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를 가다.
국민학교 여름방학을 시작과 동시에 중랑구 망우3동 혜원여고 언덕아래 놀이터가 바로 있는 다세대 주택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이곳에도 방이 달린 가게였다.
더 좋았던 것은 마당을 중심으로 마당 끝 쪽에 방과 조그만 부엌 있는 방이 추가가 되었다.
그 방은 형과 할머니가 잠을 청했고, 가게에 달린 방은 부모님과 내가 잠을 잘 때 사용했다.
그해 여름엔, 4화의 글처럼 나는 교통사고로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입원할 동안 할머니가 저를 간호하시는라, 불편한 보호석에 쪽잠을 주무셨다.
나도 보호자로서 병원에서 잠을 청할 땐, 많이 불편했었는데, 40일이 넘는 시간이 얼마나 지루하셨을까~?
그때만 해도 당연한 듯 별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에서 생각해 보면 할머니께 감사하고, 보고도 싶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짙어, 초겨울이 조금 못 미칠 때에, 전학할 국민학교에 첫 등교했다.
학교 등하교를 몇 주를 했는지, 금세 겨울 방학이 찾아왔다.
이렇게 몇 해가 지나고, 엄마의 둘째 언니인 이모댁이 그 다세대 주택의 주인이 돼서, 2층으로 이사를 왔다.
이모네 댁을 설명하자면, 망우리 우림시장 쪽에서 열심히 연탄을 배달해서 이 주택의 당당한 주택의 주인이 되셨다.
다세대 주택에는, 2층에 이모댁, 아래층 우리 가정과, 이웃한 다른 가정이 살고 있었다.
그 다정한 가정에는 중년이 조금 넘은 부부와 대학생정도 보이는 누나들이 살았다.
나는 1층과 2층이 나의 세상이 된 거 마냥 위아래 두루 다녔다.
2층 올라가는 계단은 1층 세대랑 분리되어, 밖의 골목길 도로 가게 끝 부분에 따로 있어, 마당에서 2층으로 바로 올라갈 때는 아버지가 급조로 만든 사다리를 계단 삼아 올라간다.
마당 끝에 자리 잡은 화장실은 공용이라 그 안에서 용변 보는 소리가 다 들린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을 하시길
"에고, 저 양반 화장실에서 용케 힘쓰시더구먼, 가 실리고 그랬나 봐~"
우리 다세대 이웃가정의 아저씨가 돌아가시고, 얼마 있다가 이사를 가셨다.
한 10년 전에 어머니한테, 그때의 이웃 아주머니에게 안부 전화 왔었더라고 했다.
지금 잘 사시고 계시더라고....
알고 보니, 쌀가게를 하면서 현금거래를 많이 했던 아버지가, 같이 있는 동안 현금을 종종 빌려 주곤 하셨단다.
그러니 가끔씩 연락도 오고, 연이 이어지듯 하다.
비워진 그 거실 딸린 방은 우리가 이용하고, 형과 할머니가 머물렀던 방에는 어느 젊은 누나가 묵었다.
우리의 부모님 살림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린나이 가스레인지를 설치하고, 빨래 물을 쫘악 짜주는 통돌이 탈수기도 사고, 시원한 바람에 몸 둘 바를 모르는 선풍기를 사고, 편리하게 사용하는 제품들도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컴퓨터를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을 지인에게 들으셨고, 우리를 위해 바로 대리점으로 데리고 가서 그때 돈 70만 원을 현찰로 주고 구입하셨다.
5.2인치 플로피 DOS를 이용해 사용했던 16비트 컴퓨터였다. 컴퓨터 전문브랜드 갑일전자의 최신 컴퓨터였다.
아버지는 알파벳도 모르시고, 사용할 줄 모르니 오로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공부는커녕 컴퓨터는, 게임기로 전략해 버렸다.
가게의 반은 복덕방 할아버지가 사용하셨는데, 그 복덕방은 할아버지들의 노인정 같은 곳이었다.
닭똥집이나 닭발 같은걸 고추장에 잘 볶아 드실 때마다, 우리도 맛 좀 보라고 나눠 주시곤 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가 가게에 달린 방에서 우리 다섯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가게 쪽 방문 밖으로 새시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엄마가 손님인가 해서 문을 활짝 열었다.
여닫이 새시 문을 활짝 연채 서있는 흰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랑 엄마랑 눈이 마주쳤다.
복덕방에 일이 있는 모양새다.
생긴 것도 도시 깍쟁이처럼 생겼는데 말도 그러했다.
