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소외의 조건들
SNS가 우리 사회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은 벌써 20년을 넘었습니다. '벌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SNS가 스마트폰과 함께 발명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SNS라고 하면 바로 떠올리는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이 있겠지만 사실 우리는 1990년대 후반에 이미 다양한 종류의 SNS를 경험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SNS라고 불리지 않았을 뿐이지 지금의 SNS의 모태가 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인터넷 초창기부터 슬슬 피어올랐던 '소외 공포증'에 대한 이야기는 SNS가 붐처럼 일어나던 2000년대 후반에 이미 수없이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NS의 열기는 식지 않았고, 점점 소외 공포증이라 불리는 '포모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는 수면 아래에서 잠수하듯이 흘러갔죠.
'Fear Of Missing Out'
사실 카카오톡 단톡방은 귀찮을 때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이 단톡방에서 나가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만일 내가 없는 단톡방이 따로 있다면? 아마 생각만으로도 두려운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집단에서 소외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타인들과의 연결고리가 혹여나 끊어질까 신경 쓰게 됩니다. 내가 모르는 일들이나 흐름이 발생하면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소외될 것이라는 걱정은 우리에게 하여금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예전의 사회에서는 약간의 소외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에서는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아 기다리다 못 만났던 소개팅과 (정확히는 맞선인 경우가 더 많았지만) 데이트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내려옵니다. 스마트폰은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 이야기죠. 그때는 '연락이 안 된다'라는 표현 자체를 거의 쓸 일이 없었습니다. '소식이 없다'라는 표현이 더 가까웠을 겁니다. 본인들이 소식을 전하지 않으면 타인들은 그 사람을 특정해서 연락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집에 전화를 해보는 정도였습니다. 어린 시절 친구 집에 전화해서 'oo이 있어요?' 물어봤는데 놀러 나갔다고 하면 그냥 무작정 나가서 애들이 놀만한 곳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었던 시절입니다.
그 시절의 소외는 어떻게 봐서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따돌림이나 소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루 종일 서로 붙어있어야 했던 시절도 아니었고 인터넷으로 핸드폰으로 서로 계속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유행은 TV나 대형 매체를 통해서 크게 유행했거나 아니면 너무 좁은 지역사회라서 내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의 포모 증후군처럼 사회의 흐름에서 소외당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학교 폭력도 지금과는 다른 형태로 존재했고, 지금은 없어진 촌지 요구에 선생님 주도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아마도 누군가 소외당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그게 크게 뉴스에 나오지 않았고, 그 소외로 인해서 비행청소년이 되든 나쁜 길로 빠지든 그게 조명받지 못했을 사회였습니다.
지금의 아이들은 바쁩니다. 아니 아이들만 바쁜 게 아니라 사람들 자체가 다 바쁩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오후에 수업이 끝나면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았습니다. 집집마다 학교가 끝나서 집에 가면 부모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 다들 가방만 던져놓고 다시 모여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학교 운동장에서 노는 게 더 많아졌다는 정도였을까요? 학원을 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리 바쁘지 않은 아이들은 많이 있었고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처음 만나서도 잘 놀았습니다. 지금처럼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부모들이 와서 챙기는 경우도 별로 없었습니다.
얼마 전 유행했던 '오징어 게임'을 우리는 어릴 때 정말 많이 했습니다. 사람이 모자라면 그냥 옆에서 구경하던 처음 보는 아이들과도 자주 했습니다. 그렇게 친구가 되기도 했고 누구에게나 그런 '기회'는 자주 생기는 거였습니다. 소외감과 따돌림은 서로 같이 놀 시간도 많지 않은 지금의 아이들이 훨씬 더 많이 느낍니다. 바빠서 같이 뭔가를 할 시간도 없지만 단톡방에서 아니면 인터넷 게임에서라도 시간을 내서 같이 어울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직접 마주 보고 직접 같이 부딪히며 놀 시간이 없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자신이 모르는 '은어'가 생긴다거나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들이 생기면 초조합니다. 우리의 어릴 때 나오는 이야기의 출처라는 건 되게 뻔했지만 지금은 어디서 뭘 보고 나온 공감대인지 과정을 모르면 알 수가 없습니다. 유튜브일 수도 있고 그냥 인터넷일 수도 있습니다. 어딘가에서는 초통령 취급하는 쓰레기 같은 언어를 내뱉는 BJ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 유행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서 아이들은 안간힘을 씁니다. 마치 포모 증후군을 조기교육 하는 모양새로도 보입니다.
