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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Jul 22. 2022

카멜레온 문학상


2017년 초 어느 날, 나는 프랑스의 리옹 3 대학 한국어과 학과장인 이민숙 교수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리옹 3 대학에는 해마다 한 나라를 지정해서 그 나라의 다양한 문화 행사를 여는 축제가 있는데, 2018년이 한국의 해로 지정되었고 그 문화 행사의 일원으로 카멜레온 문학상 후보작들을 선정해야 한다고 했다. 여러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 문학작품을 검토하고 있는 중인데, 필립 피키에 출판사에서 출간된 한국 작품들의 목록도 필요하다고 해서 나는 주요 작품들을 추려서 보내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 이교수는 최종 심사에 오른 세 작품을 통보해 왔는데, 그중 두 작품이 내가 번역한 김탁환 작가의 « 방각본 살인 사건 »과 김연수 작가의 «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었고 나머지 한 작품은 한강의 « 채식주의자 »였다. 학생들은 이 세 작품을 읽고 이듬해인 2018년 초에 투표를 통해서 수상작을 뽑도록 되어 있었다. 이 상은 상금은 없지만 번역가와 작가에게 각각의 이름을 한국어로 새긴 상패를 수여했다. 

나는 또 이교수의 초청으로 2017년 9월에 리옹 3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 문학작품의 프랑스 소개 현황과 번역의 문제를 주제로 콘퍼런스를 주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2018년 1월 말, 김탁환 작가의 « 방각본 살인사건 »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그 후 일사천리로 김탁환 작가의 프랑스 초청 및 프랑스에서의 그의 일정이 짜였다. 사실 김탁환 작가와는 2009년 한국에서 만나 식사도 하고 커피도 함께 마신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문학상이라는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시기가 공교롭게도 프랑스 철도청 동맹파업으로 인해 프랑스 전국에 교통이 마비되는 기간이었다. 따라서 시상식이 있는 날 리옹까지 기차 대신 새벽 비행기를 타고 가야 했기에, 나는 그 전날 김탁환 작가를 공항에서 픽업해서 근처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파리의 샤를러 드골 공항에서 거의 10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나니 반갑고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번역가로서 그리고 작가를 동반하는 통역가로서 모든 공식 행사의 참여는 물론 작가와 함께 리옹 구도시와 신도시 그리고 사진과 영화의 역사에 개척자 역할을 한 뤼미에르 형제의 박물관 등의 관광을 즐기기도 했다. 시상식 날 저녁에 리옹 대학의 대강당에서 학생들 약 100여 명(사실은 150여 명인데 파업 때문에 오지 못한 학생들이 많음)과 리옹 3 대학 교수들이 모인 자리에서 총장님의 인사와 함께 김탁환 작가는 자기소개와 수상에 대한 소감을 말했고, 그를 통역하고 난 후 나 역시 수상 소감을 간단히 이야기했다. 이후 « 방각본 살인사건 »을 읽은 대학생들과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는데 학생들의 질문들이 수준급이었다.

사실 나는 한국의 현대 삶을 배경으로 하는 두 소설을 제치고 이 작품이 수상작으로 뽑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약간 놀랐다. « 방각본 살인사건 »은 추리물인 장르 소설이긴 하지만 한국 18세기의 역사, 문화, 고문헌 그리고 한문 시조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따라서 대학생들이 소화해 내기에는 다소 좀 힘든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들의 질문 수준을 봤을 때 내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500페이지를 넘는 방대한 작품을 충분히 소화해낸 것 같았다.

흐뭇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행사가 끝난 후 학생들 몇몇을 붙들고 물어보았다. 이 방대하고 해박한 소설이 어렵지 않았냐고. 그들은 한결같이 전혀 어렵지 않았고 18세기의 한국 사회를 이해하게 해주는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매끄러운 번역 덕분에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리옹의 한 큰 서점에서 독자와의 만남 그리고 리옹 대학 교수들이 초청하는 저녁 만찬회 등 3일간의 행사를 마치고 파리로 올라왔다. 파리의 한 서점에서도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고, 나머지 이틀간은 파리 관광을 즐겼는데, 원래는 파리에 사는 내가 안내를 해야 마땅한데 워낙 길치이다 보니까 김탁환 작가가 안내하고 나는 따라만 다니는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벌어져서 우리는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다. 

이렇듯 나의 형편없는 방향감각은 한국에서 손님이나 친구들이 올 때마다 속절없이 드러나곤 했다. 그런 나 자신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아예 처음부터 « 나는 심각한 길치이니 내게 길을 묻는 일은 삼가 주세요 »라고 솔직히 고백하곤 한다.

아무튼 김탁환 작가는 혼자서도 파리에서 보고 싶은 곳들을 곧잘 찾아다니셨고, 마지막 날 저녁에는 파리에 있는 한 친구의 집에서 몇몇 한국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그다음 날 무사히 귀국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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