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작은 용기
김사랑의 마음속 저울은 이제 나오직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지난 몇 주간, 그녀는 더 이상 미팅이나 소개팅에 나가지 않았다.
'이상형'이라는 허상에 매달리던 시간들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에는 이제 나오직의 진심과 그의 묵묵한 존재감이 가장 빛나 보였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소중한 사람을 옆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는지 후회했다.
나오직은 여전히 변함없이 그녀의 곁을 지켰다.
그녀가 힘들어 보이면 말없이 따뜻한 음료를 건넸고, 과제에 어려움을 겪을 때면 언제든 달려와 도와주었다. 그의 헌신적인 모습은 이제 김사랑에게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더욱 흔들고, 그에게 미안함과 동시에 깊은 애정을 느끼게 했다.
어느 날, 학교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오직은 컴퓨터정보과 부스에서 사용할 복잡한 프로그램을 짜느라 밤샘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끼니도 거르는 그의 모습은 김사랑의 눈에 안쓰럽게 비쳤다.
그녀는 평소 같으면 신경 쓰지 않았을 일이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의 피곤한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나오직, 너 괜찮아?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
김사랑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나오직은 고개를 저으며 애써 웃었다.
"괜찮아. 거의 다 끝나가. 이것만 마무리하면 돼."
그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역력했다.
김사랑은 잠시 망설이더니,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
잠시 후, 그녀는 따뜻한 죽과 비타민 음료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이거라도 좀 먹어. 밤새도록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
나오직은 김사랑이 내민 죽을 보며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사랑아… 네가 이걸 왜…"
"빨리 먹기나 해. 너 쓰러지면 누가 이 프로그램 완성할 건데?"
김사랑은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나오직은 따뜻한 죽을 한 숟갈 떠먹었다.
그의 입안에 퍼지는 따뜻한 온기만큼이나, 김사랑의 진심 어린 걱정이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쌌다.
그는 그녀의 작은 변화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오지랖과 순아름은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순아름은 김사랑의 변화에 감격한 듯 오지랖의 팔을 툭 쳤다.
"봐! 내가 뭐랬어! 사랑이도 이제 나오직 마음 알아주는 거지?"
오지랖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드디어 내 오지랖이 빛을 발하는군!"
그날 밤, 김사랑은 나오직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노트북 화면을 쳐다봤다.
복잡한 코드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저 나오직의 열정과 노력이 보였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나오직이 돌아와 잠든 김사랑을 발견했을 때, 그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겉옷을 벗어 그녀의 어깨에 덮어주었다.
다음 날 아침, 김사랑은 순아름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름아… 나, 나오직이 좋아진 것 같아."
순아름은 김사랑의 고백에 환하게 웃으며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드디어 네가 나오직의 진심을 알아봐 주는구나! 얼마나 마음고생 심했는지 알아?"
김사랑은 순아름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의 복잡했던 감정들이 눈물과 함께 흘러내리는 듯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나오직의 곁에서 그녀는 진정한 편안함과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작은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나오직에게 너무나도 무심하고 이기적이었던 자신을 그가 과연 받아줄까? 그녀는 이제 용기를 내어 나오직에게 다가가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녀의 짝사랑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