그렇다고 옛 시절의 우리가 소외를 겁내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이 집단으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에 대한 공포는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집에서부터 버스를 타고도 편도로 1시간이 걸리는 학교에 다녔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마 지금 대도시에 사는 친구들은 '그 정도면 별로 안 머네'하겠지만 그 1시간이 '직행'이라고 부르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거리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말 그대로 지역이 다른 곳으로 통학을 한 것이니까요.
시외버스는 일찍 끊깁니다. 심지어는 비용도 시내버스보다 10배가 넘게 비쌌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휴일에 학교에 나간다는 건 저에게 상당히 부담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부분의 학교 행사로부터 자연스럽게 어느 정도 소외되었습니다. 거기다 친구 생일 같은 것이라도 있다면 더욱 그랬습니다. 단순히 거리뿐 아니라 가정형편 때문에 버스비가 없어서 못 가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주 빠지다 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소외되어 가는 케이스였죠.
그래서 나는 소외되는 것에 대해서, 그 기분에 대해서 간단하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기억도 있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전부 다 다른 지역에서 나왔다는 것도 한몫했습니다. 지금도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반갑지만 내가 계속 그 지역에 살지 않았고 심지어는 1년에 한 번도 가기 어려운 고향이었기에 저와 어느 정도는 다들 거리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들도 마찬가지고, 심지어는 대학교 친구들도 그렇습니다. 내 성격의 영향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친한 사람이 없거나 사교성이 제로인 성격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저를 아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동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외는 그것과 관계없이 발생합니다. 시간이든 공간이든 아니면 다른 여건이든 여러 가지 이유로 말이죠.
가정의 경제형편이 경제적 소외를, 고등학교를 멀리 다닌 것이 시간적 소외를 경험하게 했다면, 제주도라는 공간은 '지역적 문화 소외'를 나에게 안겨줬습니다. 그 당시에 제주도에는 뭔가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제가 제주도를 벗어나기 직전에 인터넷 시대가 왔다는 것이 다행이었죠. 물론 정말 바로 직전에야 그런 시대가 온 거였지만.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 우리는 소외를 탈출할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채팅이 붐처럼 일었고, 나는 어느새 전국에 친구가 있는 이상한 의미의 인싸가 되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대학교 1학년 방학 때, 서울에서부터 충청도를 거쳐 부산까지 인터넷으로 사귄 친구들을 만나며 전국 '투어'를 했습니다. 없는 돈에 몸뚱이 하나 믿고 거의 노숙하다시피 하면서 전국을 돌았습니다. 제주도라는 지역적 공간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나를 발길 닫는 아무 곳으로나 이끌었던 것이죠. 진짜 아무 이유 없이 하루 종일 걸어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냥 모르는 지역에 내려서 구경만 하면서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시간 아까운 줄 모르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 내가 겪던 대부분의 소외가 끝나는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간관계는 더 가벼워졌고, 그 안에서 소외는 더 쉽게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른이 되었다는 건, 경제적인 독립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였고 저의 시간과 경제적인 여건으로 인한 소외는 더 커졌습니다. 허둥지둥 남들 따라서 공무원 시험 준비한답시고 친구들과 연락을 끊어보기도 했고, 취업 사기를 당하면서 타 지역을 떠돌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결국 소외는 또다시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아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주변 환경에 밀려서 소외를 '당했다'라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큰 지점은 제가 위에서 언급한 대부분의 소외는 포모 증후군과는 약간 다른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글에서 약간 언급한 기억이 나는데 저는 SNS를 엄청 초기에 접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반년에서 1년 정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국내에서 트위터를 서비스하기도 이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국내 전체 이용자가 고작 몇만 명도 될까 말까 하는 수준이라 그냥 조그만 커뮤니티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그 시절에도 SNS를 오래 할수록 나 자신에 대한 괴리감이 느껴졌습니다. SNS로 사람들이 보는 저는 제가 올린 모습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만약 감성적이거나 전문적인 무언가를 올리면 그 사람들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봤습니다.
