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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ungeun Sung Sep 14. 2024

영국에서 살기는 괜찮은가?

나쁘지 않은데 좋지도 않다.

영국에서 살기괜찮은가? 11년간 영국에서 살아보니 나쁘지 않은데 그다지 좋은 거 같지도 않다. 좋은 점  나라이긴 한데 나쁜 점도 그만큼 많아서 다 합치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어디에 살아도 다 장단점이 있는 것이리라. 혹자들은 영국이 한국보다 GDP(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가 높고, 행복 지수도 높고, 사회 복지 국가니까 굉장히 살기 좋은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그건 영국에서 태어난 영국인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이 영국에서 살 때는 굉장히 살기 좋은지 모르겠다. 혹시 영국에서 너무 살기 좋아서 깜짝 놀랐다는 분이 있으시면 제발 연락 주시길 바란다. 대체 어느 동네에서 어떻게 사시길래 그런지 궁금하고, 괜찮으시다면 나도 근처로 이사가도록 하겠다. 물론 나도 영국에 오자마자는 어떤 허니문(honeymoon) 기간 동안에 영국의 장점들이 더 많이 보였던 것 같긴 하다. 근데 그 허니문 시기가 지나고서는 또 단점들이 굉장히 많이 보였었고, 언젠가부터 일상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어느 것에도 별 감흥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나름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래 적는 (내가 생각하는) 영국의 장단점들은, 자칫 자랑을 하거나 푸념을 늘어놓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어디까지나 균형 잡힌 정보 전달의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주시면 좋겠다. 혹시 영국 이민이나 정착을 고려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직장 생활

영국에서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부터 좀 얘기를 해보자면, 특별히 마음에 들고 감사하다고 느끼는 것은 단연 직장 생활이다. 20대와 30대에 (능력에 비해 과분하게) 국내 굴지의 대기업 두 군데(S사와 L사)를 다녔었는데, 그 두 번의 직장 생활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한국에서 사회생활 부적응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는 세 번째는 다를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할지 모르겠는데, 지금 굳이 그런 위험한 모험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마 나는 좀 특수한 케이스고 영국에 계신 다른 한국인 분들은 나 같을 것 같진 않다. 아마 다른 분들은 한국에서도 훌륭하게 사회생활을 잘하실 텐데, 영국의 어떤 특정한 장점들 때문에(이를테면 자녀 교육) 여기 계신 거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는 박사 이후에 혹시 한국 대학교 어딘가에서 임용이 되었다면, 거기서도 적응을 잘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이런 부족한 나를 박사 졸업 하자마자 교수로 뽑아준 우리 학교가 참 고맙다. 학교 안에서 지금껏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과 조언, 배움의 기회들을 주시는 교수님들에게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특히 부족한 나를 밀어주고 끌어주시는 부학장 쉬본 교수님(Prof Siobhan Keenan)과 리서치 멘토 가브리엘 교수님(Prof Gabriel Egan)에게 특별히 감사하다. 두 분은 나의 롤모델들이시자, 인간적으로도 믿을 수 있고 좋은 분들이어서 내가 영국에서 인복이 없지는 않구나 싶다. 잦은 재택, 넉넉한 휴가, 훌륭한 워라밸이 다 만족스럽고, 높은 업무 자유도와 자율성이 보장되는 환경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시작부터 지금만큼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지만(특히 연봉/월급 세후 실수령액 관련),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는 점이 마음에 든다('영국에서 교수를 하면 좋은가?' https://brunch.co.kr/@8df7531fef574a5/3 를 참고하시길).


유럽에 있는 영어권 나라

직장 다음으로 마음에 드는 점은, 영국이 유럽에 있는 영어권 나라라는 점이다. 석사 학위를 네덜란드에서 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유럽에 와서 유럽 참 아름답고 안전하고 볼 것이 많고 좋다고 생각했다. 세계사의 중심에 있는 유럽, 그 역사와 문화, 철학, 예술, 종교와 관련된 다양한 관광지들과 콘텐츠들이 흥미롭고 매력적이었다. 각 나라와 도시별로 자연환경과 건축  특색이 강하고 각기 다른 아름다움 멋짐이 있어서, 유럽 생활 14년 째이지만 새로운 곳에 가면 여전히 신선하고 재밌는 것들을 발견한다. 유럽의 많은 정부, 단체, 개인들이 더 평등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시스템들, 사회적 실험과 운동들을 시도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도 자체가 훌륭한 것 같다). 돈이 많고 적고와 상관없이 덜 아등바등하고 여유롭게 사는 전반적인 분위기도 나한잘 맞는 것 같다.


