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현진 Oct 12. 2024

화이트 나잇(White Night)8

[단편소설]

#9. 카페 누잇 블랑쉬(nuit blanche)


카페는 <화이트 나잇>과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정원에는 아젤리아와 데이지 등 각양각색의 꽃들이 피어있는 화단이 잘 가꿔져 있었고, 하얀색 페인트를 칠한 나무 울타리에는 가랜드 조명이 장식되어 있었다.  출입문 위의

하얀 나무 간판에 검은 글씨로  <누잇 블랑쉬 (nuit blanche)>라는 프랑스어로 된 카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여린은 은성에게 뜻을 물었다.


  "누이뜨.. 블랑쉬.. 불어 같은데, 무슨 뜻이에요?"


  "불어 맞아요. '백야(하얀 밤)'이라는 뜻이죠. 카페 이름을 뭘로 할까 생각하다가 밤에 정리를 하면서 건물 전체가 하얀 카페를 둘러보니 불어로 '하얀 밤'이라는 뜻의

'누잇 블랑쉬'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렇게 카페 이름을 정하게 되었어요."


여린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누잇 블랑쉬>와 <화이트 나잇>.. 같은 건물에 언어는 다르지만 같은 뜻의 카페 이름이라니! 우연이라기엔 너무도 신기하고 믿기 힘든 현실 었다. 은성은 출입문을 열고 여린을 카페 안으로 안내했다. 은성과 함께 카페 안에 들어서자 프랑스풍의 낭만적이고 정갈하면서도 앤틱 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하얀빛의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 벽과 푸른 창틀의 창문들이 산뜻한 느낌의 조화를 이루고, 새하얀 리넨 커튼이 창문마다 드리워져 있었다. 테이블과 의자들도 모두 하얀빛이었다.

은성은 카페안과 정원의 조명을 켠 후 턴테이블에 레코드 판을 올려놓았다.

카페 안에 샹송이 흐르며 마치 파리의 카페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앤틱 한 디자인의 샹들리에의 화려하고 로맨틱한 불빛과 정원의 운치 있는 가랜드 조명, 그리고 카페 안에 흐르는 우아한 샹송이 어우러져 카페의 분위기뿐만이 아니라 잠시 불안하고 어두워졌던 여린의 마음도 밝혀주었다. 은성이 테이블에 여린을 앉게 하고 주문을 받듯이 물었다.


  "어떤 커피를 좋아하세요? 주문하시는 대로 만들어드릴게요."


  "카페라떼요. 전 카페라떼를 제일 좋아해요. 아니, 사랑해요. 오늘 같은 날씨엔 특히나 더 따뜻한 카페라떼가 마시고 싶네요."


여린은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맛있는 카페라떼를 만들어 대령하겠습니다."


은성은 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익숙한 솜씨로 커피 원두를 로스팅한 후 갈아서 커피를 내리고 라떼를 만드는데 열중했다. 여린은 은성이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눈여겨보며 바리스타로서의 본연의 매력에 빠져들어 매료되었다. 은성은 라떼 아트까지 정성을 들여 만든 카페라떼와 자신이 마실 아메리카노를 디저트와 함께 담은 쟁반을 들고 직접 서빙까지 해주었다. 여린은 은성이 정성을 다해 만든 아름다운 라떼아트를 감상하며 커피잔의 온기를 느껴보았다. 그리고, 따뜻한 카페라떼의 향기를 맡아보고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그윽하고 따스한 향기와 담백하고 부드러운 카페라떼의 맛..  대체 얼마 만에 느껴보는 것인지, 여린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먹먹한 눈빛으로 카페라떼 잔을 응시하고 있는 여린의 모습에 은성은 혹시나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왜 그래요? 맛이 없어요?"


여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정말.. 정말 맛있어요."


  "정말요? 다행이네요. 근데, 왜..."


여린은 눈시울을 붉히며 더듬거리듯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오늘 이 카페라떼.. 사실 5년 만에 마셔보는 거예요.  암 투병하느라.. 커피를 마실 수 없었어요.

당연히 바리스타의 꿈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고요. 카페라테의 이 향기, 이 맛, 그리고 이 따뜻한 온기가 너무 그리웠어요."


  "아.. 네.. 그랬군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은성은 아린 마음으로 여린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신 건가요?"


  "네, 한 달 전에 완치 판정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카페라떼를 마실 수

있는 거죠."


  "와, 정말 잘 되었네요. 축하해요!"


여린과 은성은 함께 커피를 마시고 디저트를 먹으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바리스타 자격시험 준비는 잘 되고 있어요?"


은성이 물었다.


  "네, 그럭저럭요. 근데, 5년 만에 다시 준비하고 공부하려니까 생각보다 좀 힘드네요."


여린은 그간 바리스타 시험 준비를 하며 막막했던 심경을 토로했다.


  "공부하면서 궁금한 거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와요. 부족하나마 힘이 닿는 대로 도와드릴게요."


여린은 정말 그래도 되냐며 고마워한다.


  "정말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부족하다뇨? 최고의 바리스타님께 배울 수 있다니 영광이죠!"


  "아유, 최고는 무슨.. 그러지 마요."


 은성은 손사래를 치며 멋쩍였다


어느덧 비가 그치고 창가의 하얀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껴 들었다. 은성이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비가 그친 것 같네요.  안개도 완전히 걷혔어요."


   "그러게요, "

 여린은 같이 창밖을 바라보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 맞은편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한 여린은 화들짝 놀랐다.


 "메깨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다니,. 이제 그만 일어서야겠어요."


여린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누 블랑쉬를 나다. 은성은 여린에게 택시를 타고 가라며 콜택시를 불러주고 언덕길 아래까지  따라 내려가 배웅다. 구름 사이로 비치는 저녁 햇살이 안개가 말끔히 걷힌 언덕길을 비추고, 언덕 아래에 펼쳐진 바다 위에는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이는 윤슬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언덕길 아래에 이르자 은성이 부른 택시가 와 있었다. 여린은 은성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오늘, 여러 가지로 고마웠고 즐거웠어요. 커피도 맛있게 잘 마셨고요. 다음에 봐요. 갈게요."


  "고맙기는 제가 더 고맙죠.  저도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언제든 시간 나면 놀러 와요."


  "그럴게요."  


  " 조심히 가요."


여린은 은성의 배웅을 받으며 택시에 몸을 실었다. 여린을 태운 택시가 멀어질 때까지 은성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여린은 택시 안에서 멀어지는 은성과

언덕 위의 누잇 블랑쉬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여린은 바리스타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자주 누잇 블랑쉬에 가서 은성에게 조언을 듣고 카페일도 도우면서 라떼아트를 배우는 등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다해 노력한다. 은성은 바리스타 시험에 합격하면 누잇 블랑쉬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다.

몇달후, 여린은 바리스타 시험에 합격하여 자격증을 따고 마침내 바리스타의 꿈을 이룬다. 은성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여린을 축하해 주고 누잇 블랑쉬에서 축하 파티를 열어주었다.

바리스타가 된 여린은 은성의 카페 누잇 블랑쉬에서 일하게 되고, 두 사람은 함께 일하면서 더욱 가까워져 갔다.






이전 07화 화이트 나잇(White Nihgt)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