약간 말투에서 사람 하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뭘 봐~~! 사람 처음 봐~~!"
그 말을 들은 엄마가 황당했는지, 짜증 나는 어투로 혼잣말로 말했다.
"모라는 거야. 참~"
그걸 들은 흰색 원피스 입은 여자가
"모라 그랬어요?"
"우리 가게에서 어떤 손님 왔나 보는 게 모 잘 못 됐어요?"
"모라고요?"
"아이, 이 미친년이~!"
밥 먹다가, 엄마랑 이 흰색 드레스 입은 여자가 뒤엉켜 몇 분 동안 싸웠고,
아버지랑, 그 여자랑 함께 온 정장을 말쑥히 입은 남자가 말려서 싸움은 다행히 중단되었다.
그 일로 인해, 또 다른 그와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가게 한 장소에 복덕방과 쌀가게를 분리하는 장벽이 새워졌고, 그 장벽을 아버지가 손수 짜셨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술에 과하게 취한 아저씨가 저녁에 가게로 와서 행패를 부렸다.
그분의 말은 이러했다.
"너희 어머니랑 우리 어머니랑 그렇게 잘 지내는 데, 그깟 쌀 외상값을 꼭 받아야겠어~~??"
그 아저씨집에서 우리 가게에서 여러 번 쌀을 외상으로 가져갔고,
외상값을 달라 독촉한 게 기분이 상했나 보다.
그리고 할머니끼리 친하게 지낸다는 핑계를 대며 행패를 부렸다.
나랑 눈이 마주쳤는데, 물고 있던 담배를 " 너 이 집 자식이냐?" 하면서 내 면전으로 던졌다.
난 그 순간 깜짝 놀라 그 순간을 피했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데, 어린이 얼굴에다 담배를 던지는 인간은 지금 생각해 봐도 인간 말종이다.
아무튼 그때에는 여러 가지 히스토리가 있었다.
가게를 비웠다가, 가게방 장롱에 조심히 숨겨 놓았던 장사밑천 돈을 도둑맞은 적이 있다.
거래 가게에 화물차에서 쌀을 옮기고 있을 때, 차문을 열고 차속을 뒤져, 돈만 쏙 훔쳐간 일도 있었다.
그 돈 또한 장사 밑천이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하나님께 더 의지하고 기도했던 것 같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기도를 들으셨는지, 곧 회복시켜 주셨다.
이모부는 1층 현관대문 앞에 포도나무를 심어 놓으셨다.
여름만 되면 포도가 주렁주렁 열었고, 다 익기 전에 하나둘 따먹다가 엄마한테 걸려 혼나기도 했다.
그 포도 맛은 내가 먹어본 딸기들 중에 가장 맛있었다.
그리고 이모부는 대문 위 콘크리트 바닥 공간에다가 부추도 키우셨는데, 그곳에는 여름즈음만 되면 방아깨비 새끼들이 땅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난 신기해서 그곳에 하루 종일 머무른다.
또, 마당에서 강아지도 키웠는데, 이름이 "뽀삐"였다.
복덕방 할아버지의 개가 새끼를 낳아, 그중 한 마리를 키워 보라며 분양해 주셨다.
더운 여름이면 시원한 마당 그늘에 앉아, "뽀삐"를 괴롭히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형은 집 앞의 교회 친구들이 매일 집을 드나들 정도록 친구가 많아 집에서 기타 치며 복음성가를 불렀고,
난 국민학교 친구였던, 중학교 같은 반이 된 친구는 매일 학교 같이 가자며 집을 들렀다.
그 친구도 아파트에 이사 갈 때까지 항상 학교에 같이 등하교했다.
"OO 야~, 학교 가자~~!!"
어느 날, 식사 도중에 아버지는 이번에는 아파트 청약이 안 됐다며, 어머니랑 하던 말씀을 기억한다.
그 후 며칠이 지나, 신문에 아파트 청약 공고가 올라 와 있었다.
난 그 공고를 보고, 바로 아버지한테 보여 주었다.
바로 방학1동 옛 태평양 패션 공장 부지에 아파트가 지어진다는 공고였다.
"교회에서도 가깝고, 괜찮네!"
하고 아버지는 바로 청약을 하셨다.
이번에는 청약에 당첨되어, 우리 집도 아파트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형과 나는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을 마무리할 때 즈음까지 망우리에 많은 추억을 남겼다.
형은 다행히 1호선 전철로 세정거장만 가면 되기에 고등학교가 더 가까워졌지만, 난 멀어져서 중학교를 망우리에서 방학동으로 전학하게 되었다.
-7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