랬다는 나의 말에 어머니는 아이들이 배우는 게 우선이라고 있어도 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는 3일 동안 짐을 쌌다. 인터넷에서 필요한 것들을 모두 넣기에는 인당 7킬로, 총 21킬로의 수화물은 턱없이 부족한 것만 같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서 나의 능력을 믿으라는 봄비님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언제든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는 동생들과 친구의 지원이 마음을 두둑하게 했다. 가장 큰 지원군인 남편은, 출근길에 데려다준다. 아침에 눈을 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갔다.


"파도를 헤치고 앞을 똑바로 보고 전진하라고.

운명의 주인이 되어 생각의 방향을 스스로 조종하는 선장이 되라고 말이다. "

-모든 삶은 흐른다. 로랑스 드빌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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