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고
독후감
‘꿈꾸는 책들의 도시’.. 이 소설의 제목을 접했을 때 묘한 흥미를 느꼈다.
그동안 많은 소설을 비롯한 다양한 책들을 읽어왔지만, 제목에 ‘책’이라는 단어가 들어있기는 거의 처음인 것 같다. 과연 책을 소재로 하여 어떻게 흥미를 끌만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이 소설을 처음 몇 장을 읽을 때만 해도 앞부분의 전개가 너무 지루하게 이어져서 이런 나의 우려가 맞아 들어가는 듯했다. 적어도 주인공인 힐데군스트 폰 미텐 메츠가 고향 린트부름 요새를 떠나 부흐하임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부흐하임!
‘책 마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은 주인공 미텐메츠에게뿐만이 아니라 내게도 굉장한 흥미와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걷잡을 수 없는 희열과 흥분,
그리고 억누를 길 없는 호기심이 나를 부흐하임으로 이끌었고, 미텐메츠의 발길을 따라 부흐하임의 곳곳을 여행하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부흐하임 여행은 예측 불허의 상상과 사건이 펼쳐지는 경이로운 모험의 연속이었다.
‘책’과 ‘문학’이라는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소재로도 이렇게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엮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희열을 느끼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수천 개가 넘는 서점들과 독서에 필요한 갖가지 도구들을 파는 가구점과 안경점들이 즐비하고, 거리 모퉁이마다에 있는 찻집에서는 하루 이십사 시간 벽난로에 불을 피워놓고 시인들의 작품 낭독회가 열리며 작가와 시인들이 최고의 스타로 인기를 누리는 도시.
온갖 형태의 인쇄물들을 작은 바퀴가 달린 서가나, 작은 차에 담거나, 아니면 등에 메는 자루나 손수레에 담아서 끌고 다니며
싸게 파는 상인들과 ‘살아있는 신문들’이라 불리는 신문기사 조각들을 발라서 붙인 종이옷을 뒤집어쓴 발 빠른 난쟁이들이 여기저기 길을 누비고 돌아다니며 문학계에서 나온 최신 삼류 가십들을 선전하다가 지나가는 행인들한테 푼돈을 받으면 그들이 걸친 종이옷 위에 쓰여있는 기사들을 읽어주는 광경이나 체구가 작은 족속들이 속이 비어있는 책 모조품을 뒤집어쓰고 책을 광고하는 ‘걸어 다니는 광고판’들을 흔히 볼 수 있는 곳.
때로는 무명작가들을 착취하는 뚱뚱한 야생 돼지 같은 문학 에이전트들이 접근하거나 온몸을 갑옷으로 휘감은 괴물 같은 존재들인 책 사냥꾼들이 느닷없이 땅 속에서 튀어나와 놀라게 하는 아슬아슬한 스릴이 넘치는 부흐하임은 할 수 만 있다면 당장 책 속으로 뛰어들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도시이다.
무엇보다 부흐하임 에서 가장 나를 사로잡은 것은 ‘숲 속의 시간’이었다.
부흐하임에서 저녁의 평온한 시간,
하루 중 서적판매와 문학 활동을 기분 좋게 마감하는 때, 벽난로 속에 굵은 나무토막들을 넣고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일 때.
피처럼 붉은 포도주가 볼록
튀어나온 유리잔 속에서 향기를 풍기고 낭송대가가 행사를
시작할 때.
지면에 쓰인 문학작품들 속에 깃든 예술적 환상들이 낭송가들과 청취자들의 주위를 맴돌며 춤을 추면 사람들의 몸이 안정을 취하고 정신이 비로소 제대로 깨어나는 시간.
-「꿈꾸는 책들의 도시」 1권 1부
‘숲 속의 시간’- 中
작가가 ‘숲 속의 시간’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다. 부흐하임의 거리처럼 골목마다 신비스러운 분위기의 고서점들과 소규모의 전문서점들이 들어서 있고, 대형서점의 쇼윈도에는 새로 출간된 신간 서적들(작가의 서명이 있는 초판본)을 홍보하는 광고물이 대문짝만 하게 붙여져 있으며, 저녁마다 ‘숲 속의 시간’ 같은 작품 낭독회가 열리는 문학도시를 현실에서 꿈꾸는 것은 물론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숲 속의 시간’은 상상 속의 꿈만은 아니라 여겨진다.
매일 저녁마다는 아니어도 해거름 녘 노을빛에 물든 엷은 저녁 햇살이 창가에 빗겨드는 운치 있는 찻집에서 푹신한 소파에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매혹적인 낭송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문학작품들을 만나는 여유를 누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미텐메츠가 즐겨 먹던
‘시인의 유혹’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과자와 같은 주전부리도 곁들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상상만 해도 즐겁고 행복해 설레기까지 한다.
묘한 매력으로 마음을 끌어당기는 지상의 거리와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모험의 세계인 지하미로가 공존하는 부흐하임.
이 매력적인 도시는 불행하게도
도시 전체를 지배하려는 한 개인의 탐욕과 오만으로 인해 화염에 휩싸이게 되고, 미텐메츠가
불길 속을 빠져나오면서 부흐하임에서의 모험도 막을 내린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부흐하임의 거리와 ‘숲 속의 시간’ 장면을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내게는 잊지 못할 매력으로 다가 온 「꿈꾸는 책들의 도시」 부흐하임, 그곳에서는 지금 어떤 책들이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2009. 6.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