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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Aug 20. 2022

나의 아늑한 보금자리와 내 하루의 일상


나는 파리의 남쪽 한 근교 도시에 있는 조그마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침이면 새소리에 잠이 깨이고 조금만 걸으면 아름다운 연못과 시야가 확 트이는 푸른 공원에 닿을 수 있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 자리한 나의 이 보금자리를 나는 무척 사랑한다.

 이 집을 고르기 전에 남편과 나는 무수한 발품을 팔아 백여 개 이상의 아파트들을 보러 다녔었다. 빠듯한 예산으로 건물 수준과 아파트 크기, 지리적인 위치 등 모든 면에서 입에 맞는 떡을 찾으려니 무척 힘들었다. 마침 꽤 괜찮은 건물에 내부 인테리어를 완전히 새로 해야 해서 시장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아파트 한 채를 발견해 간신히 구입했다. 이후 남편은 주말마다 내부 인테리어 작업을 했고, 거의 8년 만에 적재적소에 맞는 가구 구입까지 완전한 공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온갖 정성을 쏟아부어 꾸민 아파트인데 정작 본인은 얼마 누리지도 못하고 떠나야만 했고 결국 나 혼자서 그 아늑한 공간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가끔 시간이 나는 주말이면 친구들을 초청해서 나의 주 특기 요리 메뉴인 해물 불고기를 맛있는 포도주와 함께 먹고 마시면서 수다 떠는 시간을 나는 아주 즐긴다. 내가 소개하고 번역한 한국 작가들이 프랑스에 올 경우, 시간이 허용하는 한 우리 집에 초청해서 맛있는 음식과 포도주를 대접하는 것 역시 내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지금까지 황석영, 김영하, 김진경, 편혜영, 권정현, 송아람 등의 작가분들이 나의 이 작은 보금자리를 거쳐갔다. 기타 한국에서나 다른 나라들에서 오는 내 친구들에게도 나의 아늑한 공간은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필수적인 장소가 되었다.

나의 하루는 약 1시간가량의 스트레칭과 필라테스 체조로 시작된다. 이렇게 표현하니 뭐 대단한 스포츠 우먼 같은데, 사실은 인터넷에서 몇 가지 운동법을 배워서 잠도 깨우고 근육도 풀 겸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주는 정도이다. 그리고1차 아침으로 요구르트 하나와 과일 2개를 먹으면서 메일과 온라인 « 리브르 엡도 » 잡지 등을 체크한다. 1차 아침 식사가 끝나면 인근 연못을 한 바퀴 돌고 오는 30분간의 조깅을 한다.

약 9시 반부터 본격적인 번역 작업에 들어가는데, 11시가 되면 나의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소한 치즈 한 조각과 버터와 잼을 바른 식빵 하나를 달콤한 한국 커피믹서와 함께 먹는 나의 2차 아침 식사 시간인 것이다. 접시를 옆에 놓고 일을 하면서 조금씩 아껴먹는 그 맛, 그리고 그 순간의 행복감이란, 정말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기다려지는 게 바로 이 시간일 정도이니까.

어찌 보면 너무도 하찮고 사소한 일상의 일부인데 그 순간이 왜 그토록 내게 행복으로 다가오는지 나 자신 역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행복은 결코 멀리 있는 것도 아니요, 거창한 것에서 찾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 절감된다. 행복은 도처에 널려 있는데 그것을 보고 느낄 줄 아는 것은 각자의 몫에 달려있지 않겠는가.

내 번역 작업은 점심시간인 1시까지 지속되고, 한 시간 휴식 후 오후 2시에 재개된다. 끊임없이 단어를 찾고 문장을 만들었다가 지우고 다시 만들고 하는 작업을 열정을 가지고 하는 만큼  나는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한다. 어느덧 어깨와 허리가 뻐근하게 아파 와서 시계를 보면 벌써 17시, 서서히 오후 산책을 나갈 시간이다. 겨울에는 해가 빨리 져서 좀 더 일찍 나가기도 하지만.

나의 집 근처는 넓디넓은 쏘 공원, 작은 오솔길로 가득한 앙리 셀리에 공원, 몇백 년 묵은 나무들과 봄이면 목련과 철쭉꽃이 만발하는 식목원, 그 근처에 있는 샤토브리앙 작가의 집, 등등 쾌적한 산책길들이 많아서 나는 매일매일 산책로를 바꾸어가면서 걷는 것을 좋아한다. 모르는 주택가를 거닐며 웅장하고 그림 같은 집들을 눈요기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또한 걸으면서 작품 구상도 하고, 오디오북이나 법륜 스님의 유튜브를 듣기도 하고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를 떨기도 하고…… 가끔은 급하지 않는 전화 인터뷰일 경우도 나는 이 시간에 약속을 잡는다. 이렇게 매일 하루 1시간 내지 2시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짐없이 이어지는 이 산책 역시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언젠가부터 나는 더 이상 자동차로 시장을 보지 않는 습관을 들였다. 아주 장거리가 아닌 이상 모든 걸 걸어서 해결한다. 시장 역시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종종 슈퍼에 들러 조금씩 봐오는 편이다.

그리고 나의 번역 작업은 주로 저녁 먹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나는 대개 저녁 8시 뉴스를 보며 식사를 하고, 가끔 흥미로운 영화가 있으면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저녁 시간을 독서에 할애한다. 읽어야 할 작품들이 늘 쌓여 있기에 내게 독서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따라서 지하철이나 의원 대합실이나 앉아서 기다려야 하는 곳이면 무조건 독서를 하는 것이 내 습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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