네덜란드에서 석사 학위를 할 때, 그래서 대부분 다 좋았는데 영어권이 아닌 나라에서 사는 한계좀 느꼈었다. 학위 과정 중과 졸업 후에 두 군데 회사에서 일하면서 관찰을 좀 해보니, 나처럼 실무자들은 국적도 인종도 다양했는데, 매니저들은 다 백인 네덜란드 사람들이었다. 두 개 회사만 보고서 성급한 일반화를 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 경험만 바탕으로 했을 때 나에게 네덜란드 외국인에게 유리천장이 있는 곳인 것 같았다. 전체 회의에서는 모두가 영어를 썼지만 그게 아니면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모국어(Dutch, 더치)로 대화를 했고, 거기서 나를 포함 외국인들은 소외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 당시 기분은 좀 안 좋았지만 그런 게 이상한 것이나 인종차별이라고 지는 않고,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본다. 우리가 한국에서 외국인들과 섞여서 일을 해도 똑같을 것이다. 모두가 함께 하는 회의에서는 영어를 쓰겠지만, 회의 전후 한국인들끼리 대화를 할 때 굳이 한국말을 두고 영어를 쓰겠는가. 당연한 걸 알면서도 더치를 못하는 나로서는 못 알아듣는 것이 답답하고, '여기서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더치를 하지 않는 이상  없는 자리, 없는 위치가 있겠구나' 싶었다. 원래 가장 중요한 얘기들은 보통 회의 밖에서 일어나지 않가. 영어도 잘 못하는데 더치까지 배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그렇게 절실하게 네덜란드에 남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네덜란드를 떠나면서 결심했던 것은 만일 박사를 한다면 꼭 영미권으로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리고 몇 년 뒤 실제로 박사를 하러 영국에 왔고, 영국에 와서 여러모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높은 위치에 있지 않고, 언젠가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외국인들에게 (적어도 대학 환경 안에서) 유리천장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이를테면 옆학교 레스터 대학(University of Leicester)의 총장님은 스리랑카 이시고, 우리 학교도 그렇고 다른 대학교들도 그렇고 높은 직위에 동양인, 흑인, 비영국인들이 셀 수 없이 많다. 또한 모두가 영어를 쓰는 나라에 있으니 내가 외국인이긴 도 덜 이방인스럽게 느껴진다. 어딜 가도, 내가 굳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아도, 옆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다 알아들으니 모두가 친숙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영국이 좋아도

