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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으로 말하는 법

말소리튜닝 39

by 신미이

우리말의 리듬을 살리려면 단문으로 말해야 합니다.

단문으로 말하려면 주어와 서술어의 거리가 가까워야 합니다.

주어와 서술어의 거리가 가깝다는 건 무슨 말일까요?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대학 총장님의 입학식 인사말 중 일부입니다.

"우리 대학은 매년 300여 명의 학생이 스스로가 기획하고 주도하는 ‘글로컬 해외연수’를 통해 지구촌 곳곳에서 봉사하고 연수하고 리더십을 함양하고 또는 취업의 기회를 탐색하고 각양각색의 문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미국, 유럽, 아시아 등 56개국 301개 대학과 교환학생 프로그램, 글로벌 프런티어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문장입니다. 그것도 아주 깁니다. 주어는 '우리 대학은', 서술어는 '운영하고 있습니다'이죠. 주어와 서술어의 거리를 보세요. 그 사이에 이 말 저 말이 끼어들어가 거리가 한참 벌어져 버렸습니다. 주술관계가 안 맞는 부분도 눈에 띕니다. 말의 리듬이 있을 리 없습니다. 말을 쓴 게 아니라, 사실은 글을 써놓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렇게 장황한 말을 듣다 보면 중간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다 듣고 나서는

"내가 무슨 말을 들었지?"


총장의 인사말, 아니 '인사글'을 제가 이해한 맥락에서 '인사말'로 재구성해 보겠습니다.

주어와 서술어의 거리를 가깝게, 단문으로 말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대학은/ 다양한 해외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먼저, /'글로컬 해외연수'에/도전하세요./
매년/ 3백 명이/ 기회를 잡고 있습니다./
학생 스스로가 기획한 방식대로/ 지구촌 곳곳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봉사도 좋고,/ 연수도 좋고,/ 문화체험도 좋습니다./

또,/ 교환학생 프로그램과/ 글로벌 프런티어에도/ 도전하십시오./
우리 대학과 교류하고 있는/ 56개 나라의 301개 대학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차이가 느껴지나요?

문장마다 3~4 음보가 살아나면서 잘 읽히고, 잘 들립니다.

'글쓰기'를 하지 말고, '말쓰기'를 하면 생기는 변화입니다.


이렇듯 단문으로 말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말 기본 구조에 따라 담백하게 말하면 됩니다.


우리말의 기본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어+서술어 (꽃이 피네)

주어+부사어+서술어 (나비가 꽃에 앉았네)

주어+보어+서술어(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었네)

주어+목적어+서술어(벌이 꿀을 빨고 있네)

주어+목적어+부사어+서술어(일벌은 여왕벌을 대장으로 여기지요)


기본 뼈대는 주어와 서술어입니다.

그 뼈대 사이에 부사어, 목적어, 보어가 들어갑니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는 어디에 나타날까요?

서술어입니다. 서술어까지 들어야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사과를 좋아한다.

나는 사과를 싫어한다.


영어와 비교해 보세요.

I like an apple.

I hate an apple.


영어도 말하는 사람의 의도는 서술어로 알 수 있습니다. 영어는 주어 바로 다음에 서술어가 나오기 때문에 문장이 길이와 상관없이, 말이 시작되면 바로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다릅니다.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지면 서술어가 계속 뒤로 밀리는 구조입니다.

말이 끝날 때까지 의도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잖아요.


진짜 그런지 확인해 볼까요?


의도1) '말하는 사람의 의도는 서술어에 있다, 그래서 주어와 서술어는 가까울수록 전달력이 높아진다'는 점을 꼭 기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도2) '말하는 사람의 의도는 서술어에 있다, 그래서 주어와 서술어는 가까울수록 전달력이 높아진다'는 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끝까지 들어봐야 알겠군요. 끝까지 안 들으면 의도를 왜곡할 수 있겠어요.


따라서, 단문으로 말하는 습관을 길러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는 '글쓰기'와 '말쓰기', 어떻게 다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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