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비는 쏟아질 듯 거칠었고, 천둥번개가 하늘을 가르며 몰아쳤다. 그리고 그 순간, 진호연은 총을 맞았다.
20시간 전, 부대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진호연 씨 되시나요? 여기는 서연대병원입니다. 진호성 씨가 사망하셨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짧은 문장이 귓가를 때리는 순간, 그의 심장은 무너졌다. 현실을 부정하며 병원으로 달려간 그는 형의 시신을 둘러싸고 있는 형사들을 마주했다.
"미안합니다. 호연 씨. 진형사님이 잠입 수사를 하던 중 변을 당했어요. 정말 미안합니다."
형사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사과했지만, 호연의 분노는 그를 짓눌렀다.
"왜 우리 형만 이렇게 누워 있어야 합니까? 누가 그랬습니까? 우리 형을 이렇게 만든 놈들, 대체 누구냐고요!"
"진정하세요. 호성 형사님을 죽인 놈들, 우리가 반드시 잡겠습니다."
하지만 형사의 다짐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렸다.
장례식 내내 넋이 나간 채 형의 영정 사진만 바라보던 호연. 손끝으로 사진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형... 나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형이 지금도 웃으면서 나한테 올 것 같은데... 거짓말이라고 해줘. 꿈이라고. 제발..."
그를 바라보던 군대 동기 세경이 조용히 다가와 말했다.
"호연아, 잠깐 화장실 좀 다녀와. 얼굴이 너무 안 좋아. 세수라도 하고 와."
세경의 배려에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난 호연은 화장실 거울 앞에서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문밖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진짜 안타깝다. 이번에는 진호성 형사가 타깃이었다며?"
"마약과 2팀 놈들한테 찍혔다잖아. 고팀장이랑 마약 조직이랑 짜고 있었는데, 진형사가 거절했다가 당한 거지."
"고팀장이 마약 사범들을 도와서 부유층 도련님들에게 마약을 유통시키고 있었다고 하더라고. 근데 경찰서 내부에서도 쉬쉬하고 있대. 위신 떨어진다고."
"결국 진형사님만 희생된 거네..."
화장실 칸 안에서 숨죽이고 있던 호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리고 문을 박차고 나가 두 형사에게 다가갔다.
"우리 형 이렇게 만든 그놈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놀란 두 형사는 도망치려 했지만, 호연이 그들을 붙잡았다.
"아는 거 다 알아요. 두 분한테 해가 가게 하진 않을 테니까, 제발 말해주세요."
얻어낸 단서를 손에 쥔 호연은 형의 영정 앞에 섰다.
"형, 형을 이렇게 만든 놈들, 내가 반드시 처단할게. 기다려. 늦지 않게 갈게."
그리고 그는 장례식장을 뛰쳐나갔다. 뒤에서 세경이 소리쳤지만, 그의 발걸음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인천항 부두. 컨테이너들이 빽빽하게 늘어선 그곳에서는 한밤중에도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새끼들아! 헤르라는 놈 어디 있어!"
갑작스러운 침입에 조직원들이 놀랐지만, 그가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비웃음을 흘렸다.
"뭐야, 혼자 온 거야? 형처럼 죽고 싶어서?"
"너가 헤르냐?"
"나라고 하면? 설마 사과받으러 온 건 아니겠지?"
"우리 형을 죽인 놈, 그 얼굴을 직접 보고 똑같이 만들어 주려고 왔다."
헤르는 주변을 둘러보며 피식 웃었다.
"우린 15명인데 넌 혼자야. 그래도 한 번 붙어볼래?"
싸움이 시작되었다. 호연은 닥치는 대로 적들을 쓰러뜨렸고, 11명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등 뒤에서 "탕!" 하는 총성이 울렸다.
어깨에 총을 맞은 호연은 비틀거리며 뒤돌아섰다. 경찰 한 명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그냥 가라고 했잖아."
헤르는 피식 웃으며 호연의 상처를 짓눌렀다. 그리고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를 가리키며 속삭였다.
"잘 가라."
그렇게 호연은 바다 속으로 던져졌다. 몸은 무겁게 가라앉았다. 위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바다 아래는 고요했다.
그때,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연아."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바닷가, 바위 위에 형과 나란히 앉아 있던 기억.
"이렇게 좋은 날씨에 파도가 세게 치는 게 말이 돼?"
"왜 안 돼? 파도의 마음이지."
"잔잔하면 좋잖아. 힘들게 용쓸 필요 없이."
"근데 너 알아? 저 거친 파도 아래, 바닷속은 되게 고요하다는 거.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엔 또 다른 세상이 있어. 그래서 난 다시 태어난다면 바닷속 생물로 태어나고 싶어."
"형이 다시 태어난다면, 나도 형 따라서 바닷속 생물로 태어날 거야."
"그럼 상어로 태어나."
"오, 바다의 포식자. 좋은데? 근데 왜?"
"상어는 가라앉지 않으려고 평생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해. 입을 벌려 물이 지나가게 해야 하지. 좀 피곤할 수도 있어."
"그럼 왜 상어로 태어나라고 한 거야?"
형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피곤한 삶이라도 다시 태어나서, 지는 삶은 살지 말라고."
바다 속, 깊이 가라앉으며 호연은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형... 상어가 될게. 그리고 이번 생에서는 끝까지 싸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