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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Aug 06. 2022

몽펠리에 한국 축제


프랑스의 남불 도시 중의 하나인 몽펠리에에 무용가이자  무용 감독이기도 한 남영호 씨를 중심으로 2015년에« 여기 한국이 있다(Corée d’ici) »라는 한국 문화 축제가 조직, 탄생되어 매년 11월에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축제의 일원으로 매년 불어로 번역된 한국문학 한 작품을 선정하고 그 도서를 약 백권 정도 구입해서 몽펠리에의 두 고등학교에 돌려 학생들에게 읽히고, 또 모든 독자들을 대상으로 독후감 대회를 열어 먼저 신청하는 참여자들에게도 선착순으로 책을 나누어준다. 그리고 11월에 작가를 초청한다.

2019년 7월, 남영호 감독이 내게 전화를 걸어 작품과 작가 선정을 부탁해 왔을 때, 나는 서슴지 않고 권정현 작가와 그의 소설 « 칼과 혀 »를 제의했다. 이 작품은 바로 그해 2019년 가을에 피키에 출판사에서 나올 예정이서 책이 이미 만들어진 상태였고 이를 읽은 필립 대표님과 편집장님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소설이기도 했다. 또한 홍보용 도서를 읽은 기자나 도서관 사서들이 작가에 대해 문의해 오기도 했고. 게다가 권 작가는 내가 번역을 하면서 의사 교환을 가장 많이 한 작가이기도 하고 한국에 갔을 때 여러 번 만나서 친분을 쌓은 작가이기도 했다. 따라서 11월 그의 초청건은 여러모로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는 파리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우리 집에서 묵고 그다음 날 나와 함께 기차를 타고 몽펠리에로 내려갔다. 우리는 페스티벌 주최 측에서 예약해놓은 메르퀴르 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를 구경하고 그날 저녁에 있는 페스티벌 개막식에 참여했다가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다음 날 아침에 우리는 책을 나누어준 두 고등학교 중 하나를 방문했다. 안내를 받아 간 곳은 계단식 강당이었고, 나이 지긋한 여교사와 약 30명의 학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교사는 반갑게 우리를 맞으면서 « 칼과 혀 »에 대해 학생들과 많이 공부했으니 아마도 좋은 질문들이 나올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질문들은 그들이 책을 완독하고 내용을 완전히 소화했음을 역력히 드러냈다. 특히 권 작가가 개인의 사생활을 잠깐 언급했을 때는 그들의 눈이 더욱더 초롱초롱 빛을 발했다.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자마자 몇몇 여학생들이 계단에서 내려와 권 작가의 메일 주소를 요청했고 그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다음 날 오후는 두 번째 고등학교를 방문했는데, 페스티벌 협회 기획 책임을 맡은 여자분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 역시 계단식 강당이었다. 그 강당에 드문 드문 앉은 학생들 약 20여 명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나는 작가와 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한 후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라고 했다. 이어 약 50분간 열띤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고 있는데 누가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왔다. 

머리가 희끗하고 호리호리한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분이었는데, 들어오자마자 화가 잔뜩 난 얼굴로 « 아니, 도대체 여기서 뭣들하고 있느냐?! »며 소리쳤다. 나와 권 작가는 물론 학생들 모두가 당황해하고 있는데, 강당 위쪽에 앉아있던 페스티벌 기획 책임자가 핏대를 세우며 내려와 « 당신이 뭔데 여기 와서 이 난리를 피우냐? 우리는 허락을 받고 이 강당을 사용하고 있다 »라고 소리치며 맞섰다. 그러나 자신을 이 학교의 교장이라고 밝힌 남자분 앞에서 그 기획 책임자는 바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해야 했다. 교장 선생님 왈, 지금 학교 도서실에서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거의 1시간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작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며 지금 빨리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했다.

도서실로 가는 길에서 교장 선생님은 화를 낸 것에 대해 나와 권 작가에게 정중히 사과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도서실에 도착한 나는 교장 선생님이 왜 화를 내셨는지 금방 이해할 수가 있었다. 백여 명이 훨씬 넘는 학생들이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고 도서관 사서와 여러 선생님들이 그 옆에 서 계셨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 거의 한 시간 가량이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는 엉뚱한 데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 왜 화가 나지 않았겠는가. 학교와 페스티벌 측의 정보 전달에 오류가 있었던 것 같았다.

우리와 함께 온 학생들을 합쳐서 거의 15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우리는 처음부터 새로 시작했다. 작품과 작가 그리고 번역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이 너무도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지라 모두가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어느새 예정된 50분의 시간이 훌쩍 지나 종이 울리자 학생들 모두가 입을 모아  « 어머, 벌써? 너무 아쉽다! »라고 푸념을 늘어놓길래,  나는 그다음 날 몽펠리에 시립 도서관에서 독후감 대회 시상식 및 질의응답 시간을 다시 가질 예정이니 작가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그때 오라고 하면서 위로했다. 우리를 안내만 하고 가신다던 교장 선생님도 결국엔 끝까지 남아서 만남의 시간이 끝나자마자 내게 다가와서 아주 흥미진진한 문학 토론이었다고 극찬을 하고 가셨다.

