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덕분입니다.
동생이 정신없이 있다가 지갑 잃어버리지 말라고 카톡으로 당부했다. 이제 애들이 6살 9살인데, 내가 그러겠냐라는 안일함으로 걱정 마 짧은 답문을 보냈다.
필리핀에 입국하려면 e-travel이 필요하다고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그때는 한창 짐을 싸고 있던 때라, 미루고 미루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라떼 한잔을 주문하고야 이 트래블 작성을 시작했다.
그때서야 원장님께 우리가 머물 숙소 주소를 물어보고 기타 등등을 작성하니 한 시간 정도 흘렀다.
원래는 남동생과 출국장에서 같이 이른 점심을 먹자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남동생은 얼른 체크인을 하라고 했고,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고 느릿느릿 아이들과 패딩을 집으로 부칠 한진택배로 이동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의 박스비 (개당 만원)에 놀라 우체국으로 갔다. 먼저 수화물을 부쳐야겠다고 생각했고 체크인을 하러 갔다. 줄을 서서 나의 차례가 되려면 30분 정도 걸리겠다 예상을 하던 찰나, 여권이 보이지 않았다. 숄더로 매던 에코백에 넣어둔 파우치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여권 봤냐고 물으니 아이들은 당연히 모른다고 한다. 여권이 없으면 비행기를 못 탄다는 생각에 이른 순간, 동선을 생각하다 한진택배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보관해 주신 상해에서 산 파우치를 건네주신다. 고스란히 들어있는 우리들의 여권 3개. 감사합니다!! 당신이 저를 살렸습니다!! 그 직원분은 담담히 자신의 일을 하셨을 뿐이었지만, 우리 셋이 마닐라에 갈 비행기에 오를 결정적 은인이셨다.
체크인을 하러 에어아시아로 갔다. 20킬로인 우리의 짐을 15킬로와 5킬로로 나누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직원분의 조언에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그때 11시 30분까지 체크인을 마쳐야 탑승할 수 있다는 그녀의 이야기의 깊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이는 우리가 비행기를 놓칠까 봐 불안한지 승무원과 이야기를 하는 사이, 비행시간 놓치며 어떻게 하냐는 걱정을 한다. 아이에게 너의 걱정이 지금 이 상황에 도움이 되냐고 다그치던 나였다. 아이들은 체크인하는 곳 근처의 벤치에서 기다리라고 다른 곳으로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우체국에서 박스를 2개 샀다. 하나에는 입고 있던 패딩 3개를 부치고, 다른 하나에는 수화물을 나누어 담았다. 무슨 정신으로 짐을 정리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어리둥절한 채 나를 지켜볼 뿐이었다.
수화물을 2개로 만들어 부치고, 우리는 각자 캐리어를 3개 끌었다. 줄이 엄청났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전기모기채 반입이 안 된다고 수화물에서 빼야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죄송해요 저 못 가는데 그냥 버려주세요.” 직원분은 다행히 비밀번호 설정이 안된 수화물이라 처리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비행기표를 보여주고 지나가려는데, 항공티켓에서 성과 이름이 바뀌었다고 다시 항공사 체크인 한 곳으로 가 확인 스탬프를 받아와야 한다고 한다. “저 비행기 놓쳐요”라는 나의 절규는 지엄한 규정 앞에서 헛된 메아리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티켓 체크하는 곳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열심히 항공사로 달려간다. 승무원은 나에게 스탬프를 찍어주고 우선 티켓을 함께 주었다. 그렇게 지나가도, 보안검색대 앞의 인파도 엄청 많았다. 느긋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며 발을 동동 구를 뿐이었다. 시간을 체크하는 순간마다 숨이 막혔다.
12시 15분쯤 되었나. 아이들과 나의 캐리어가 하나씩 통과되는 가 싶더니, 가방을 열어보라고 한다. 이제는 비행기를 놓치는 가 싶었다. 가방을 열어보니 사인펜이 우두둑 쏟아지고, 아이의 가위가 나왔다. 짐을 쌀 때 아이의 가위가 있어서, 수화물로 옮기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나를 부르던 신랑. 그 장면이 휘리릭 지나갔다. 아뿔싸! 떨어진 사인펜과 가위를 보며 버려주세요라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아이는 자신이 아끼는 물건이니, 안된다고 머뭇거렸다. “버려! 엄마가 가서 사줄게!!” 캐리어 문을 닫으려던 찰나, 지퍼가 고장 났다. 저 캐리어도 버려달라고 해야 하나, 이제 끝났나 싶었다. 그 순간, 보안검색대의 예쁜 아가씨가 반대쪽 지퍼로 잠가주는 센스를 보여줬다. 감사합니다!
그다음 캐리어도 열라고 한다. 액체가 있다고. 열어보니 아이의 치약이 나왔고, 별다른 액체는 없었다. 그렇게 지퍼를 닫고 아이들과 나는 다시 각자의 캐리어를 끌고 트레인을 타고 이동해야만 했다. 트레인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에스컬레이터 위 둘째는 당연히 달리지 못했다. 뛰다가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니, 나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에스컬레이터에서 주저주저할 뿐이었다. 심지어 둘째 아이는 넘어졌다고 한다.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첫째는 두 캐리어를 잡고 어쩌지를 못했다. 성큼성큼 올라가 캐리어 두 개를 들고, 다음 트레인을 기다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12시 25분쯤이 돼서야 트레인을 타고 잠시 후 내렸다. 107번 게이트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어떻게 시작한 일인데, 결국에 나는 비행기를 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달리고 또 달렸다. 부재중 전화가 온 줄도 몰랐다. 우리를 찾으러 승무원이 게이트 근처에서 우리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12시 30분 탑승 마감인데,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33분이었다. 간신히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주르륵 흐르는 땀을 느끼며 카톡을 열어보았다. 비행기에 탑승했는지 묻는 원장님의 메시지가 왔었다. 드디어! 탔습니다!!라고 보내고 싶었지만, 친밀한 사이가 아님에, 네! 탔어요! 이따 뵙겠습니다! 짧은 문자를 드렸다. 신랑에게도 탔다고 문자를 보냈다. 눈물이 날 뻔했다.
엄마의 무게를 덜어주고자 애써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동생과 함께 있어준 첫째에게 고맙다.
그런 아이가 너무나 고마운 데도, 다급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아이의 행동에 날카로움을 쏟아낸 나의 부족함에 한없이 미안할 뿐이다.
엉성하고 부족한 내가 대처하기 어려운 순간에 짠 나타나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큰 도움을 주신 한진택배 직원분, 항공사 승무원, 인천공항 보안검색대 직원 분들. 두고두고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