만족스러운 직장 영어권 유럽 나라라는 점 이외에도 영국이 마음에 드는 점들은 꽤나 많다. 예를 들어 영국이 과학과 기술, 이외 다양한 연구 분야에서 세계를 이끌어 가는 나라들 중의 하나라는 점, 그리고 거기에 내가 같이 갈 수 있는 직군에 있다는 점. 전 세계 평화를 유지하고 지구 온난화를 막고자 하는 영국 정부(나는 세계 평화를 빌고 북극곰을 좋아함). 내 취향 저격하는 풍부한 현대 문화 콘텐츠들(음악,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등). 훌륭하고 공짜인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들. 이방인인 내가 소속감을 느끼기 쉬운 이민자들의 나라라는 점(우리 동네 레스터는 나를 포함 전체 인구 45%가 영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임). 다양한 문화와 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높은 편인 사회 분위(물론 최근무슬림 망명자들을 향한 극우 폭동이 일어나긴 했었음). 대체로 줄을 잘 서고, 시민 의식이 높고, 친절한 편이며 눈이 마주치면 웃어주는 영국인들. 다 같이 소박하고 검소하게 사는 느낌. 나쁘지 않은 연금 제도와 다양한 사회 복지. 조금 더 성평등이 있는 것 같은 다양한 분야 여성 리더들(우리 학교만 해도 총장, 부총장, 학장, 부학장 등등 높은 위치에 여성분들이 다수 계심). 마음에 드는 영국의 이모저모 리스트는 더 길지만 나머지는 너무 개인적이거나 자잘한 것들이라 생략하겠다. 이렇게 지금 당장은 좋은 점들이 51, 나쁜 점들이 49 같은 느낌이라 영주권도 받고 정착한 듯 살고 있긴 한데, 만일 내가 일을 안 한다면 굳이 영국에서 계속 살까 싶긴 하다. 퇴직하면 남은 여생은 한국에서 매일 맛있는 거 먹으면서 가족들이랑 친구들과 재미나게 보낼 계획이다. 또 지금까지는 건강한 편이긴 한데 혹시 크게 아프기라도 한다면 역시 한국에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고, 병원 의료진이 하는 말도 100퍼센트 다 알아들을 수 있고, 마음도 편하고 얼마나 좋은가. 기본적으로 한국인은 한국에서 사는 것이 가장 편하고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 영국 사이의 거리

좋은 얘기는 대충 다 한 거 같고, 이제부터 영국 생활의 치명적 단점들을 몇 가지 꼽아보겠다. 가장 큰 단점은 역시 가족들과 친구들이 멀리 있어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다. 한국 영국 사이 비행시간이 긴 편이고(원래 11시간 정도였으나 러시아와 우크레인 전쟁 때문에 2-3시간 더 늘었음), 비용도 싸지 않고(이코노미 왕복이 평균 150-200만 원), 여행과 시차의 피로함까지 있으니, 한국 방문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비행시간, 집과 공항 사이 이동 시간, 대기 시간을 다 합치면, 영국 집에서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서울 집 문 앞에 도착하기까지 전체 소요 시간 대체로 24시간인 듯하다. 24시간 여행을 하고 나면 몸살이 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하루 정도 아무것도 못하고 쉬어야 할 만큼 피로함과 피곤함을 느낀다. 영국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가면 시차 적응도 잘 안되어서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예전에는 시차 적응을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했었으나, 그렇게 노력하면 몸이 더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것 같아서 요새는 그냥 자연스럽게 적응될 때까지 졸리면 언제든 자는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생활을 한다. 나이가 들면서 한국과 영국 사이의 이동이 체력적으로 점점 힘들어지는 것도 느껴진다. 30대까지만 해도 왔다 갔다 하는 게 별로 힘들지 않았는데, 40대가 되니 확실히 피곤하다. 50대가 되면 또 얼마나 더 피곤해질까 싶다. 장시간 비행에서 덜 힘들기 위해 수면제 처방을 받아서 비행기를 타자마자 수면제를 먹고 자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나도 곧 그래야 할 것 같다. 여독을 단숨에 풀어주고 시차 적응을 바로 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의 약 같은 것도 누가 어서 발명해 주면 좋겠다.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한국과 영국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와 그로 인한 고향 방문의 제한적임과 피로함 이외에도, 이방인으로 사는 어려움이 또 다른 큰 단점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영국에 이민자들이 많고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 살고 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백인이 주류인 사회에서 내가 사회적 주류 되는 날이 같지 않다. 비주류이고 사회적 소수자인 나는 끊임없이 나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하는 (아니면 누가 내 대신 싸워줘야 하는) 사회적 약자인 것만 같다. 한국인은 이중 국적이 허용되지 않으니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시민권도 받을 수 없다. 시민권이 없으면 투표권도 없으니 나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적극적 정치 참여도 제한적이다. 매달 꼬박꼬박 세금을 내면서도 내가 낸 세금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나 결정하는 데에 내 의견도 표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시민권을 신청할 거냐면 그렇진 않다. 나는 한국인인 게 좋고 편하고 괜히 나중에 후회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설령 내가 시민권을 받는다 하더라도 동양인의 외모 때문에 2등급 시민 느낌을 받는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인종차별자들이 내가 관광객인지 유학생인지 영주권자인지 시민권자인지 얼굴만 보고 알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에서 인종 관련 사고가 터지면 심장이 쫄깃해진다. 이를테면 영국에서 코로나 첫 감염자들이 중국인들라는 뉴스가 나오면서 여기저기에서 중국인 포함 동북아시아 사람들을 타깃으로 폭행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 당시 피해자들 중에 한국인들도 있었다. 영국인들 눈에 누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분이 될 리가 없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2024년 여름) 르완다 출신 부모를 둔 흑인 무슬림 젊은이 한 명이 무용학원에서 어린이들을 무차별 살해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리고서 극우들에 의한 이례적인 인종차별 폭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었다. 나는 그때 마침 서울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어서 다행히 그 상황을 피해 갔는데, 뉴스로 보니 아주 험악하고 무시무시해 보였다. 영국에 있었으면 아마 무서워서 한동안 집 밖에 못 나갔을 것 같다. 꼭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도 가벼운 인종차별이 있을 수 있다. 나도 기분 나쁜 경험들이 더러 있었다. 인종차별아니그냥 모두에게 무례한 사람을 재수 없게 만 수도 있는, 내가 사회적 소수자/약자라는 인지를 해서 그런지 어떤 피해의식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누군가 무례하게 굴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어려 보이는 동양인 여자라 만만해서 이러는 건가 싶다.   


