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인연으로 계약한 가게에 아내는 공방을 꾸미기 시작했다. 양모를 수만 번 찔러 인형을 만드는 니들 팰트 공예 공방이었다.
남달이 손재주가 뛰어났던 아내는 그림 그리기, 목공, 디자인, 캐릭터 만들기, 아무튼 손으로 하는 능력은 대단했다. 공방을 꾸미는 일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보였다. 책상에서 의자, 소품까지 미리 준비해 놓았던 사람처럼 착착 놓이면서 가게의 내부는 더욱더 빛을 발했다.
드디어 공방을 개업하고 수강생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내의 공방은 생각대로 잘 운영되지 않았다. 가끔 아주 가끔 한 명의 수강생이 원데이 클래스를 하기 위해 오는 정도?
공방을 사업으로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 시작한 공방은 본인의 작업실 정도가 적당한 표현이다. 시작한 지 6개월 정도가 흘러서 공방은 아내의 작업실이 되었다.
그런데 작업실로 쓰기엔 1층 공간은 내가 보기에 너무 아까웠다. 아내는 2층에서 작업하기를 좋아했다. 1층에서 작업하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들어와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런 일이 아내에게는 작업 패턴을 흩트려 뜨리는 일이었다. 집중이 안된다고 본인은 말했다.
‘그럴 거면 그냥 2층 작업공간을 얻었으면 될 것을……’
임대료는 그런 작업실보다 3배 정도 비쌌다. 처음에는 수강생을 받아 수익을 발생시키면 운영에 문제없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배우러 오는 수강생은 거의 전무했다.
바로 이때다! 나의 빅픽쳐를 펼칠 기회다.
조심스레 아내에게 딜을 했다. “여보, 1층이 너무 아까운데…… 내가 1층에서 커피를 좀 팔아보면 어떨까?”
답변은 의외로 쉽게 나왔다. “할 거면 제대로 해봐”
나의 건의가 통했다.
여담으로 사기를 당한 이후 나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아내의 충고가 있었다. 아직도 내 명의로 된 신용카드 한 장 없다. 나는 요즘 트렌드의 선두주자 “와카남” (와이프 카드 쓰는 남편)이다. 참고로 지금도 주민등록상의 세대주는 아내로 되어있다……
그동안 아내도 1층이 내심 신경이 쓰였나 보다. 작업은 2층에서 하는데 1층이 낭비되는 느낌이랄까?
꿈이 현실이 되는 나에게는 그 어떤 영화보다 드라마틱한 순간이었다. 공장생활에 지쳐가는 중에 하나의 희망의 돌파구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나의 작은 카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