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번역가의 길을 가기 위해선 한국 재단들의 번역 지원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나는 2003년 한국 방문 때 교보문고를 열심히 드나들며 프랑스에 소개할 만한 작품들을 찾았고 마음에 드는 몇 권을 사서 파리로 가져왔다. 샘플 번역과 작품 소개를 해서 여러 프랑스 출판사들에 직접 도전해 보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 첫 시도로 선택한 작품이 류시화의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이었다. 당시 나의 공동 번역자였던 프랑수아즈 나젤 씨의 도움을 받아 샘플 번역과 작가 및 작품 소개를 해서 아시아 문학에 관심 가질만한 몇몇 출판사들에 원고를 보내 보았다.
한국 문학에 대한 인지도가 여전히 낮았던 시기라 사실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다. 묵묵부답이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자고 나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다짐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반갑게도 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먼저 필립 피키에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내가 보낸 원고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번역이 우수하다면서 출판사에서 막 저작권 계약을 마친 한국 아동 소설이 하나 있는데 혹시 번역해 보지 않겠냐고 제의해 왔다. 나는 물론 뛸 듯이 기뻐하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 작품이 바로 다름 아닌 프랑스 전역에 걸쳐 많은 중학생들의 애독서가 되고 2006년 앵코럽티블 문학상을 받게 되는 « 고양이 학교 »시리즈의 첫 권이었다. 한국판으로는 1부가 다섯 권짜리였는데, 사실 출판사에서는 이 작품의 성공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한 채 1권만 시범적으로 해본다는 취지였다. 따라서 나는 번역을 하면서 진심으로 이 첫 권의 상업적 성공을 빌었다. 그래서 나머지 네 권의 번역을 완성할 수 있도록.
« 고양이 학교 » 첫 권의 번역이 끝나갈 무렵,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류시화 작가의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의 번역 샘플을 받아본 오브 출판사가 이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서 당장 번역 계약을 제의해 왔다. 필립 피키에 출판사에 이은 이 두 번째 제의는 내가 선택한 길에 좀 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오브 출판사와의 관계는 이 책 한권 이후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다.반면 필립 피키에 출판사와는 어쩐지 처음부터 인연이 오래도록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예감은 적중했다. 그것을 운명이라 부르면 운명이겠고, 어쨌든 운과 상황과 맥락적 조건들이 시기적절하게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기원했던 대로 « 고양이 학교 » 첫 권은 상업적인 성공과 함께 프랑스의 주요 아동 문학상인 앵코럽티블상 후보에 올랐다. 이 상은 « La Page »라는 문학잡지를 발간해내는 한 민간 협회가 조직하는데, 프랑스 전역에 걸쳐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주로 교내 도서관 사서나 불어 교사들이 스스로 원해서 등록하도록 되어 있다. 후보작으로는 총 일곱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각 카테고리마다 다섯 권의 작품을 선정, 가제본을 만들어 신청한 각 학교에 보낸다. 그러면 약 두 학기에 걸쳐 교사와 학생들이 작품에 대해 읽고 공부하고 또 작가나 번역가들을 초청해서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이후 5월 중으로 학생들이 직접 투표를 해서 수상자를 결정한다. « 고양이 학교 »는 초등학교 상급학년 및 중학교 1학년 카테고리에 선정되었다. 여기 학제는 초등학교가 5년, 중학교가 4년이라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5, 6학년 카테고리에 해당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