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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용 May 02. 2024

[홍시생각 11] 돼지 허파 찾아헤매다

순대보다 허파를 더 좋아하다 보니…

나에게 돼지 순대는 돼지 머릿고기 아니면 돼지 허파이다. 

순대국집 가서 으레 찾게 마련인 순대국은 '의례적'일 뿐이다.

삶은 머릿고기에다 부들부들한 허파가 넉넉히 담긴 

커다란 접시가 나와야 비로소 흡족한 웃음이 배어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그쪽으로 익숙해져서인지

육고기 중에서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돼지고기 중에서도 삼겹살보다 삶은 돼지고기가, 

삶은 돼지고기 중의 하나인 돼지 족발이, 

순대국집에 가서도 순대보다는 머릿고기, 허파가 더 입에 맞는다. 


'소고기' 말이 나왔으니 하나 짚고 넘어가자. 

소고기가 맞나, 쇠고기가 맞나.

내가 어렸을 때는  쇠고기만 표준말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 사회 과목을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

"'소의 고기'를 줄여서 '쇠고기'라고 한다면

닭고기는 '댉고기'라고 해야 하나?"며 당시 맞춤법의 문제점을 지적하셨다. 

난 그때부터 그 말씀이 옳다고 생각해 왔다. 

어감에서도 소고기가 훨씬 낫다. 

말만 들어도 질긴 '쇠고기',  말만 들어도 부드러운 '소고기' 아닌가

지금은 둘 다 표준어이다. 그렇더라도 소고기로 쓰는 게 낫지 싶다. 


또 하나. '삶은 돼지고기' 표기이다. 

요즘은 '삶은 돼지고기'라고 하지 않고 대부분이 '수육'이라고 한다. 

나는 그게 약간 불편하다. 

원래 '수육'은 설렁탕집에 갔을 때 먹곤 했다. 

소 양지머리를 삶아 얇게 썰어놓은 걸 양념장에 찍어 먹었다. 

그런데, 장수촌 오키나와 주민들이 삶은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느니  어쩌니 하면서, 

가뜩이나 비싼 소고기보다 상대적으로 값싼 돼지고기 요리가 더 많이 소비되면서

'수육'이라는 요리 이름도 돼지가 가져가버렸다. 


수육은 삶은 고기를 뜻하는 '숙육'(熟肉)에서 비롯됐다. 

'수육'을 꼭 소고기에만 붙여야 된다는 법이 있느냐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원래 수육은 '삶은 소 양지머리'를 뜻했다.  


어떤 때는 갑자기 떠오른 추억 음식(소울푸드라고 하던가)에 꽂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엊그제가 바로 그러했다. 

그날따라 부들부들한 돼지 허파에 한 잔 생각이 간절했다. 

노인이 되면 다들 겪게 마련인 노화현상에 대해 강의를 듣다보니

기분이 우울해지고, 저조해진 기분을 끌어올릴 한 잔이 필요했다.  


문제는 허파를 먹을만한 순대집이 없는 것이었다. 

전부터 발품들여 찾아봤으나

집 부근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일산시장에는 있겠지만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허파 찾아 거기까지 가기엔 좀 거시기했다. 


엊그네 그날에는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건물 지하 1층의 허름한 순대집을 찾아가 봤다. 

내 기억으로는 10년이 넘게 장사를 해 온 집이다. 

자고나면 바뀌는 정신없는 세상에 한 자리에서 10년이 넘었다면 

보통 내공이 있는 게 아닐 것이지만 

썩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었다. 

어쩌다 한 번 찾아간 날이

그 집 쉬는 날이었고 

그 후 발걸음을 한 적이 없었다. 

  

이른 저녁에 찾아갔는데 주방일을 보는 듯한 나이 지숙한 여성분이 

나를 보자마자 "영업이 끝났다"며 미안해 한다.

순대, 특히 허파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네 집에서는 순대모둠이  "1만 몇천원한다"고 가격부터 말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나처럼 허파 들어간 옛날식 순대 모둠을 찾는 단골들이 꽤 있는 듯했다. 

"바로 옆 지하철역 부근에 포장마차가 있는데 그리 가보세요. 거기는 1인분에 3000원밖에 안 해요."

귀가 번쩍 뜨였다. 거기라면 무시로 지나다니는 곳인데 왜 내가 그걸 몰랐을까. 

반신반의하면서 가 보니 진짜로 포장마차가 군데나 있었다. 

1인분에 500원 곳은 어찌나 붐비는지 내가 그냥 물러나왔다. 

500원 더 받는 포장마차에서(왜 더 받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허파만 넣어달라고 했더니

"간 좋아하는 사람은 허파 안 좋아하고 허파 좋아하는 사람은 간 안 좋아한다"며 

숭덩숭덩 썰어 순대와 함께 포장해주었다. 


마침내 찾았구나, 집에 돌아오는 길이 흐뭇하고 뿌듯했다. 

새우젓에 찍어 한 점 맛본다. 

부드럽게 씹히는 특유의 식감이 '바로 이 맛이야' 탄성을 지르게 만든다. 

오늘은 소주 대신 막걸리다. 

한 잔 쭉 들이키니 더 생각나는 게 없다. 


왜 포장마차가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있었는데도 전혀 몰랐을까. 

다음날 아침 그쪽에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일부러 포장마차를 거듭 확인해 보았다. 

두 채가 아니라 세 채다. 아침 9시 전인데도 벌써부터 영업을 하고 있다. 

이런데도 나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요,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족 : '허파'는 순우리말이다. 그런데 왜 '허파'라고 이름붙였는지 모르겠다. '콩팥'은 강낭콩처럼 생겼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붙였다고 하는데…. 허파가 무슨 뜻인지 아는 분은 댓글에 설명을 붙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허파는 순우리말로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부아'이다. '부아가 치민다', '부아가 치밀어 오르다', '부아가 나다' 할 때의 바로 그 '부아'다. 부아는 '분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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