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했던 대원각, 조용한 길상사로… 법정 스님이 택한 길
서울 성북동.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길상사에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골목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소박한 입구가 나타나고,
그 너머에는 일상의 소음과는 다른 고요한 시간이 흐르고 있습니다.
길상사는 요란한 역사에서 시작해 조용하게 바뀐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이곳은 한때 '대원각'이라는 이름의 대형 요정이었습니다.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정치와 경제의 중심 인물들이 드나들던 비밀스러운 공간이었지요.
그러나 대원각의 소유주였던 김영한(법명 길상화 보살)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자신의 전 재산에 가까운 이 터를 시주합니다.
그 결과, 1997년 길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은 길상사의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웅장한 법당이나 화려한 장식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대신 단정한 마루, 정갈한 돌계단, 소박한 불상이 사찰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곳은 무언가를 채우려는 공간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비워내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공간입니다.
길상사 경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법정 스님의 유품이 전시된 진영각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진영각 안에는 화려한 전시물 대신, 법정 스님이 생전에 사용하던 검소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진 대신 마음으로 담아야 하는 이 공간은 자연스럽게 우리로 하여금 '무소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길상사는 크지 않습니다.
사람들로 북적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이곳을 찾은 이들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늦추고 숨을 고르게 됩니다.
잠시 멈춰 서서, 조용히 둘러보고, 화려함이 없는 공간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곳.
그것이 길상사가 주는 가장 큰 울림입니다.
길상사는 빠른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으며, 조용히 머물다 보면 무언가를 내려놓고 비우는 것이 결코 가난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이렇게 조용히 자신을 비워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길상사를 찾을 이유는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