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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 Jun 19. 2022

북한 주민 돕기 협회


그러나 나는 내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뜨거운 뭔가를 잠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이미 준비된 번역 원고를 나의 프랑스 지인들에게 읽어보고 의견을 달라고 했다. 한국의 정치적 사황에 물들지 않은 제3의 눈으로 읽은 견해를 듣고 싶었다. 원고를 읽은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지금껏 다큐멘터리나 탈북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서 상상해온 북한인들의 비참한 생활 실정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그중 친구 한 명이 내게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듣더니, 며칠 후 파리의 한 카페에서 프랑스인들로 구성된 북한동포 돕기 협회 모임이 저녁에 있다면서 한번 가보라고 건의했다.

그래서 나는 큰 마음먹고 용기를 내어 회의가 열린다는 그 장소로 나갔다. 카페의 2층 전체를 회의 장소로 빌린 것 같은데, 내가 도착하니까 약 30여 명이 모여 있었다. 젊은 남녀 대학생을 비롯해 중년, 노년, 남녀를 불문한 모든 연령층이 섞여 있었다. 회의 시간이 되자 협회 회장님이신 피에르 리굴로(Pierre Rigoulot)씨가 나처럼 처음 오는 사람들을 위해 협회에 대해 잠깐 소개하고 나서 자신이 준비해온 북한의 현 정치 상황과 북한 주민들의 삶 그리고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가능한 방법 등에 대해 자료를 발표했다. 약 20분간의 발표가 끝나고 질의 토론 시간이 이어졌다. 질문 대부분이 어떻게 하면 북한 주민에게 외부의 정보를 보내고 조금이나마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나는 거의 한 시간 동안 그들의 토론을 듣고 있으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자신들과 아무 상관도 없는 먼 나라, 남의 나라의 핍박받는 국민들을 생각해주는 그들의 박애 정신에 대해 존경과 고마움과 동시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그들의 토론에 끼어들까 말까 몇 번이고 망설였다. 질의 토론 시간은 거의 마무리점에 다다르고 있었고 내 가슴은 심하게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오랫동안 후회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만신의 용기를 내어 폐회하기 바로 직전에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나는 우선 짧은 내 소개와 함께 회의에 참석한 모든 분들을 향해 내가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을 표명하고 나서 북한 작가 반디의 작품 출판과 관련된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어떻게 그런 일이? »라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내 설명을 다 듣고 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출판을 9월로 미룰 하등의 이유가 없으며, 그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논리와 같다는 것이었다.

참석자 중 한 분은 노련한 번역가이자 프랑스의 한 중견 출판사에서 기획을 맡고 계신 분인데,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3월 도서전에 맞추어 출간할 경우 3만 부 정도 나갈 수도 있겠지만, 9월로 미룰 경우 그 여파가  10분의 1로 줄어들 수 있음을 각오하라는 것이었다. 만일 3월에 출간해서 그 작품에 반대하는 작가들이 와서 도서전을 망칠 경우, 자기는 프랑스 출판인들도 많이 알고 있고 있으니 함께 연대해 주겠다고까지 했다. 또한 젊은 학생들은 자신들의 메일을 적어주면서 책이 나오면 연락하라고, 문학 블로거들에 퍼 날라 주겠다고 했다. 그날 그 회의에 참석한 모든 분들이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내게 한 마디씩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나는 회의가 끝나고 협회 회장님인 피에르 리굴로 씨한테 가서 명함을 한 장 부탁하면서 혹시 반디 작가의 원고를 읽고 싶으시다면 메일로 보내주겠다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읽어 보겠다고 했다. 그때가 12월 말 성탄절 바캉스 직전이었다. 그의 명함을 보니 그는 역사학자이자 사회 역사 연구원 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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