날씨, 음식, 주거

날씨, 음식, 주거 환경이 훌륭하지 않은 것도 영국의 큰 단점들이라 생각한다. 날씨와 음식 얘기는 '영국에서 박사를 하면 좋은가?'(https://brunch.co.kr/@8df7531fef574a5/2) 글에서 이미 했으니 주거 얘기를 좀 자세히 해보자. 한국에는 전세가 있지만 영국에는 전세라는 개념이 없다. 집을 사거나 그렇지 않으면 월세뿐이다. 월세 가격도 한국 대비 영국이 비싼 편이다. 런던에서는 하우스셰어(house share, 한 집에 여러 명이 같이 사는 것)를 해서 4-5명이 한 집에 같이 살고 화장실 하나를 공유하는데 방 하나 월세가 100만 원이 넘는 식이다. 방이 하나고 평수가 아주 작고 외딴곳에 있는 굉장히 후진 아파트도 월세가 200만 원이 넘는다. 런던 중심가에서 방이 두 개인 아파트 월세는 제일 싸도 400만 원 가까이한다. 런던만 비싼 것인가 하면 전국적으로 다 싸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사는 지방 중소도시 레스터(Leicester)도 방이 한 개인 아파트가 월세 100만 원이 기본이고, 좀 괜찮은 방 두 개 아파트는 200만 원은 내야 한다. 디파짓(deposit, 모기지 mortgage 받을 때 전체 집값의 10%, 20% 등 일부를 내야 하는 돈)을 낼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대부분 집을 사는 편이다. 런던의 집값은 서울의 집값이랑 비슷한 것 같고, 런던에 좀 더 비싼 집들이 많은 것 같다 (이를테면 몇백억이나 천억이 넘는 집들). 소박한 교수 월급으로는 런던에 좋은 위치의 괜찮은 집 한 채 사는 것이 힘들다 (흑). 내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지만 어쩐지 한적한 시골 좋아해서 다행인 거 같다. 내가 런던에서 너무 살고 싶어서 어떻게든 런던에 자리를 잡았다면, 엄청난 은행 빚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월세를 살든 집을 사든 비싼 것도 문제지만, 그렇게 비싼데 비해 집이 별로 좋지 않은 것도 문제다. 많은 영국 집들은 신축이 아니라 50년이나 100년도 더 된 오래된 집들고, 이런 오래된 집들 보통 층고가 높고 창이 크며 외풍이 심하고 열효율이 전반적으로 다. 100년 넘은 우리 집도 층고가 높아서 처음에는 트인 느낌이 시원하고 좋았는데, 그것은 날씨가 비교적 따뜻할 때만 좋고 추우면 하나도 좋지 않다. 난방을 아무리 해도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고, 따뜻하다 싶을 정도로 난방을 틀면 너무 건조해서 불편하고 난방비도 무섭게 나온다. 오래된 아파트들은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있더라도 그렇게 편리하게 되어 있지 않을 확률이 높다. 우리 집 엘리베이터는 건물 앞 현관에는 없고 건물 뒤쪽 주차장을 통해서만 있는데, 한국처럼 집 문 앞까지 엘리베이터가 가지도 않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계단을 더 올라가야 하는 희한한 구조다. 무거운 짐이 있으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아파트 관리도 한국만큼 잘 되는 것 같지 않은데 관리비 어마어마하다. 우리 아파트 관리 회사는 가끔 복도 청소와 외부 창문 청소를 하는 것 이외에 눈에 띄게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매년 관리비 계속 깜짝 놀랄 만큼 많이 올린다. 연초가 되면 올해 관리비는 또 얼마나 오를까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영국 아파트는 체감는 큰 혜택 없이 비싼 관리비도 문제인데, 투자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영국 부동산 시장에서는 한국과 다르게 아파트보다 단독 주택 투자 가치가 훨씬 더 높다. 몇 년 전 나는 내가 편하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 아파트가 더 나을 거라 판단했는데, 지금은 열효율, 난방비, 관리비, 투자가치 등등 복합적으로 생각했을 때 단독 주택이 더 나은 것 같다. 몇 년 안에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중이다. 여러분들 중 누군가 혹시 영국에서 집을 살 생각이 있으시다면 웬만하면 단독 주택을 선택하시라고 추천해 드리고 싶다.   


