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알아보다-
거대 괴물들이 나타난 첫날 밤은 지옥 같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세 줄기 빛이 떠올랐다.
부산에서는 이순신이라는 노인이 바다의 분노를 일으켰고,
경기도에서는 임꺽정이라는 사내가 칼춤으로 괴물을 베어냈다.
그리고 저 높은 하늘에서는 홍길동이라는 이가 구름을 타고 날아다녔다는 소문이 돌았다.
공식 발표는 없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괴물을 물리친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빠르게 퍼져나갔다.
영웅의 시대가 시작될 조짐이었다.
부산 앞바다.
이순신은 젖은 옷을 갈아입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손끝을 움직이자 바닷물이 그의 의지대로 일렁였다.
꿈인가 생시인가.
평생을 바다와 함께 살았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저 괴물들. 다시 나타난다면 또 막아야 할 터.
그는 자신의 새로운 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책임감. 그리고... 함께 싸워야 할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
경기도의 도축장.
임꺽정은 피가 묻은 칼날을 닦아내며 이를 갈았다.
팔에 아직도 엄청난 힘이 남아있는 것을 느꼈다.
괴물의 끈적한 살점을 베어낼 때의 그 쾌감이란!
"쳇, 시시한 놈들."
그는 힘껏 칼을 바닥에 내려찍었다.
땅이 갈라졌다.
이 힘이라면 어떤 괴물이라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라는 것도 알았다.
전국에서 괴물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
어딘가에 자신처럼 괴물과 맞서는 이가 또 있을까?
그들과 함께라면...
지리산 상공.
홍길동은 구름 위에 앉아 멀리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보니 세상의 혼란이 더욱 극명하게 느껴졌다.
괴물들은 물러갔지만, 공포는 여전히 땅 위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구름을 타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세상을 살폈다.
그때, 도시 쪽에서 희미하게 무언가 빛나는 것을 보았다.
단순한 불빛이 아니었다.
강한 기운. 괴물의 기운과는 또 달랐다.
그리고 다른 방향에서도 비슷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자신과 같은... 혹은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존재?
그는 본능적으로 그 기운들을 향해 구름을 몰기 시작했다.
세 개의 기운은 서울, 그
중에서도 가장 번화한 광화문광장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 첫날 나타났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흉측한 괴물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괴물은 단순히 빌딩만 한 것이 아니라, 몸에서 독성 가스를 뿜어내며 주변 모든 것을 부식시키고 있었다. 경찰과 군인이 다시 막아섰지만, 독성 가스 때문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절망의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광화문 광장 한쪽에서 거대한 물기둥이 솟아올랐다.
물기둥은 회오리가 되어 독성 가스를 빨아들이고 괴물을 향해 휘감아 들어갔다.
저 멀리서 달려온 이순신이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근엄하면서도 기백이 넘쳐났다.
"감히 이 나라의 심장을 더럽히려 드느냐!"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우렁찬 기합 소리와 함께 엄청난 속도로 달려온 사내가 괴물의 다리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에서 괴물의 다리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바로 임꺽정이었다.
"이놈! 네놈 고기 맛 좀 보자!"
그리고 하늘에서,
한 줄기 빛처럼 홍길동이 구름을 타고 내려왔다.
그는 괴물의 머리 위를 맴돌며 약점을 살폈다.
아래에서 이순신과 임꺽정이 괴물을 막는 모습을 보며 눈빛이 동그래졌다.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세 명의 영웅은 아직 서로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지만,
거대하고 흉측한 괴물이라는 공동의 적 앞에 비로소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물을 다루는 자, 힘으로 모든 것을 베어내는 자, 하늘을 나는 자.
운명이 그들을 불러 모았고,
이제 그들은 함께 싸워야 했다.
이것이, 히어로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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