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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훈의 비밀

by 서리가내린밤

1학기 기말 성적이 발표되었다. 권우는 또다시 성훈에게 밀렸다. 장학생이 되기 위해 매일 밤을 새워 공부했지만, 성훈을 넘을 수 없었다. 2년 내내 성훈에게 뒤처지는 것만이 화가 났다.

권우는 자신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는 성훈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은 하루도 빠짐없이 도서관에서 공부했지만, 성훈은 전혀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동기들과 클럽에서 밤새 술을 마시며 놀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결과는 항상 성훈이 우위였다. 권우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저렇게 놀면서도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걸까?

시험이 끝난 후, 몇몇 학생들은 한가한 모습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중 한 아이가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 뉴스 봤어? 여섯 살 남자아이가 또 살해당했대."

"아, 나도 봤어. 미친 놈이 왜 6살 남자아이들만 노리는 거지?"

강의실 안은 순식간에 술렁였다. 최근 발생한 '6세 남아 연쇄살인 사건'은 모두의 관심사였다. 지금까지 다섯 명의 아이들이 살해당했는데, 그 원인은 모두 달랐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를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성훈이 무심하게 물었다.

"근데 그게 연쇄살인인지 어떻게 아는 거야?"

"그걸 왜 모르냐. 죽은 다섯 명의 아이들에게 공통점이 있잖아. 6살 남자아이, 그리고 두 팔과 두 다리가 묶여 있었다는 흔적."

성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그럼, 너희는 살인범이 어떤 사람 같아?"

성훈의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생들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각자 추론을 내놓으며 범인의 정체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성훈은 어느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권우는 성훈을 따라갔다. 사실 그는 일주일 전부터 성훈을 몰래 쫓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훈이 그냥 놀기만 하면서 수석을 차지하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래서 성훈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날도 성훈의 뒤를 밟았다. 그런데 성훈은 학교 도서관이 아닌 다른 도서관으로 향했다. 권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공부 안 할 리가 없지. 학교 도서관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공부한 거였구나!'

권우는 성훈이 자리를 잡는 모습을 몰래 촬영했다. 친구들에게 성훈의 실체를 폭로할 생각이었다. '공부 안 해도 머리가 좋아서 성적이 잘 나온다'라는 친구들의 말을 뒤집고 싶었다. 그런데 우연히 책장에 꽂힌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상했다. 다른 책들은 책등이 보이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유독 한 칸의 책들만 거꾸로 꽂혀 있었다. 권우는 호기심이 동해 책을 꺼내 제목을 살폈다.

첫 번째 책은 어린아이가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을 다룬 소설이었다. 두 번째 책은 특정 가스에 몇 분간 노출되면 사망한다는 내용을 담은 의학 논문이었다. 세 번째 책은 화재로 아이가 사망한 사건을 맡은 형사가 기록한 책이었다.




권우의 손이 떨렸다. 책을 다시 꽂고 주변을 살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성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서 뭐 해?"

권우는 깜짝 놀라 몸을 돌렸다. 성훈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 깜짝이야... 성훈아."

"책 보러 왔어?"

"어... 근데 여기 이상한 책들이 있더라고."

성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상한 책? 무슨 책?"

권우는 주변을 살피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 사건 있잖아. 오전에 얘기했던... 6세 남아 살해 사건..."

성훈이 미소를 지으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권우는 긴장한 채 말을 이었다.

"여기 그 살해 방법이랑 똑같은 내용의 책들이 있어."

그 말을 들은 성훈은 피식 웃었다.

"너 제법 똑똑하구나, 권우야."

그 미소에서 권우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직감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본능적으로 성훈에게서 도망치려 했지만, 어느새 성훈의 손에 날카로운 칼이 들려 있었다.

"네 말이 맞아. 권우야. 내가 한 명씩 죽이고, 여기 그 기록을 남긴 거야. 네가 첫 번째로 그 전시를 감상한 독자가 된 거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아니야. 미안할 것 없어. 어차피 오늘은 마지막이었으니까. 이제 더 이상 뒷처리하는 것도 귀찮고... 마지막을 너랑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아."

성훈은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던 책을 권우에게 내밀었다. 동반자살에 관한 책이었다.

권우는 온몸이 얼어붙은 채로 그 책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성훈의 미소는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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