물가와 생활비

높은 물가와 생활비도 별로다. 매달 별 거 하지 않아도 고정적으로 나가는 생활비높다. 고정 생활비 지출 내역은 월세나 모기지, 지방세(council tax), 물, 전기, 가스, 인터넷, TV, 핸드폰, 식료품 등등이 있을 텐데, 인터넷(한 달 평균 5만 원)과 핸드폰 요금(한 달 평균 6만 원)과 식재료비(한 달 평균 인당 30만 원)만 한국과 비슷한 가격이거나 조금 싸고, 나머지는 다 영국이 비싼 듯하다. 월세는 이미 위에서 설명을 했고, 모기지는 본인이 이자만 갚기로 느냐, 아니면 매달 원금을 얼만큼씩 갚기로 했느냐에 따라서 나가는 돈이 다 다르니 평균적인 액수를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최소 한 달에 100만 원은 내지 않을까 싶다. 지방세는 도시마다 세율이 다르고 집의 가격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는데, A가 가장 싸고 H가 가장 비싼 8개 단계로 나눠져 있다. 우리 동네 레스터의 경우에는 일 년 지방세가 제일 적게는 270만 원(A), 제일 많게는 800만 원(H)까지 한다. 그럼 모든 가정이 매달 22만 원에서 67만 원 사이의 지방세를 내고 있는 이다. 물세는 미터기를 달면 물을 쓰는 만큼 돈이 나오는데, 평균적으로는 한 달에 7만 원 정도 나온다. 2-3인 가구 기준으로 가스를 쓰는 경우 한 달 평균 가스비는 14만 원 정도이고, 가스와 같이 쓰는 한 달 평균 전기세도 비슷하다고 한다. TV는 일 년 수신료가 30만 원이다. 아파트에 살아서 관리비가 있으면 평균적으로 일 년에 180만 원에서 350만 원 정도 나오므로 한 달에 15-30만 원의 관리비가 나간다. 이렇게 고정 생활비가 높다 보니, 영국의 1인 가구 한 달 평균 생활비는 450만 원, 4인 가족 평균 생활비는 720만 원이라고 한다. 그러니 생활비 절감을 위해서라도 1인 가구는 웬만하면 피하는 것이 좋다. 한국과 비교를 해보면, 한국은 1인 가구 평균 생활비가 155만 원(2023년), 4인 가족 평균이 291만 원(2024년)이라고 하니, 영국이 2.5-3배 정도 물가가 비싼 셈이다. 물가가 이만큼 비싸니 연봉도 한국보다 2.5-3배가 되면 참 좋을 텐데, 굉장히 슬프게도 그건 그렇지 않다 (흑). 그래서 나를 포함하여 영국의 서민들 대부분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소박하고 검소하게 사는 것 같다.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견딜 수 없다면 어마어마하게 돈을 많이 잘 버는 무언가를 하시거나, 아니면 영국에 이민이나 정착은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닐 수 있다.  


