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번역가의 길로 들어서면서 번역한 많은 작품들 중 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단연 북한 작가 반디의 단편집« 고발 »을 선택할 것이다.
2020년 8월, 나는 파리에서 불문학 박사학위 공부를 하는 한 한국 유학생으로부터 메일 한통을 받았다. 한국 외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고발 »번역 연구팀의 한 멤버로서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일이었다. 처음 한국에서 출간되었을 때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이 작품이 그리고 프랑스에서 출간되었을 때 무수한 뭇매를 맞았던 이 작품이 지금에 와서 한 대학 연구팀의 연구 대상? 한편으로는 놀라웠고 또 한편으로는 반갑고 가슴 뿌듯한 만족감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무정하리만큼 냉대를 받았던 이 작품이 어떻게 해서 3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번역 출간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게 된 것인지, 그것의 첫 단추를 누른 기여자로서 그 내막을 여기서 풀어보려 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한국문학 컬렉션 기획을 담당하게 되면서 나는 거의 매 주말마다 한국의 베스트셀러와 새로 나온 책들을 검토하곤 하는데, 내가« 고발 »을 발견한 것은 베스트셀러 목록이 아니라 새로 나온 작품들 중에서였다. 책과 작가 소개 그리고« 미리 읽기 » 몇 페이지를 읽어본 나는 상당한 호기심이 생겨 내가 함께 일하는 에이전트에게 당장 PDF 원고를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책은 총 일곱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를 읽어나가는 내 가슴속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지금껏 말로만 듣고 어렴풋이 상상만 했던 북한 주민들의 비참하기 그지없는 일상사들을 한눈에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거의 모든 인권과 자유를 박탈당하고 살아가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동정심, 비애, 슬픔 그리고 부조리하기 짝이 없는 김 씨 세습제와 공산 독재 정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문체를 볼 때, 이미 오래전에 써놓은 작품들인 듯 상당히 고전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횡포한 정치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과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이상적인 사회주의 나라를 만들자는 초기의 꿈이 하나의 헛된 환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순간 느끼는 그들의 실망과 절망감을 풍자와 은유법으로 아주 섬세하게 묘사해낸 작가의 재능을 나는 높이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허구화된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 일곱 편의 작품을 통해 내가 한 번도 발을 디뎌본 적이 없는 북한 사회의 현실을 마치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읽는 이의 감성을 움직이는 글쓰기야 말로 진정한 이야기꾼의 솜씨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나는 망설임 없이 이 작품을 소개하기로 결심하고 한국 매디아들과 독자들의 반응을 검토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책에 대한 독자와 프레스들의 반응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한국의 문단과 지식층들은 과연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는가? 나는 깊은 실망감으로 탄식했다. 한국의 차가운 반응과 상관없이 나는 이 단편집을 피키에 출판사에 소개했고 필립 대표님도 흔쾌히 승낙했다.
곧 저작권 구매가 이루어졌고 나는 2015년부터 번역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의 재단들에 번역 지원을 문의했으나 북한 작가라서 지원이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프랑스의 국립 도서 센터에서도 지원을 거부했다. 2015년 9월경 번역이 완성되었고, 우리는 2016년 3월 파리의 국제 도서전에 맞추어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그해에는 한국이 처음으로 주빈국으로 초청된 터라, 한국 문학으로서는 아주 의미 있는 행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