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세르라는 도시는 파리에서 약 170 킬로미터 떨어진 아담하고 오래된 도시이다. 이 도시에 사는 서점인이자 작가이기도 한 그레구아르 (Grégoire) 님이 매년 5월이면 옥세르 국제 도서 축제(le Festival international du livre Caractères à Auxerre)를 조직하는데, 2018년에 여러 해외 초청 작가들 중 필립 피키에 출판사의 두 작가도 초빙했다. 그들이 다름 아닌 일본의 오토 이가와 작가와 한국의 공지영 작가였다. 덕분에 나는 김탁환 작가를 맞이하고 한 달 상간으로 공지영 작가를 동반하게 된 셈이었다.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 높고 푸른 사다리 », « 봉순이 언니 » 등 세 작품이 이미 피키에 출판사에서 나왔기 때문에 옥세르 도서 축제에서는 이 세 작품을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공작가는 일본 작가 오토 이가와 씨 팀(일본 출판인 여성 2명과 그녀의 작품을 번역하는 프랑스인 번역가)과 파리의 같은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다음날 같은 기차를 타고 옥세르로 가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기차를 타기 전에 나는 파리의 한 식당에서 공 작가와 단둘이 만나 점심을 함께했다. 나는 작가의 « 높고 푸른 사다리 »와 « 봉순이 언니 »를 이미 번역한 바 있고 매디아나 입소문을 통해 작가에 대해 많이 들어왔지만 직접 대면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내가 느낀 첫인상은 아주 호탕하고 강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녀의 작품들을 통해서 이미 예상하고 느낀 바 그대로였다.
약 1시간가량 기차를 타고 도착한 옥세르는 아주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는 소도시였다. 우리를 위해 예약해놓은 4성급 호텔 앞을 유유히 흐르는 욘(Yonne) 강이 가슴을 확 트이게 해 주면서 동시에 낭만적이고 쾌적한 풍경을 자아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서 공 작가와 나는 도시를 한 바퀴 돌았는데, 콜롱바주 양식의 건물들이며 중세시대에 지은 성당 등 오래된 도시의 냄새가 물씬 났다. 또한 이 도시의 한 복판에 옛 수도원이 있었는데, 도서 축제가 바로 여기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사람들이 도서전 준비로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이튿날 아침에, 공지영 작가는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만남이 있었는데, 학교에 도착하니 약 30명의 학생들과 여자 불어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 날을 위해서 6개월 전부터 학생들과 함께 공 작가의 번역된 세 작품을 읽고 공부했다면서, 이렇게 먼 걸음을 해주신 작가님께 감사드리고 이렇게 직접 만나 뵐 수 있어서 학생들은 물론 자신도 영광이라고 했다. 이어 공 작가의 간단한 자기소개에 이어 학생들의 질문 시간들로 이어졌는데, 역시 6개월간 작품들에 대해 공부한 표가 역력히 났다. 고등학생들의 질문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질문 수준이 높았고, 그들의 관심은 작품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한국의 역사,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마지막에는 번역 작업에 대해 나에게도 한두 가지 질문을 했다. 1시간 내내 반짝거리는 눈빛들 앞에서 공 작가도 열정적으로 대답했고, 나 역시 열정적으로 통역을 했다. 정말로 모두에게 흥미진진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첫 스타트를 잘 끊어서 그런지, 그다음 날 대강당에서 약 150여 명의 청중 앞에서 토론자로 나선 서점인이자 작가 그리고 도서전 조직의 책임자인 그레구아르(Grégoire)씨와 공지영 작가의 대담 역시 대성공으로 끝났다. 대담이 끝나자 모든 청중들이 일어서서 우레와 같은 기립 박수를 쳤다. 공 작가와 나는 몸 둘 바를 몰라하며 어색하게 서있다가 박수가 멈출 줄 모르며 길어지자 약간 부끄럽기도 해서 얼른 대강당을 빠져나와 버렸다. 연극 무대에서처럼 퇴장했다가 다시 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이어서 공 작가는 사인회를 했는데, 대담에서 깊은 감명을 받아서인지 상당수의 독자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꽤 긴 줄을 이루었다. 대담에서 공 작가는 자신이 살아온 상당히 보수주의적이었던 한국사회에서 이혼을 세 번이나 했고 지금은 홀로이고 세 아이의 엄마로서 자랑스럽고 당당하게 살고 있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했는데, 사인받으러 온 여러 여성 독자들이 공지영 작가의 대담성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고 칭찬을 했다.
또한 각자 원하는 책 한 권씩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작가 브런치와 번역가 브런치 시간이 있었는데, 공 작가는 장강명 작가의 « 한국이 싫어서 »를, 나는 김탁환 작가의 « 방각본 살인 사건 »과 반디의 « 고발 »을 각각 소개했다. 모든 일정을 성황리에 마치고 파리로 돌아오는 날, 도서전 측에서 고맙게도 옥세르의 명품 중 하나인 샤블리 포도주 한 병씩을 우리에게 선물했다.
파리로 돌아온 공지영 작가는 주불 문화원 잡지 팀, 그리고 프랑스의 한 기독교 잡지 La vie의 기자와 각각 인터뷰를 했다. 하루 저녁은 파리의 한 서점에서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졌고 그다음 날 저녁에는 주불 문화원에서 문학 비평가이자 작가이기도 한 선 로즈 씨(Sean Rose James)를 토론자로 초청해서 공 작가의 세 작품을 중심으로 문학 콘퍼런스를 진행했는데, 좁은 문화원 강당이 미어터질 정도로 예외적인 대성황을 이루었다. 150명 이상의 청중들이 모였고, 이중 반은 파리에 거주하는 공 작가의 한국 팬들이었다.
콘퍼런스가 끝나자 문화원 원장님이 내게 다가와서 하신 말씀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 문화원 역사상 가장 질 높은 문학 콘퍼런스였고, 가장 많은 청중수를 기록했습니다. »많은 독자들이 사인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섰고, 사인회가 끝나자마자 공 작가와 나 그리고 필립 대표님은 웅성거리는 청중을 뒤로하고 얼른 문화원을 빠져나와 근처에 있는 한 한국식당으로 갔다.
맛있는 포도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면서 우리는 다음으로 출간할 공 작가의 차기작에 대해 논의했는데, 나는 이미 한번 소개한 바 있는 « 도가니 »를 적극 추천했다. 처음 소개했을 때는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고 꺼려했는데,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일어났고 온갖 종류의 성폭행 사건 고발이 잇달아 난무하는 프랑스의 현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볼 때 « 도가니 »가 그다지 동떨어진 딴 세상의 이야기라고만은 할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필립 대표님은 흔쾌히 출판하겠다는 승낙을 했고, 이 작품은 2020년 9월에 « 침묵의 아이들 »이라는 제목을 달고 필립 피키에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공지영 작가는 옥세르에서의 3박 4일 일정과 파리에서의 2박 3일 일정을 성황리에 마치고 한국으로 무사히 귀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