대중교통

영국에 살면서 한국이 진짜 잘 되어 있고 감탄하게 되는 것 대중교통이다. 영국의 대중교통은 비싸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 그나마 도시마다 있는 버스나 트램은 괜찮은 편이어서 버스/트램을 한번 타는데 비용이 3500원 정도이고 하루 종일 환승을 하면 만원 정도 나온다.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교통 카드는 전국적으로 시스템이 통합되어 있지 않아서 도시마다 교통 카드를 따로 사야 하고, 교통 카드 기능이 되는 일반 체크카드나 신용카드를 사용할 경우 혜택을 못 받는 경우들이 많다. 런던을 제외하고 지하철이 있는 도시들이 많지 않다른 도시들에 있는 지하철은 내가 타보지 않아서 어떤지 잘 모르겠다만, 런던 지하철은 낡고 좁고 지저분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낙후한 지하철이 아닐까 싶다. 런던 지하철역에서가끔 발랄하게 뛰어다니는 쥐도 볼 수 있다. 최근에 생긴 몇몇 라인들을 제외하고는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어서 여름엔 찜통도 이런 찜통이 없다. 런던 시내에서 지하철 한번 타는데 비용은 5천 원 정도이고 종일권은 1만 7천 원 정도이다. 버스, 트램, 지하철은 그래도 그나마 괜찮은 축에 들고 더 안 좋은 건 기차다. 전국적으로 모든 기차 무궁화호 느낌이거나 그보다 더 느리고 여유롭게 간다 (경치 구경엔 좋음). 가격은 가격대로 비싸서 우리 동네 레스터서 런던까지 기차로 1시간인데(서울-대전 느낌) 주중 출퇴근 시간에는 왕복 기차표가 19만 원, 주말에는 12만 원 정도 다. 느리고 비싼 것뿐만 아니라 연착과 운행 중지도 자주 되고 파업도 자주 한다. 얼마 전에 네덜란드에서 친구가 놀러 왔었는데 기차를 탈 때마다 연착이 되는 통에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더랬다. 운전을 할 수 있다면 운전을 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의료시스템

영국의 의료시스템(NHS, National Health Service)은 어떻게 보면 좋은데, 나한텐 현재  도움이 안 된다. 아픈 사람들이 병원비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다는 점이 좋기는 하다 (응급실도 공짜). 그러나 병원 접근성이 심하게 떨어져서 극단적으로 말해 죽을병이 아니라면 의사를 만나기 힘들. 내가 박사 하는 동안 감기 걸렸을 때 몇 번 가정의(GP, General Practitioner, 전문의 아닌 일반의이며 영국에서 아프면 무조건 처음 만나야 하는 의사)를 만나려고 시도해 봤었는데, 보통 3-7일 사이에 예약이 잡혔다. 근데 예약 날짜가 되면 이미 감기가 다 나아버려서 예약을 취소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번 예약 취소를 한 이후로 감기에 걸려도 이제 의사를 만나려는 시도 하지 않는다. 적당히 처방없이 살 수 있는 감기약을 사 먹고 병원 안 가고 감기 낫는 것에 익숙해졌다. 대신 감기에 걸리거나 아프지 않도록 건강식품들을 때려 먹고 잘 먹고 자주 운동하고 잘 쉬고 잘 자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영국엔 한국처럼 정기적 종합 건강검진 제도도 있지 않다 (피검사와 이외 간단한 검사들만 있음). 그래서 나는 계속 한국에서 격년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내가 다달이 꼬박꼬박 내는 건강보험료 40만 원은 내가 받는 혜택은 없이 오롯이 영국의 다른 아프신 분들을 위해 쓰인다. 이것은 내가 영국 사회에 하는 어떤 종류의 기부, 일종의 사회 환원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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