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을 할 때 단시간에 집중해서 폭발적인 성과를 내는 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육아에 있어서는 그 집중력이 잘 발휘되지 않는다. 내 MBTI 유형이 P인지라 즉흥적이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면이 강해서 그런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정해진 루틴이나 촘촘한 계획보다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로 움직이게 된다. 직장에서는 효율적으로 일 처리를 잘하지만, 가정에서는 ‘육아라는 장기전’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 매 순간 고민스럽다.
더군다나 체력이 좋은 편도 아니다. 육아에는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는 걸 매일 실감한다. 밤잠을 설치거나 아침부터 정신없이 아이를 돌보느라 기진맥진해져서는, 일하러 나가야 할 시간에 겨우 의지를 다잡고 출근하기 일쑤다. 아무래도 체력이 부족한 워킹맘에게는 육아가 언제나 ‘힘듦’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힘듦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눈을 돌려 보면 아이는 내가 부족한 체력과 계획성으로 좌충우돌할 때에도 스스로의 속도로, 자기만의 방향으로 잘 성장하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더 잘 돌볼까?” 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사이에도, 아이는 자신의 관심사와 규칙을 만들어 엄마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다. 예컨대 놀이를 하다가도 “엄마, 이건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본인만의 규칙을 정하거나, “이제 여기부터는 ‘괴물 모드’야” 같은 말을 하며 즉흥적인 놀이 상황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그 자유로운 순간들을 통해 아이는 더 풍부한 상상력과 자신감을 키우고, 나 역시 “아, 이렇게도 아이와 교감할 수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나를 성장시키는 주체가 아이였던 것이다.
문득 옛날에 읽었던 ‘축복받은 성격’이라는 수필이 떠오른다. 내용이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체로 소극적인 성격의 작가가 처음에는 자신의 내향적이고 꼼꼼한 기질이 불만이었는데, 살아가며 그 성격이 가져다주는 이점과 깊이를 깨닫게 되면서 ‘축복’이라는 결론에 이른다는 이야기로 기억한다. 그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자기 위로에 가까운 에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 더 지나 내 육아 경험과 ‘P형 성격’을 마주하게 되면서, ‘아, 모든 성격은 상황에 따라 장점이 되고 단점이 될 수도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무조건 좋은 성격도 없고, 절대 나쁜 성격도 없다. 그것은 사람마다, 환경마다 달리 적용된다. 예를 들어 나는 즉흥적이고 유연한 사고로 업무에서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을 때가 있지만, 반면 꼼꼼한 계획이 필요한 육아 앞에서는 헤매기 쉽다. 만약 내가 J형 엄마였다면, 아이의 하루 일정을 철저히 짜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게 훨씬 익숙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는 P형이며, 일하는 와중에도 유연한 사고를 발휘해 위기 상황을 모면하고, 아이와의 놀이에서도 ‘새롭게 튀어나오는 상황’에 재밌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런 장점을 글로써 되뇌고 있다고 해도, “정말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떠오른다. 업무와 육아를 병행하면서 늘 이도 저도 완벽하지 못하다는 불안감과 죄책감이 스며든다. 그런데 바로 그 불안감 자체가 나를 더 나은 엄마,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도 사실이다. 아이가 조금씩 자라는 속도에 맞춰 나 역시 매일의 삶을 돌아보고, 서툴지만 뭔가를 배우게 된다.
‘축복받은 성격’이라는 수필이 일깨워 준 건 아마도 이런 것 같다. 소극적이든, 내향적이든, 꼼꼼하든, 즉흥적이든 — 모든 성격은 그 자체로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 무엇을 선택하든, 어떤 모양이든, 결국 그것을 잘 살려내는 건 ‘지금 이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완벽한 계획형 엄마가 될 수 없으니, 그 대신 나만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기로 마음먹었다. 비록 피곤하고 체력이 달려도, 아이의 통통 튀는 호기심과 즉흥적인 상상력에 곧잘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것. 그건 분명히 내가 가진 강점이니까.
이제는 조금 더 마음을 편히 먹으려고 한다. 아이가 잘 자라는지는 궁극적으로 아이 자신이 보여줄 거라고 믿는다. 내가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안에서 아이와 함께 즐겁게 경험을 쌓아간다면, 그게 가장 훌륭한 육아 방식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죄책감과 불안을 안고 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오늘 아이랑 이런 놀이를 해봤고, 내일은 또 다를 거야” 하고 기대하는 마음을 품는다. 그 작은 기대와 희망이 반복될 때, 어느새 아이도 나도 한 뼘 더 자라 있을 것이다.
결국 ‘축복받은 성격’이란, 내가 가진 성격 그대로를 사랑하고 활용하는 방법을 찾았을 때 비로소 ‘축복’이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육아뿐 아니라 일에도,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일 테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의 즉흥성과 유연함을 믿고, 나와 아이가 만들어갈 매일을 기대한다. 계획적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진 못하더라도, 우리의 걸음은 분명히 어느 방향으로든 나아가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길에서 아이는 내게 매일 새로운 것을 가르쳐주고, 나도 아이에게 여전히 미완의 엄마이지만 더 나아지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죄책감은 잠시 내려놓자. 나와 아이의 방식대로, 서로에게 어울리는 속도로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지금의 시행착오조차도 소중한 추억이 되어 있을 거라 믿는다. 이것이 아이와 함께 매일을 살아가는 ‘워킹맘 P형’의 삶이자, 내가 발견한 또 다른 ‘축복받은 성격’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