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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현진 Oct 12. 2024

화이트 나잇(Wihte Night)9

[단편소설]

 #10. 수국정원


1년 후, 초여름을 맞이한 누잇 블랑쉬 정원에는 온갖 종류의 수국이 가득 피어 장관을 이루었다.

그와 함께 은성의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바리스타 실력과 커피맛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관광객들뿐 아니라 제주 도민들도 즐겨 찾는 명소로 자리를 잡으며 문전성시를 이룬다.  누이스 블랑쉬의 매니저가 된 여린은 은성에게 배운 라떼 만드는 솜씨가 수준급에 이를 만큼 좋아서 라떼를 거의 전담하게 되었다.

또한 키오스크 이용한 주문을 어려워하는 삼춘들을 응대하는 것도 여린의 몫이었다.

서울 토박이인 은성은 물론 이거니와 20대 초반의 어린 알바생들도 나이 많 삼춘들의 토속적인 제주어를 알아듣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운터로 오더니 할머니가 여린에게 대면주문을 해도 되는지 물었다.


   "아고게, 저 기계로 주문허는 거 어떵허는건지 아멩 해봐도 모르켜.

냥 이디서 주문해도 되지양?"

  (아이고, 저 기계로 주문하는 거 어떻게 하는 건지 아무리 해봐도 모르겠어. 그냥 여기서 주문해도 되죠?)


  ", 삼춘 뭐 드실거꽈? 고라봅서."

  (예, 어르신 뭐 드실 거예요? 말해보세요.)

  

  " 저, 산도록허고 돌코롬헌거 그거 줍서. 복숭개로 만든 거.."

   (저 상큼하고 달콤한 거 그거 주세요. 복숭아로 만든 거..)


   " 아~ 복숭아 아이스티 마씀?"

    (아~ 복숭아 아이스티 말이죠?)


   "어, 기여. 그거 맞다, 얼음 너미 하영 노치 마랑 "

   (어, 그래. 그거 맞아,  얼음 너무 많이 넣지 말고)

  

   "예, 알아수다."

   (예, 알았어요.)


 그러자, 옆에서 할아버지도 한마디 거들었다.


  "난 라뗀가 그거,  돌돌허곡 또똣헌거 먹젠."

  (난 라뗀가 그거, 달달하고 따뜻한 거 먹을래.)


  "게민 바닐라 라떼가 젤 돌돌헌디 그걸로 드시쿠과?"

  (그러면 바닐라 라떼가 제일 달달한데 그것으로 드시겠어요?)


   "그거 좋주. 너미 데불라허게 마랑 맨도롱 또똣허게 해영 도라. "

  (그거 좋지. 너무 뜨겁게 하지 말고 적당히 따뜻하게 해서 다오.)


   "예, 호썰만 지달립써양. 얼른 맹글엉 안내쿠다."

   (예, 조금만 기다리세요. 얼른 만들어드릴게요.)


노부부는 만족스러워하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잠시 후, 여린은 주문대로 음료를 만들어 노부부에게 직접 서빙했다. 거동이 불편한 삼춘들을 위한 배려였다.


누잇 블랑쉬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꽤 많이 찾아왔는데, 은성은 프랑스어뿐만이 아니라 영어에도 능통해서 외국인 관광객들을 능숙하게 상대했다. 은성의 출중한 외국어 실력과 더불어 매력적인 용모와 인품에 반해

출근 도장을 찍듯 카페를 방문하는 여자 손님들이 간혹 있는데 외국 관광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은성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대시하는 여자들 때문에 곤혹스러운 상황이 펼쳐질  종종 있었다.


   " 저기요, 사장님. 키오스크 결제가 잘 안 돼서 그러는데, 죄송하지만 좀 도와주세요."


    "아, 네,. 잠시만요."


  은성은 일하다 말고 로비에 있는 키오스크로 가서 살펴보았다.


    " 별 이상 없는데요? 다시 한번 해보시죠."


    " 어머, 아까는 분명 잘 안 됐는데.. 이렇게 멋지고 잘생긴 사장님이 하시니까

잘 되나 봐요. 호호~"


   "가까이서 보니까 사장님 정말 너무 잘생기셨어요. 영화배우 같으세요."


   "sns에서 보고 찾아왔는데 와!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미남이시고 목소리도 좋으시고,

소문대로 친절하시네요.  너무 멋지시다!"


여자 손님들이 은성을 둘러싸고 한 마디씩 칭찬을 건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은성은 사무적인 웃음으로 응대하며 주방으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여행객 여자들은 계속 추가 주문을 하거나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카운터로 와서는 은성을 불러내곤 했다. 어떤 여자는 교태를 부리며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기도 했다. 여린은 그런 여자들을 보면서 '에휴, 또 시작이구나.' 싶으면서도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어찌할 수 없었다.  도끼눈을 뜨고 흘겨 보다 가도 웬만하면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일에 집중하려 애를 썼다.

다행스럽게도 은성은 그런 여린의 마음을 알았는지 뭇 여성들의 대시에도 흔들림이 없이 단호하면서도 재치 있게 철벽을 치며 철저하게 사무적으로 대했다.


   "손님, 죄송하지만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아이~ 사장님, 왜 그러세요?"


   "전 이미 내 사랑에게 픽업돼서 솔드아웃 되었거든요."


여린은 여자들의 관심과 대시에 늘 철통방어의 자세로 꿋꿋이 임하는 은성의 태도에 안도하며 한편으로 의기양양

 기도했다. 카페 영업이 끝나고 하루 해가 저문 여름밤, 청소와 정리를 마무리한 여린과 은성은 달빛이 비치는 수국 정원에서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갖는다.

은성은 자신에게 대시하는 여자들 때문에 마음이 상했을 여린을 다독였다.


  "오늘 마음 많이 상했어?너무 신경쓰지 말고 기분 풀어… 나한텐 자기뿐인 거 알잖아."


  "알아… 늘 그러려니 하면서 신경 안 쓰려고 애쓰고 있지만, 마음이 좋진 않아. 어쩌겠어, 이렇게 잘난 남자 친구를 얻은 업보라 여기고 받아들여야지."


여린 은 힘없이 웃어 보였다.

둘은 퇴근 후에 항상 서로에게 좋아하는 커피를 만들어주고 수국정원의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풀곤 했다. 오늘도 여린은 은성이 직접 만들어준 카페라떼를, 은성은 여린이 만들어준 아메리카노를 들고 수국정원의 야외 테라스로 향했다. 서귀포 밤바다의 파도소리가 아련하게 초여름의 해풍에 실려 밀려들어왔다.  여린과 은성은 야외 테라스의 테이블에 같이 앉아 달빛에 젖은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커피를 마셨다.


"남이 해준 음식이 맛있는 것처럼 커피도 남이 끓여준 게 더 맛있어. 역시 카페라떼는 자기가 만들어준 게 최고야. 라떼아트도 내가 한 거보다 자기가 한 게 더 이뻐. 아, 너무 좋다."


  "나도 , 자기가 만든 아메리카노가 제일 맛있어. 근데, 자기가 만드는 카페라떼도 훌륭해. 라떼아트도 그렇고…"


  "아냐, 난 자기에 비하면 평타 수준이야. 자기의 카페라떼와 라떼아트는…

아름다워…."


여린은 은성의 듬직한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은성은 튼튼한 팔로 여린의 어깨를 끌어당겨 감싸 안아주었다. 그들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커플링이 달빛에 비쳐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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