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속으로
광화문 광장에는 쓰러진 거대 괴물의 시체와 함께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을 깨는 것은 오직 세 사람, 이순신, 임꺽정, 그리고 홍길동의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방금까지 죽음을 넘나들며 함께 싸웠던 이들은,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서로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낯선 이들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괴물을 함께 제압하며, 그들 사이에 끈끈한 무언가가 싹튼 것을 느꼈다.
이순신은 피 묻은 검을 땅에 꽂으며 엄숙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주름과 함께 전쟁터를 누빈 노장의 고뇌가 서려 있었다.
"당신들 덕분에 큰 위기를 넘겼어요. 혼자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적이었지만...
이 괴물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경고와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임꺽정은 쓰러진 괴물의 단단한 비늘 껍질을 툭 발로 차며 껄껄 웃었다.
"하하! 이 징그러운 놈 하나 치웠다고 끝날 리 있겠습니까!
저는 땅의 기운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가만히 서서 땅이 계속 뒤틀리고 하늘이 어두워지는 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건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뭔가가 이 나라 전체를 덮치고 있는 모양입니다.
마치 썩어가는 그림자처럼 말이오."
그의 웃음 속에는 호탕함과 함께 짙은 경계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이 위협이 지금까지 겪어온 어떤 것보다 거대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홍길동은 가볍게 땅에 내려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아야 할 푸른 하늘에는 희뿌연 먹구름 같은 기운이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의 예리한 눈빛이 하늘 곳곳을 살펴보았다.
"맞아요. 저는 하늘을 떠다니며 직접 봤습니다.
광화문 광장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이미 많은 도시가 그 어둠에 물들어 있었어요.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있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존재로 변해버리기도 했어요.
알 수 없는 사악한 기운들이 대기 중에 가득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젊은이다운 걱정과 함께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힘이 단순한 것이 아닌,
세상을 구하는 데 쓰여야 할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세 사람은 다시 한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방금 전 괴물과 싸울 때와는 다른 종류의 결의가 담겨 있었다.
눈앞의 괴물은 물리쳤지만,
지금 언급되는 '어둠의 세력'은 형체도 불분명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위협이었다.
통일 한반도를 집어삼키려는 이 악몽 같은 그림자가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럼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이순신이 물었다.
그의 질문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것이자,
이 낯선 동료들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 오랜 세월 배만 만들었지, 괴물들과의 싸움은 처음이었다.
임꺽정이 허리춤의 묵직한 칼을 고쳐 잡으며 답했다.
그의 거친 손은 수많은 도축으로 손이 상해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찌하긴! 눈앞에 닥친 징그러운 놈들 때려잡았듯이,
이 어둠의 근원을 찾아가서 뿌리째 뽑아버려야지!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순 없지!"
그의 눈빛에 강렬한 의지가 불타올랐다.
그는 타고난 도축꾼에다가,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눈앞에 닥친 위협을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 임꺽정의 방식이었다.
홍길동은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국민들을 돕고 싶었지만,
이렇게 거대한 스케일의 재앙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둠은 한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바람처럼,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어요.
우리가 여기서 지체하는 매 순간, 더 많은 땅과 사람들이 그 그림자에 물들 겁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서둘러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조급함과 함께 책임감이 묻어났다.
그는 이 어둠을 막지 못하면 사랑하는 국민들이 모두 위험해진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순신은 옆에 선 두 사람을 보았다.
한 명은 땅처럼 굳건하고 호탕한 힘을 가진 임꺽정,
다른 한 명은 하늘처럼 자유롭고 예리한 눈을 가진 홍길동.
그리고 자신은 바다처럼 깊고 단단한 의지를 가진 이순신.
물과 힘, 그리고 하늘.
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왔지만,
지금 이 순간 운명처럼 하나로 뭉쳤다.
이들과 함께라면,
이 거대한 어둠에도 맞설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그의 가슴에 피어올랐다.
"좋소. 당신들의 말이 옳소."
이순신이 결연하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불안감이 아닌,
새로운 전투를 앞둔 장수의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그럼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군.
이 광화문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목부터 살펴봅시다.
어둠이 시작된 곳은 분명 흔적을 남겼을 것이오."
세 영웅은 쓰러진 괴물을 뒤로한 채,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순신은 굳건하고 흔들림 없는 걸음으로,
임꺽정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거침없이,
홍길동은 가볍게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라 앞길을 살폈다.
통일 한반도를 집어삼키려는 어둠의 그림자 속으로,
물과 힘과 하늘,
세 가지 기운이 하나로 뭉친 세 명의 히어로가
함께 나아가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