지금의 브런치도 내가 올린 모습으로 사람들이 나를 보겠지만 그때와 차이점이라면, 그 당시는 말 그대로 단문 서비스라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몇 마디 뱉으면 그만이었다는 거였습니다. 브런치에 글 쓰듯이 엄청 고민하고 올리는 것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가상의 내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실제의 저는 사회 초년생에 엄청 허덕거리는 인간이었음에도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인플루언서처럼 말입니다. 저는 스스로 소외를 택하고 SNS에서 도망쳤습니다. 아마 제가 조금 더 깊이 인플루언서가 되었다면 지금도 SNS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한마디만 올려도 사람들이 우르르 반응해주는 그 기분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릅니다. 그게 얼마나 중독적인지. 그리고 그러한 트렌드의 센터에서 밀려날까 전전긍긍하게 되는 그 포모 증후군까지 말입니다.
계속 사회적인 '소외 공포증'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경영학에서는 사실 기회비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걸 마케팅적으로 어떻게 활용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제가 저번에 노트북에 당했던 그것처럼. 이 대박세일을 나만 놓치면 어쩌지? 그 마음이 바로 포모 증후군을 활용한 사례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코인'도 불탔고, 전전긍긍하다가 올라탄 사람들은 땅을 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결국 기회비용 자체가 현실성이 있는가 없는가를 검토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세우는 방식의 마케팅이 보통 포모 증후군을 이용한 방식입니다.
'점포정리 세일'을 3년 동안 붙이고 장사하는 집도 있고, 대부분의 전자제품은 '지금 아니면 못 살 가격'처럼 광고하지만 나중에 가격의 추이를 보면 주기적으로 세일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마트에 가보면 더 심합니다. 마치 지금뿐인 세일인 것처럼 빨갛고 커다란 글씨로 써놓았지만 1년 내내 그 가격으로 팔고 있습니다. 사실상 그게 정가지만 초반에 세일인 것처럼 포모 증후군을 자극해서 판매를 끌어올리는 전략입니다. 뭐 등록 상으로는 초반에는 정가를 높여놨기에 문제는 없으니까요.
얼마 전에 글에 등장했던 '샤오미' 같은 경우도 그랬습니다. 딱히 나한테 필요 없는데 가성비라서, 남들 다 사는 물건이라서 사게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스마트폰도 초반에는 정말 딱히 필요 없어서 저가형 버스폰을 위주로 샀는데 어느새 프리미엄 모델을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흐름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만나면 초조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하는 사람들 역시 정말 다양합니다.
'Joy Of Missing Out'
사실 해외에서는 몇 년 전부터 Jomo가 유행했다고 합니다. 타인에게 신경을 끊고 자기 자신만의 기준으로 즐기고 살겠다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코로나까지 터지면서 더욱 그런 경향은 강해졌습니다. 결국 이러한 결과는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Jomo로, 누군가는 Fomo로 흐릅니다. 꼭 그렇게 극단적으로 흐를 필요는 없다고 누구나 생각하겠지만, 자꾸 한쪽으로 흘러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연결되어있으면 비교합니다. 유튜버들의 삶을, 인플루언서의 사진을, 타인들의 삶과 행동과 자신을 비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나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은 그 관심을 끌어야 자신들이 부유해지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자극적이고 비교되는 무언가를 계속적으로 올리고, 플랫폼들은 알고리즘을 통해서 더 극단적으로 끌어당깁니다.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극단적인 차단 이외에는 쉽지 않다는 것이죠. 그리고 제가 계속 이야기하던 정보의 홍수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 역시 그뿐입니다. '타인보다' 또는 '타인만큼'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면 Jomo의 삶도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Fomo든 Jomo든 문제는 둘 다 장기적 방향성은 사회의 멸종입니다. 타인의 눈치만 보는 흐름은 결국 시간을 없애고 쇼윈도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경쟁적인 동시에 빡빡한 삶을 살게 되고 사회는 붕괴합니다.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흐름은 완전히 같은 성향을 만나지 못하면 개별화된 개인 사회를 의미합니다. 개인 사회의 장기화는 역시나 사회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과연 우리는 사회의 붕괴를 막을 수 있긴 한 걸까요? 아니면 개인이 그걸 생각하기보다 내 살고 싶은 대로 살기나 하는 게 우선일까요?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게임,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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