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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와 가위

by 서리가내린밤

며칠 전, 서울에서 학교 폭력에 연루된 나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당진에 있는 큰아버지 댁으로 쫓겨났다. 아버지는 전화 한 통으로 "자숙해라"라는 짧은 말만 남겼다. 그 말의 의미는 명확했다.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강한 경고였다. 어릴 적 한 번 가본 적 있는 곳이었지만, 이후로는 처음 방문하는 집이었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 보니 큰아버지 댁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웅장한 저택이었다. 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자, 뒷마당에 비닐하우스 네 채가 줄지어 서 있었다. 집 안은 깔끔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낡아 보였다. 나무 바닥은 삐걱거렸고, 주황색 불빛이 방 안을 물들여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공간이었다.

빈둥거릴 시간은 없었다. 아침, 점심, 저녁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큰아버지를 도와 뒷마당의 비닐하우스에서 일을 해야 했다. 도착한 첫날, 큰아버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1층 맨 끝 방에는 절대 가지 마라."

처음엔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고된 노동에 지쳐 하루가 끝나면 방에 쓰러져 잠들기 바빴다. 호기심을 가질 틈조차 없었다.

7일째 되던 날,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큰아버지는 "그만두고 갔다"라고 짧게 설명했지만, 이상하게도 누구 하나 작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나 역시 지쳐 있었고, 하루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날 밤,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다. 몸이 꿈쩍도 하지 않았고,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몇 번이고 눈을 감았다 떴지만,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순간, 내 시야에 형이 보였다. 이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사촌 형이었다. 그런데 형의 얼굴이 갑자기 염소의 얼굴로 변했다. 붉게 충혈된 눈이 나를 응시했다. 등줄기를 타고 싸한 기운이 흘렀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밤마다 가위에 눌리며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처음 도착했을 때 큰아버지가 경고했던 그 방이 떠올랐다. 도대체 무엇이 있길래 그렇게 가지 말라고 했을까. 궁금증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틈을 노렸다. 화장실에 가겠다며 조심스레 1층 끝 방으로 향했다. 손잡이를 돌리고 살며시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방 안에는 여러 구의 시체가 마치 전시된 듯 놓여 있었다. 시체들은 이미 뼈만 남아 있었다. 벽에는 '바포메트'라는 이름과 함께 염소 얼굴을 한 악마의 그림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일하던 사람들의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중 한 사진에 시선이 멎었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형이었다.

시체 앞에는 이름표가 있었다. 거기엔 형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아래, 시체들이 놓인 바닥에는 화장된 자들의 항아리가 나열되어 있었다. 손끝이 떨렸다. 이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때, 밖에서 살려달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문틈을 살짝 열어봤다. 왼쪽 끝 방 옆으로 지하로 향하는 비밀 통로가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일하던 사람 중 한 명이 끌려갔다.

나는 망설일 틈도 없이 몰래 그들을 따라갔다.

지하는 어두웠다. 그러나 희미한 불빛 아래로 검은 천을 둘러쓴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 끝에는 바포메트의 거대한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앞, 재단 위에 한 남자가 묶여 있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지금까지 사라진 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죽임을 당한 것이었다.

손을 떨며 휴대폰을 꺼냈다. 조용히 동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영상을 보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검은 천을 두른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벨 소리가 울렸다.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천천히 시선이 올라갔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이 켜졌다.

아버지였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숨이 멎었다. 온몸이 가위에 눌린 것처럼 굳어버렸다. 아버지가… 이곳에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형이 죽은 이유를, 사라진 사람들의 행방을.

그리고 이제, 다음 차례는 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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