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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Aug 27. 2022

가라오케와 나의 친구들


 

30년 이상이나 프랑스에서 살아온 나는 프랑스인 친구나 다른 국적의 친구들도 있지만, 가장 규칙적으로 만나는 친구들은 그래도 한국인들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파리와 파리 근교에 사는 약 십여 명의 한국 친구들과 돈독한 우정을 나누며 지내고 있다. 공동 카톡을 만들어 수다도 떨고, 유용한 정보 및 유튜브도 교환하고, 몇몇이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고, 여행 사진이나 모여 놀면서 찍은 사진도 공유한다. 모두가 50대와 60대 연령층의 여성들인데, 이중에는 남편 및 아이들과 살고 있는 이들도 있고, 별거, 이혼, 졸혼, 사별 등의 이유로 혼자 지내는 이들도 있다. 자식들은 거의가 성인이 되어 독립한 상황이니까.

나는 물론 다른 공동 카톡도 여러 개 있지만, 내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만든 이 우정의 서클에 특별한 애정을 갖는다. 같은 파리 하늘에 살지만 거의가 아직도 일을 하고 있는 터여서 아주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 년에 추석, 구정, 봄소풍은 어김없이 함께하고 이외에도 내가 언제 한번 모이자 하면 우리 집이나 또는 친구들 중 하나가 자기 집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면 각자 잘하는 음식 하나씩 뚝딱 만들어 들고 가서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놀다 온다. 어쨌든 대부분 모임의 시도는 내가 한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노래를 좋아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집에서도 요리를 하거나 샤워를 할 때와 같이 조금의 시간 여유라도 생기면 라디오로 늘 프랑스 가요를 듣는다. 그러니 지나간 유행가나 새로 나온 곡이나 거의 모르는 게 없을 정도이다. 비록 제목과 가사와 가수 이름들을 일일이 외우지는 못하지만. 노래를 듣는 것은 물론 노래를 직접 부르고 춤을 추는 것도 좋아한다. 노래를 잘 부르지도 못하고 춤을 폼나게 추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서 친구들이 놀리기도 하지만, 그냥 그러고 싶은 흥이 내 안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래하고 춤을 추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정신노동으로 복잡해진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모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라오케도 하자고 늘 제의하곤 한다. 이때 가라오케의 주 메뉴는 한국의 7080 팝송들이다.

다행히도 친구들 대부분이 가라오케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고, 그중 나만큼 가라오케를 좋아하고 나보다 훨씬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는 친구가 있고, 나보다 더 팬이어서 한국에서 아예 가라오케 기계를 사 가지고 와서 집에서 가끔 혼자 노래 연습을 하는 친구도 있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는 이 친구 집에 자주 모여서 가라오케를 했는데, 전염병 확산 이후로는 가라오케를 하기 위한 모임은 뜸해졌고, 대신 추석이나 구정 모임을 할 때 이 친구가 가라오케 기계를 들고 다니면서 모임이 있는 집의 텔레비전에 연결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 한국 명절들에는 대개 프랑인 남편들도 참가하는데 그중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고, 억지로 요청해야만 겨우 한 명 정도 일어나서 부르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다고 모일 때마다 반드시 가라오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친구 집은 큰 정원에 자쿠지가 있어서 날씨가 좋으면 수영복을 가지고 가서 자쿠지를 즐기기도 하고, 어떤 친구 집 정원에서는 숯불 바비큐를 해먹기도 한다. 이때 각 모임에는 10명 모두 모이기는 거의 드물고 보통 여섯 내지 일곱 명이 함께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살아생전 명예와 부와 권력을 모두 가졌던 이어령 선생이 생의 마지막에 남긴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 친구가 없는 삶은 실패한 인생이다. » 남들의 눈에는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편하게 만나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 한 명이 없는 자신의 삶은 외로웠고 실패했다고 하셨다. 참으로 맞는 말씀이다. 다행히도 나는 이 진리를 좀 더 일찍 깨달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나는 내 생의 마지막에 가서 내 인생을 실패했다고 말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웃음).

파리의 좁은 한인사회에서 살다 보면, 누구는 대통령상, 누구는 문화부 장관상, 누구는 한불 문화상, 누구는 프랑스의 무슨 무슨 상을 탔다는 말이 심심찮게 귀에 들린다. 또 어떤 이들은 나더러« 당신은 충분히 상을 타고도 남을 일을 하는데 왜 상을 못 받느냐 »고 하면서 응달에서 일만 하지 말고 로비 활동도 좀 하라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류의 로비 활동이나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행동 같은 건 질색하는 성격이다 보니 상을 타는 명예 등에 별로 관심도 없고 집착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나는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상을 탈 특별한 자격이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모든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내 일에 충실할 뿐이다. 더구나 나의 직업은 먹고 살기 위한 돈벌이를 넘어 일하는 즐거움과 보람까지 안겨다 주니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것으로도 이미 충분한 보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명예가 가져다주는 기쁨은 잠시이고 지나가버리는 것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가꾸어온 우정이 주는 즐거움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시기와 질투가 없는 우정, 이해타산 관계가 아닌 우정. 만나면 반갑고 편안하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거리고 웃을 수 있는 우정. 나는 그런 우정을 쌓아 왔다고 자부할 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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