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 바쿠에서 만난 자유로운 분위기
보통 사람들은 이슬람 국가라고 하면 엄격한 율법에 지배되는 국가를 연상한다. 하지만 아제르바이잔 바쿠는 그렇지 않았다. 바쿠의 거리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었으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였다. 이슬람의 깊은 전통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문화와 가치를 지키며 현대성을 받아들인 그들의 삶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과 인식을 선사했다.
바쿠는 현대적인 도시이자 동시에 역사적인 도시라고 한다. 사실, 나는 바쿠에 오기 전까지는 이 도시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쿠에 도착하고 나니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바쿠의 모습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을 나서자, 화려한 바쿠의 시내가 나를 반겼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큰 건물, 현대적인 상점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이 현대적인 풍경 속에서도 바쿠의 깊은 역사와 문화가 느껴졌다.
바쿠의 시내 풍경 속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여성들의 차림새였다.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국가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히잡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쿠의 여성들은 자유롭게 옷을 선택하고 있다. 이는 아제르바이잔에서의 히잡 차림이 강요가 아닌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분위기에는 아제르바이잔의 역사적 배경이 깔려있다. 아제르바이잔은 20세기 초반부터 소련의 일원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 국가 통치와 종교는 엄격하게 분리되었다.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는 종교적인 활동이 통제되었는데, 이는 여성들의 히잡 착용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제르바이잔이 소련 붕괴 이후 독립을 이루고 나서도, 국가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원칙을 유지하였다. 현재 아제르바이잔 헌법에서는 모든 시민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들의 히잡 착용에 대한 자율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배경 덕분에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를 갖게 되었다.
이런 배경을 알게 된 후, 나는 국가문화의 겉만 볼 것이 아닌 배경과 역사를 이해하면서 여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처음에는 여행이란 단순히 '다름'을 경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바쿠에서 이런 분위기를 느낀 이후 나는 그 '다름' 속에 숨겨진 깊은 의미와 배경을 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쿠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거리를 거닐다 보니 어느새 바쿠의 구도시와 신도시를 구분하는 거대한 성벽에 다다랐다. 이 성벽은 바쿠의 역사를 알려주는 중요한 표지판과 같다. 성벽 안으로 들어가면 7세기부터 12세기에 형성된 고대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그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바쿠의 구도심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성벽 안에는, 과거 실크로드의 상인들이 쉬어갔던 카라반사라이의 흔적을 볼 수 있다. 구 시가지의 골목길과 오래된 건물들 사이를 걷는 것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바쿠의 구 시가지의 중심에는 '처녀의 망루'라는 높은 탑이 있다. 이 탑은 바쿠의 상징이다. 이 탑의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많은 전설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한 전설에 따르면, 과거 이곳에 살던 공주는 사랑하지 않는 다른 나라의 왕자와 결혼을 강요당했는데 왕자는 공주의 마음을 사고자 이 탑을 지었다. 하지만 탑이 완성되자 공주는 이 탑의 꼭대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때문에 이 탑이 처녀의 망루라고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이 망루는 옛날에 침략자들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한 감시탑으로 사용되었는데 단 한 번도 점령된 적이 없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쿠 구 도심의 건물에 붙은 이러한 전설들은 바쿠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들이다.
바쿠는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다. 그 도시의 매력은 그저 볼 것만 있는 곳이 아니라, 체험하고 느껴보아야만 진정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의 깊은 역사와 문화, 그리고 바쿠의 독특한 매력을 알고 싶다면 한 번쯤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