그다음 날, 몽펠리에 중심가에 있는 전원주택의 분위기를 풍기는 한 아름다운 식당에서 우리는 필립 대표님과 플로랑스 편집장님과 함께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시립 도서관에서의 독후감 시상식이 오후 2시에 예정되어 있어서 식사 후 함께 그리로 가기로 했다. 식당을 나와 도서관 쪽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남영호 회장이 전화를 해서 오늘 몽펠리에 시가 전차와 버스가 동맹파업을 하는 날이라 학생들은 물론 다른 청중들도 많이 못 올 거라고 걱정을 했다.

프랑스는 그런 나라였다. 언제 어디서고 동맹 파업으로 대중교통을 마비시킬 수 있는 나라. 30년을 넘게 이 나라에서 살아온 나이지만 국민의 발을 묶어버리는 이런 동맹 파업에는 여전히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도서관 강당에 도착하니 30명도 채 안 되는 독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고 싶어 했던 학생들이 많이 못 와서 아쉽긴 했지만 시상식과 질의응답 시간 그리고 사인회 등을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무사히 마치고 그다음 날 우리는 파리로 올라왔다.

당시 주불 문화원이 새 건물로 이사를 하고 있는 중이라서 문화원에서의 콘퍼런스는 하지 못하고 파리에 있는 두 서점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날 밤에는 내 친구들 약 20여 명을 우리 집에 초대해서 각자 가지고 온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권 작가의 작품 일부를 발췌해 읽기도 하고 수다도 떨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권정현 작가가 떠나고 몇 개월 안되어 코로나 전염병이 전 세계를 강타하는 바람에 2020년과 2021년은 모두가 거의 격리된 상황에서 지냈기 때문에 국제적인 문학 교류도 뜸해졌고, 몽펠리에 한국 축제도 2020년에는 온라인으로 이루어졌다. 2021년 6월에 나는 또다시 남영호 회장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2021년 한국 축제 때 문학 행사로 내가 번역한 세 작품을 중심으로 작문, 그림, 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독후감 대회를 조직하려고 하니 세 작품을 선택해 달라고 했다. 나는 곧바로 2021년에 나온 주원규 작가의 « 메이드 인 강남 », 편혜영 작가의 « 선의 법칙 » 그리고 공지영 작가의 « 봉순이 언니 »를 선정했고, 주원규 작가를 프랑스에 초청하기를 건의했다.

세 작품의 도서를 구입해 배부하고 홍보 문구와 포스터를 만들어 인터넷과 각 기관에 돌리는 작업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모두가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행사인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여전히 판을 치고 있는 시기라서 그런지 작가의 해외 초청건에 관해서는 몇 번이나 메일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원이 묵묵부답이라서 남 회장과 나는 거의 포기 상태에 빠졌다. 이미 부탁해놓은 주불 문화원 문학 콘퍼런스 행사도 취소되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러다가 9월 말쯤 남영호 회장이 내게 전화를 걸어 고등학생 및 일반 독자들이 세 작품 중 적어도 한 작품의 작가는 와야 한다는 요청이 많아서 그런데, 페스티벌 주체 측에서는 어떻게든 비행기표는 가능하니 혹시 피키에 출판사에서 프랑스에서의 왕복 기차비 및 숙박비를 댈 수 없느냐고 문의해 왔다. 나는 당장 피키에 출판사에 연락을 해서 가능성을 확인받아 남 회장에게 전달했다. 이렇게 해서 주원규 작가의 프랑스 방문이 급조되어 모든 일정이 일사천리로 짜였다. 아쉽게도 주불 문화원 행사는 너무 늦은 탓에 포기해야 했지만.

권정현 작가와 달리 주원규 작가의 초청건은 급하게 이루어진 관계로 축제 기간 3주 중 마지막 주에 왔고, 따라서 한국축제협회와 협력하는 두 고등학교 중 한 학교에서만 학생들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다른 한 고등학교는 그 전 주에 내가 내려가서 나의 세 번역 작품을 중심으로 학생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이미 가졌더랬다. 반면 나는 한국축제협회와 협력하는 몽펠리에의 한 서점을 컨텍해서 독자와의 만남과 사인회를 조직했다.

주원규 작가는 고등학교 도서실에서의 학생들과 질의응답 시간, 서점에서 북 토크, 독후감 시상식에서 시상과 질의응답 시간 등 총 세 개의 행사를 몽펠리에서 무사히 마치고 파리로 올라왔다. 사실은 한국에서의 일정이 바빠 몽펠리에서 한국으로 바로 귀국하겠다는 작가님을 굳이 파리로 모시고 올라온 이유는 파리의 한 서점에도 북 토크를 예약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동반한 모든 작가들이 그랬듯이, 주원규 작가도 가는 곳마다 독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고 흥미진진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파리에서 북 토크 이후 우리 집에서 저녁 파티를 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아 서점 근처의 한 중국 식당에서 내 친구들과 함께 간단히 식사를 함께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금상첨화인 것은 « 메이드 인 강남 »을 출간한 한국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출판인들이 작가를 서포트하기 위해서 프랑스로 와서 몽펠리에와 파리를 함께 동행했는데, 덕분에 구석구석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니며 우리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행운을 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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