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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죽지 않는 그의 이름

by 서리가내린밤

나는 그날 하나뿐인 친구를 잃었다.


사건 당일, 새벽부터 건호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경찰대로 첫 출근을 한다며 아침부터 걱정 섞인 말들을 한껏 쏟아내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말이 건호의 마지막 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신건호, 너 나 동정하냐?”


혈기 왕성했던 사춘기 열다섯, 나는 학교 옥상에서 건호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때 건호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나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다가왔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었던 말은, 그가 나를 동정해서 친구가 된 거냐는 말뿐이었다. 건호는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고, 잘생긴 외모에 공부도 잘해서 친구나 선후배 할 것 없이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전과 7범 딱지 때문에 사람들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아이였다.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 버려졌고, 아버지는 길게 보면 언제든지 나를 또 버릴지도 모를 존재였다. 그때 나는 건호에게 왜 나를 친구로 삼으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두려운 마음과 설레는 마음이 공존했을 뿐이었다.


“임현섭. 너는 친구를 동정해서 사귀냐? 그리고 너가 뭐라도 돼? 동정할 만한 그런 인물이 되나?”


건호는 그런 내 질문에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나는 건호의 그런 태도가 정작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까지 나는 친구들 시선을 피해 수업 외에는 항상 학교 옥상에 있었고, 건호는 나와 친구가 된 이후 다른 친구들의 부름을 거절하며 나와 함께 옥상으로 올라갔다. 급식도, 매점도 모두 나와 함께했다. 어떤 아이들은 건호에게 나와 가까이 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건호는 그런 친구들과 선을 그었다. 나는 건호에게 말했다.


“너 그러다가 나 하나 때문에 있는 친구들 다 없어지는 거 아니냐?”


건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친구 많다고 좋은 거 아니야. 친구랑 놀지 말라는 말을 하는 그게 친구냐? 너도 너를 자꾸 낮게 보지 말고. 너는 너가 지켜. 아버지는 아버지고, 너는 너야.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고. 절대 너를 무시하지 마. 너도 너를 지켜주지 않으면 누가 너를 지켜줄 거냐?”


건호의 말에는 내가 들어본 적 없는, 낯선 힘이 있었다. 내 아버지나 엄마는 물론, 내가 나 자신에게도 이런 말을 한 적 없었다. 건호는 내게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하고 진심 어린 말들을 건넸다. 그런 건호 덕분에 우리는 빠르게 가까워졌고,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 며칠 동안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던 아버지가 종종 나타났다. 그는 다친 몸으로 돌아왔고, 다리에 통깁스를 하고 팔에도 깁스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보며 잠시 안쓰러운 마음을 가졌지만, 그가 술을 마시고 나면 그 마음은 무색해졌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집에 돌아오면 주먹을 휘두르며 난폭해지기 일쑤였다. 그런 아버지 때문에 나는 집에 있을 때마다 불안했고, 나는 건호와 함께 있으면 그 불안이 사라지는 듯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집에 있을 때, 건호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있던 중, 나를 보고 건호를 보며 말했다.


“친구냐? 임현섭, 너는 무슨 친구를 사겨도 꼭 허여멀겋게 생긴 기지배 같은 놈이랑 노냐?”


건호는 아버지의 무시하는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아버지에게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신건호입니다.”


그 순간 나는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내가 건호에게 이런 상황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호는 나를 보며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버지는 그런 건호를 향해 다시 한 번 말했다.


“내가 무슨 니 아버지야. 나는 마음에 안 들어. 걔랑 놀지 마.”


그 말은 나를 멍들게 했다. 내가 건호와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아버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심지어 내 입에서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건호와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며 놀란 눈빛을 보냈다. 그 순간, 내 안에 갇혀 있던 분노가 터져 나온 것이었다.


사건 당일, 건호는 경찰로서 첫 출근을 했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나는 그날 아침, 건호가 새벽부터 나에게 전화를 걸어 걱정하며 말했다. 그 후 6시간 만에 건호는 경찰차를 타고 출동했다. 유흥업소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만취자가 다른 사람의 차량을 도주 중이라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건호는 우연히 그 도주 차량을 추적하게 되었다. 그 차량의 운전자가 내 아버지라는 것을 인식한 건호는 사고가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속력으로 차를 몰았다. 그때 큰 화물차가 교차로에서 갑자기 나타나 건호의 차량을 들이받았다. 사고는 큰 충격을 동반했다. 내 아버지는 급히 차를 조작해 사고를 피하려 했지만, 결국 전봇대에 박혔다. 그리고 그 사고로 건호는 즉사했다.


그날 점심을 막 먹고 나왔을 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얼떨떨하게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 한 켠에서는 홀가분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아버지니까.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목과 다리에 깁스를 한 채로 멀쩡히 살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다소 실망했다. 죽을 고비를 넘겼을 것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이번엔 뭐예요? 또 뭐 때문에 이렇게 된 거예요.”


“저… 네 친구 말이야. 이름이 건호였던가?”


“건호 왜요? 아버지가 제 친구 이름을 갑자기 왜 물어요?”


“죽었대. 네 친구.”


그 말에 나는 한순간 믿을 수 없었다. 장난처럼 들렸고, 아버지의 표정도 말투도 전혀 그럴 듯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 경찰 두 명이 들어왔다. 아버지를 취조하기 시작했다. 나는 경찰에게 물었다.


“지금 말한 죽은 경찰, 오늘 첫 출근한 신건호 경위가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그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내 친구 건호가 그렇게 세상에서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때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오는데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데는 순서가 없어. 그 친구 운명이 여기까지였던 거야. 너무 슬퍼하지는 마라.”


그 순간, 아버지가 악마처럼 보였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분노와 혐오가 밀려왔다. 나는 그 말을 절대 잊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아버지니까”라는 마음을 버리기 위해서였다. 세상은 건호를 버리고 아버지를 품었지만, 나는 아버지를 버리고 건호를 품기로 했다. 그는 나에게 영원히 죽지 않고 남아있을 것이다. 그래서 매일 그 말을 되뇌었다.


“건호야,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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