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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Jul 20. 2022

프랑스판« 고발 » 에 대한 관심과 논란


북한 작가 반디의 단편집이 2016년 3월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한국과 프랑스에서 여러 친북 인사들이 이 작품을 깔아뭉개는 직접적인 공격에 나섰다. 내가 보기에 그들의 비판은 논리적인 모순과 억측으로 점철된 공격을 위한 공격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또한 아주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까지 꼬집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즉 전혀 지적인 비평이 아닌 개인적 감정이 실린 비난이었다.

그들은 입을 모아 반디의« 고발 »이 문학적 가치가 전혀 없는 형편없는 글쓰기라고 비하했다. 혹자는 반디의 일곱 편 단편들이 북한 주민들의 불행한 삶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공주의의 선전용으로 한국에 사는 한 탈북자가 쓴 것이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혹자, 즉 평양을 자주 드나드는 한 친북파 프랑스인은 지금껏 어떤 한국학 전문가도 이 텍스트의 존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또한 이 작품이 아주 무미건조하고 빈약한 어휘로 쓰였다는 점에서 남한의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탈북자들이 쓴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 단편의 작중 인물인 어린아이가 아파트의 창문을 통해 김일성 광장에 걸린 마르크스 초상화를 보고 경기를 일으켰다는 문장을 꼬집으면서, 이역시 북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썼다는 조작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 이유로 그는 처음에는 김일성 광장에 마르크스 초상화가 결코 걸린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김일성 광장 주변의 어떤 아파트에서도 초상화를 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정정했다. 마르크스 초상화는 2012년에 김일성 광장에서 떼어졌는데, 2012년 이후에 북한을 방문하기 시작한 그로서는 당연히 초상화가 걸린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가 나중에야 정보를 알고 고쳤던 것이다. 한때 북한을 방문해서 여러 번 북한 작가들을 만나고 왔다는 한 한국 작가는 만일 반디라는 작가가 진짜로 북한에 살고 있다면 왜 그에 대해 한마디도 들은 적이 없냐며, 이것은 반디가 실존하는 인물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반디는 자신이 쓴 원고를 10년 이상이나 장롱 깊숙이 숨겨 놓았다가 목숨을 걸고 외부로 내보낸 상황이었는데 북한에 방문한 한 남한 작가에게 나는 북한 체제에 반하는 글을 쓰는 반디라는 필명을 가진 사람이라고 과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원고의 유출이 작가의 목숨이 달려있는 문제이고 따라서 극비에 남한에 도착한 상황이었는데 아무리 북한학 전문가들이라 해도 그 이전에 원고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남한에 도착해서 출판되어도 프랑스판이 나오기 전까지는 일말의 관심조차 가지지 않은« 북한학 전문가들 »이었지 않은가? 일곱 편의 단편 모두가 북한 주민들의 불행한 삶들만 보여준다는 점에서 반공의 선전용으로 쓰인 작품이라고 했는데, 작품의 시대적인 배경이 북한의 대 기아 시대이니만큼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이들은 또 반론할 가치조차 없는 아주 사소한 예를 들고 나서면서 번역도 아주 나쁘다고 매도했다. 그런데 파리 도서전 때 나에게 다가와 « 이토록 쓰레기 같은 작품을 출판한 »내게 너무도 실망했다고 직접적으로 공격한 이에게 나는 반문했다. 그럼 이 작품을 읽고 감동을 받고 호평을 쓴 다른 많은 프랑스 독자들은 작품성을 전혀 볼 줄 모르는 바보라서 그러냐고? 나를 공격한 이 왈, 그것은 내가 불어로 번역을 잘해서 그렇다고. 원본이 나쁘면 아무리 번역을 잘해도 소용없다는 걸 번역가인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대답하고 그만두었지만 당시 나는 그들의 모순과 억측에 너무도 기가 차서 반박하고 싶은 마음조차도 잃었다.

또 한 명의 극단적인 프랑스인 친북 파는 « 둔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국정원은 이 작품을 보급하려고 노력했으나 남한 정부의 조작 가능성을 잘 의식하고 있는 남한 국민들의 여론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북한 정보의 실체에 어두운 대부분의 서양 기자들과 협력하면 서양 독자들의 여론을 조작하는 것은 누워서 떡먹기만큼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는 등의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괴변을 늘어놓았다.

나 역시 국내외 여러 매디 아들의 인터뷰를 받았고 최선을 다해 변론을 했다. 주로 반디 작가의 글쓰기 재능과 작품을 번역하면서 느낀 지적 희열감에 대해서 말했고,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친북파들이 반박을 위한 반박을 위해서 든 아주 사소한 디테일들과 관련한 질문들에 대해서는 반디의 작품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상상과 허구를 허용하는 문학작품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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