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뜻깊은 행사를 몇 달 앞두고 사달이 났다. 피키에 출판사에서 이미 여러 작품을 출간해낸, 즉 한국에서 유명 작가로 알려진 한 작가의 책들을 주로 번역하는 부부 번역가 팀이 파리를 방문했을 때, 필립 대표님이 무심코 « 고발 »의 출간 준비를 이야기하면서 한번 읽어보라고 번역 원고를 넘겨준 것이 문제가 되었다.
서울로 돌아가 번역 원고를 읽은 번역가 팀은 작품 내용과 특히 이 책이 한국의 한 극우파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격노하면서 자신들이 번역을 맡고 있는 유명 작가에게 바로 이 사실을 알려버렸다. 좌파 성향을 가진 그 작가가 이 소식을 듣고 역시 노발대발하면서 피키에 출판사가 이 단편집을 출간하는데 대해 격렬히 반대하고 나섰던 모양이었다. 문제의 번역가 팀은 이 작가의 의견을 대변하는 장문의 메일을 출판사로 보내왔는데 그 핵심 내용은 만일 피키에 출판사가 반디의 작품을 낼 경우 작가는 더 이상 피키에 출판사에서 책을 내지 않음은 물론 지금까지 한 모든 계약서들도 철회할 수 있다는 일종의 위협과 협박이었다. 반디의 작품을 낸 한국 출판사는 물론 이 작품의 추천사를 쓴 사람들이 거의가 극우파라는 점과 남북이 화해를 해야 하는 마당에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는 이런 선동적인 글을 출판해서는 안된다는 작가의 입장을 내면에 깔고서.
나는 출판사에서 전달해준 이 메일을 받고 잠시 망연자실했다. 언론 출판의 자유가 보장된 21세기의 민주국가에 살고 있는 시민으로서 어떻게 이런 협박류의 메일을? 그것도 내가 평소에 늘 존경과 좋은 마음을 품고 있던 분들로부터? 나는 그들의 이 무분별하고 과격한 반응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가 안 되니 화가 났다. 그래서 피키에 출판사 대표님께 당장 전화를 걸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언론 출판의 자유가 보장된 프랑스에서 이런 황당한 협박에 놀아나서는 안되며 예정된 프로그램에 따라 1월에 책을 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곧 대표님의 난처하고도 불편한 심기를 알아차렸다. 그간 우정을 쌓아온 한 작가를 잃는 것도 잃는 것이지만 그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한국 문학으로서는 뜻깊은 큰 행사를 눈앞에 두고 이 한 권의 책 때문에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며 시간을 두고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나는 인터넷을 뒤져 이« 고발 » 작품을 낸 한국 출판인에 대해 알아봤고, 한국 지인들에게 이 출판인에 대한 이미지도 타진해 보았다. 각 지인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인간쓰레기 »에서« 나름대로 확고한 정치적 이념을 가진 똑똑한 사람 »에 이르기까지 의견이 천차만별이었다. 정치적 성향을 갖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것이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정치적 성향이나 어떤 정치인을 좋아하고 싫어하고는 각 개인의 자유이다. 그 누구도 내가 저 정치인 혹은 언론인을 싫어하니 그 사람과는 상종을 하지 말아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다. 하물며 한국에서 프랑스의 출판사에 자신이 인정할 수 없는, 혹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반하는 작품이라서 출판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야 말로 독재적인 태도가 아닌가.
나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소위 말하는 몇몇 한국의« 좌파 지식인 »작가들에게도 메일로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털어놓으며 작품을 한번 읽어보고 의견을 달라고 했다. 애석하게도 한결같이 내가 염려했던 답들을 보내왔다. 그들은 단칼에 이 작품을 일컬어 극우 반공 단체나 우파 정부 측에서 만들어낸 조작이라고 단정 지었다. 실제로 북한에서 살고 있는 작가라면 북한 체제에 대해 최소한의 애정은 담겨 있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처럼 이토록 일방적으로 증오만을 품고 글을 쓸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도 확신에 찬 단정들 이서 나는 잠시 이 작품을 본 내 안목에 대해 의혹을 품었다. 나는 좌파든 우파든 한국의 정치에 대해 어떤 선호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한걸음 물러서서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 작품을 보려고 애써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 작품을 조작이라고 단정 지을 근거가 없어 보였다. 일곱 편의 단편들 거의가 대 기아로 수백만명의 북한 주민들이 죽어나가는 시절에 쓰였는데 어떻게 그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체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애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북한에서의 그 끔찍한 고난을 직접 겪어보지 않고 남한에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서 갖는 막연한 동경과 이상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작품을 읽은 결과가 아닐까?
문학은 허구이고 상상의 산물이다. 문학 작품이 문학적 장치를 통해 어떤 정치 체제를 교묘하게 풍자하고 비꼬아서 독자들을 그럴듯하게 설득시킨다면 그것이 비록 사실과 다르다 하더라도 문학이기에 가능한 것이고 그것이 작가의 재능이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지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한 체제나 한 인물을 가지고 몇천 번이라도 다르게 상상해서 구상해 낼 수가 있다. 하물며, 반디의 일곱 편의 단편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보고 들어온 북한의 현실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은가? 내 생각엔 북한의 현실에서 살며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왜 이 작품을 문학 작품 그 자체로 보지 않고 교묘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북한 밖의 누군가가 썼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치적 성향의 색안경을 끼고 본 결과로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반디라는 작가의 존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백번 양보해서 반디라는 가명의 작가가 북한 안이 아닌 밖의 누군가라고 해도 나는 이 작품을 써낸 작가에게 그리고 그의 훌륭한 재능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나는 또 피랍 탈북 인권 연대의 대표이자 이 작품의 저작권 소유자인 도희윤 대표에게 왜 이 작품을 하필이면 극우파로 알려진 출판사에서 출판했는지 문의해 보았다. 한국 출판사들이 북한 이야기라면 모두가 이미 식상해 있는터라 아무도 이 작품을 출판해 주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나는 또 인터넷을 뒤지다가 어느 대학 교수의« 고발 »작품에 대한 아주 긍정적인 비평을 발견했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가운데서 올라온 희귀한 리뷰였고, 게다가 한국에도 이 작품의 문학성에 대해 나와 비슷한 안목을 가진 사람이 있구나라면서 다소 위로감을 느끼며 읽어내려갔는데, 그 밑에 달린 여러 댓글들을 보면서 또다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슨 뇌물을 먹었기에 아니면 극우 단체의 어떤 꼬임수에 넘어갔길래 이 돼먹지도 않은 작품을 이렇게 찬양하는 글을 쓴 것이냐며 글쓴이를 노골적으로 매도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반디의« 고발 »은 한국의 좌파와 우파의 극단적인 대립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것인가?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만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이 작품이 좌파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파 정부나 극우파의 조작물 이라면 적어도 우파 측에서 이 작품의 찬양을 통해서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고 완전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나는 혼자서 울분을 삼키며 고민 고민하다가 피키에 출판사 대표님께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내가 컨텍한 지인들과의 의견 교환, 북한 작가 작품을 출판하기 어려운 한국의 출판 상황, 한국의 정치적인 상황 등등을 언급하면서 반디의« 고발 »을 예상대로 2016년 1월에 출판하자고 사정했다. 피키에 대표님도 나만큼 고심하는 것 같았고, 확답을 내리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가 그다음 날 내게 다시 전화해서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모처럼 한국을 주빈국으로 맞는 3월의 파리 국제 도서전을 탈없이 넘기고 9월에 출판하자고 제의했다. 너무도 간곡한 제의였고,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그 순간 계속 내 주장만을 밀고 나갈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그러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