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카 세아의 침대에 함께 누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먼 옛날, 지진 가족이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었어. 지진 부부는 세아처럼 사랑스러운 딸을 낳았지. 그 딸의 이름은 여진이었어."
여진이는 부모님의 보물 같은 존재였다. 처음으로 뒤집기를 했을 때,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엄마’, ‘아빠’라고 처음 말을 했을 때, 부모님은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다. 여진이가 자라면서 점점 더 활발하고 호기심 많은 아이가 되어 가는 것을 보며, 부모님은 그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흘러 여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것이 설렜다. 하지만 학교에 가던 첫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여진이가 학교 교문을 넘어서는 순간,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뭇가지들이 부러지고, 창문이 덜컹거리며 교실 안에서는 아이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친구들은 두려움에 떨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다 여진이를 바라보자, 모두 경악하며 뒷걸음질 쳤다.
"여, 여진이가 온 순간 땅이 흔들렸어!"
"혹시 여진이가 지진을 일으키는 거 아니야?"
누군가가 외치자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 여진이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자신의 발밑에서 일어난 흔들림이 친구들에게 두려움을 준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집으로 돌아온 여진이는 힘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아빠는 딸의 눈빛이 축 처진 것을 보고 걱정스러웠다. 엄마는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여진아, 무슨 일이 있었니?"
여진이는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저를 무서워했어요. 제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땅이 흔들렸거든요. 친구들은 저를 보고 도망쳤어요. 이제 저는 친구가 없어요."
엄마, 아빠는 여진이의 말을 듣고 가슴이 미어졌다. 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아빠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부드럽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진아, 사실 우리는 특별한 존재란다. 우리는 세상을 지키는 착한 지진이야."
여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엄마는 딸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들이 있어. 그 괴물들은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때로는 아주 위험하기도 해. 우리가 땅을 흔드는 건 그 괴물들을 쫓아내기 위해서란다."
아빠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학교에 갔을 때 땅이 흔들린 건, 네가 그곳에서 괴물을 감지했기 때문이야."
여진이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결심한 듯 말했다.
"그럼, 저도 괴물과 싸울래요! 친구들을 지키고 싶어요!"
다음 날, 여진이는 다시 학교에 갔다. 친구들은 여전히 두려워하며 멀찍이 떨어져 있었지만, 여진이는 흔들리는 학교 안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곧 무언가를 느꼈다.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땅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학교 건물보다도 큰 괴물이었다. 그런데 괴물의 형체는 뚜렷하지 않았다. 연기처럼 흐릿했고, 주변을 둘러보며 아이들의 속삭임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여진이 무섭지 않아?"
"여진이 때문에 학교가 흔들린 거잖아."
그 말들이 퍼질수록 괴물은 더욱 커지고 사나워졌다. 붉은 눈을 번뜩이며 으르렁거렸다. 친구들은 비명을 지르며 다시 도망쳤다.
그러나 여진이는 물러서지 않았다. 마음속에서 강한 힘이 솟구쳤다. 두 손을 주먹 쥐고 땅을 세차게 울렸다. 그러자 강한 진동이 퍼져 나갔고, 괴물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균형을 되찾고 더욱 거세게 으르렁거렸다.
여진이는 혼자서 괴물을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부모님을 떠올렸다.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여진이는 온 힘을 다해 땅을 다시 한 번 울렸다.
그 순간, 멀리서 또 다른 강한 진동이 일어났다. 학교를 향해 달려오는 두 개의 실루엣. 그것은 바로 여진이의 부모님이었다.
아빠는 커다란 자루를 들고 있었다. 그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괴물은 우리가 함께 막아야 해."
엄마는 친구들에게 외쳤다.
"너희도 도울 수 있어! 여진이에게 용기를 줘!"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은 처음엔 망설였지만, 이내 여진이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여진아, 힘내!"
"우리가 널 믿어!"
친구들의 응원을 들은 여진이는 더욱 힘을 냈다. 땅을 더욱 강하게 흔들었고, 괴물은 점점 약해졌다. 아빠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괴물을 자루 속으로 빨아들였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땅을 진동시켜 괴물을 완전히 봉인했다.
괴물이 사라진 후, 친구들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여진이에게 말했다.
"미안해, 여진아. 처음엔 무서웠지만, 넌 우리를 지켜줬어. 정말 고마워."
여진이는 활짝 웃었다. 그렇게 여진이와 친구들은 진정한 우정을 쌓아갔다. 그리고 이후로는 더 이상 학교가 흔들리지 않았다.
이야기를 다 들은 세아는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도 지진 가족이 세상을 지키고 있는 거구나."
나는 세아의 머리를 토닥이며 속삭였다.
"그렇지. 그리고 언젠가, 너도 세상을 지키는 사람이 될지도 몰라."
세아는 눈을 감고 곧 평온하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