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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현진 Oct 12. 2024

화이트 나잇(White Night)6

[단편소설]

#7, 새로운 길


한 달 후,  3월의 햇살이 눈부신 어느 날 아침, 여린은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활짝 연다. 밝은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늘 어둡던 북쪽방에 햇살이 가득 퍼지고 생기가 돈다. 창가에는 분홍 아젤리아

화분이 놓여있어 방 분위기가 한층 화사해

졌다. 여린은 창가에 서서 심호흡을 하며

방 안으로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가슴이 시원해진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햇살인지, 이 상큼한 공기는

또 얼마만인가. 여린은 한동안 그렇게 창가에 선 채 창 밖 풍경을 바라본다.  

여린은 화장을 하고 머리를 빗으며 외출 준비를 한다. 가늘고 힘이 없던 머리카락이 이젠 제법 굵어지고 풍성해졌다.

코랄빛 립스틱을 바르니 얼굴에 생기가 돈다. 새로 산 화사한 꽃무늬 원피스에 트렌치

코트를 걸쳐 입고액세서리 함에서 목걸이를 고르다가  은빛 별 장식이 달린 목걸이를 선택했다.  

며칠 전 일요일에 서귀포의 몽마르트르라고 불리는 예술의 거리에 갔다가 기념품을 파는 수제 공방 가게에서 산 카노푸스 목걸이었다.  그때 여린은 공방가게 들어가 구경하다가 매대에 카노푸스에 대한 설명이 적힌 안내문과 함께 진열되어 있는 카노푸스 목걸이를 발견하고 마치 그리운 이와 재회한 것처럼 반갑고 설레면서도 까닭 모를 아련한 감정이 교차되는 느낌에 휩싸였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카노푸스를 바라보노라니 그때 안갯속에서 다가온 재이의 그 아름다운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요 근래에 여린은 5년 전의 기억을 떠올려 <화이트 나잇> 라이브 카페가 있는 수성 마을행 버스를 탔던  정류장으로 이어지는 골목을 며칠간 찾아다녔었다.

서귀포 시내의 골목이란 골목은 다 찾아 봤지만 그날의 그 음침하고 생경한 분위기의 오래된 골목은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었다. 그 골목이 어디쯤인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할 따름이었다.  수성마을 또한 여린은 들어본 적 없는 마을 이름이거니와, 지도 검색으로 찾아봐도 나오지 않았다.


'꿈이었을까?'


며칠을 찾다 지친 여린은  아마도 그때의 기억이 상상을 현실로 착각한 것이었거나 진짜로 꿈을 꾼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긴, 4년 전 그날의 기억을 곱씹어 볼수록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결국 여린은 상상이나 꿈을 현실로 착각했으리라고 합리화하며 <화이트 나잇>을 찾는 것을 단념했다.




 여린은 카노푸스 목걸이를 목에 걸고 핸드백을 어깨에 멘 후 핑크색 웨지힐 구두를 신고 거리에 나섰다. 봄날 오후의 햇살이 포근하게 감싸고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여린의 목에서 은빛 카노푸스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여린은 <화이트 나잇>의 기억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을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외돌개 방면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은 여린은 여느 때와 달리 살짝  긴장되면서도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돔베낭골 정류장에서 버스가 정차하자 여린은 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귀포에서도 이곳 돔베낭골은 유럽풍의 이국적인 풍경과 건물들이 외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관광지였다.

여린은 여유 있게 발걸음을 옮기며 거리 풍경을 구경했다. 그때 어떤 젊은 남자가 여린에게 길을 물었다.


  "저 실례지만 길 좀 물을게요. "


  여린은 걸음을 멈추고 남자를 바라보았다.


  "돔베낭길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30대 초,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는 단정하고 깔끔한 헤어스타일에 파스텔 블루 톤의 산뜻하고 세련된 캐주얼 정장을 입은 매력적인 청년이었다.


  "아, 네......"


여린은 남자의 얼굴을 본 순간 흠칫 놀랐다. 남자는 재이와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너무나 닮은 모습이었다. 짧고 검은 머리와 댄디한 스타일의 옷차림 제외하고는 훤칠한 키와 탄탄한 체격, 하얀 피부와 신비롭고 이국적인 느낌의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 그리고 특유의 중저음의 목소리와 매혹적인 미소까지 재이와 판박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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