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APT

- 아파트생활의 시작

by 만을고옴

아버지와 어머니가 열심히 일하신 대가로 1994년 겨울, 우리 다섯 식구는 아파트에 드디어 입성하게 되었다.

방학동, 학이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을 보고 방학이라는 설과, 이곳 지형이 학이 알을 품는 자세이거나 학이 날아가는 모습이라 방학동이라 부른다 한다.

그 방학동 한가운데에 아버지의 명의로 된 우리 가족의 첫 집이 생기게 된 것이다.

10층 높이의 작은 방에서 보이는 도봉산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인 자운봉의 위엄은 정말 대단했다.

또한 창밖의 밑에서 보게 되는 주택들의 조밀조밀 모여있는 모습등이 신기했다.

이제는 겨울에도 집안에서 따듯하게 샤워할 수 있었다.

엄마는 가족들 음식을 차릴 때 부뚜막 같은 부엌에서 상차림을 들고 방으로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어졌다.

좌식 식사에서 벗어나, 거실 주방의 식탁에서 가족들이 옹기종기 의자에 앉아 식사하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아버지는 처음으로 거실에 놓을 장으로 전축과 거실장, 텔레비전이 한 세트로 묶인 전축장을 거실 벽에다 놓고, 반대편에 소파를 놓았다.

안방에는 침대가 놓였다.

처음으로 사용하는 좌석식 양변기를 사용할 때는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양변기 없으면 너무 불편하다.

내 나이 14살이 질 무렵에, 친구들 집들을 보면서 부러웠던 장면들이 나에게도 펼쳐진 것이었다.

전보다 나아진 새로운 생활은 나의 내면의 자존감도 높아주는 듯했다.

아파트에 이사를 하면서 우리 가족의 삶이 180도의 전환을 이루었다.

옛 전통적인 불편한 주거 생활에서 서양식 편리한 주거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쌀가게도 집에서 가까운 노원구 중계동의 아파트 단지에 둘러 씨인 단지 상가점포를 임대하여 옮겼다.

집과 교회의 중간 지점에 가게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마 아버지는 교회 봉사도 하고 출퇴근도 자유로운 곳이 바로 중계동이었을 것이다.

옮긴 가게에서 장사가 그럭저럭 잘 된 것 같았다.

틈만 나면 가게에 가서 부모님을 도우곤 했다.

쌀배달을 한다거나, 가게 광고물을 돌린다거나 했었다.

그때부터였다.

아버지는 정미소에 쌀 100 가마(1 가마 = 80kg) 정도의 양을 주문을 하신다.

그러면 큰 8톤 이상의 화물 트럭에 쌀이 실어져 가게로 배달된다.

화물용어로 짐을 하나하나 내리는 것을 까대기 라고하는데,

그 100 가마는 40kg 포대로는 200포대, 20kg 포대로는 400포대가 된다.

그때 그 시절에는 80kg 포대 자루로 1 가마니가 유통되는 시절이었다.

나는 80kg을 15살 나이에 어깨에 짊어지고 2미터 정도 걷다가 끝내 땅에 떨구었다.

허리가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1년, 2년이 지나면서 자연히 80kg 포대 자루는 사라지고, 40kg 포대만 유통이 되었다.

40kg은 충분히 어깨에 짊어질 수 있는 무게이기에, 매번 쌀을 주문하실 때면,

아버지는 나와 형을 매일 불렀다.

쌀가게 안에 쌀을 천장까지 차곡차곡 넘어지지 않게 쌓는다.

아버지는 이렇게 쌀이 무너지지 않게 쌓는 것도 다 기술이리고 하셨다.

쌀을 짊어질 때도 다 기술이라고 오로지 힘으로 하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렇게 1995년으로부터는 우리 집도 풍요로웠던 것 같다.

내가 고등학교가 들어가고 얼마 있지 않아, IMF가 시작되었다.

TV 뉴스에선 영세업자 사장들의 자살뉴스 등이 빗발치고 있었고, 대기업에서는 구조조정이 이루어졌으며,

그때만 하더라도 유명했던 재벌 그룹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구조조정을 당해 실업자가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부채를 끼고 사업을 하던 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사업자금에 부채금액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 힘들었다던 시절도 무난히 넘길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장사하는 사장님들은 자기 자본금으로 사업들을 했기 때문에 장사하시던 분들에게는 IMF가 그리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리라.

그런 어려운 시기도, 이겨낼 만큼만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때의 점포들은 지금처럼 휘황찬란하게 가게를 인테리어 해서 운영하는 곳은 별로 없었던것 같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지금의 시작하는 자영업자 분들은 일단 인테리어에 많은 비용을 쓴다.

그리고 무시 못할 임대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매출이 많아 수익이 나도 몽땅 임대료로 나가기에, 주머니에 남는 돈이 별로 없다.

요즘의 돈은 가치가 너무 떨어져서, 그 많은 돈을 감당하려면 대출을 이용할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조금만 경제가 휘청여도 지금의 자영업자들은 같이 휘정거린다.

그러다가 결국 신용 불량자가 되고, 문을 닫게 된다.

지금의 자영업자들은 그때 IMF때랑 다르게, 현재의 힘든 시기를 혼자 버티고 있는 듯 하다.


난 90년대가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의 항금기었다라고 생각한다.

과거와 미래가 공종 하던 그때가 너무 그립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 나는 한국의 전환기와 인생의 전환기를 같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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