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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에서 연예인 체험하다 비행기 놓칠 뻔한 사연

[2일차/칠레] 충동적인 여행자의 아슬아슬한 여행법

by 도나윤

동적인 여행자의 의식의 흐름


P.M.1:30


1. 겁대가리 상실

하나라도 더 보고 가야겠다는 욕심에 갑자기 이 위험천만하다는 산티아고에서 혼자 돌아다닐 용기가 솟아났다. 나는 시내투어만 마치고 곧장 우버 타고 안전하게 공항으로 돌아가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나 빼고 동양인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거리에 마침 한 무리의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등장했다. '그래, 다들 여행하러 오는 곳인데 뭐.' 매치기, 총기강도, 강력범죄 따위의 단어는 더 이상 관심사가 아니었다.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공항 짐 보관소에 들렀다가 오후 5시 비행기를 타려면 대략 3시 전후로 공항에 도착해야 하니 2시 반에는 우버를 타야 하고, 그럼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 서둘러 행선지부터 정해야 했다.


2. 시끄러운 마음의 소리

나의 '직관' 수많은 후보지 중 산타루시아 언덕 전망대를 콕 집었다.

"투어 때 보니까 기 진짜 예쁘던데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나와서 아쉬웠잖아. 무엇보다 초행길이 아니니까 길 헤매느라 시간 낭비할 일 없어. 완벽해!"

이어서 '식욕'과 '물욕'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침부터 굶주린 배를 채우지 않으면 언덕이고 나발이고 쓰러지고 말 거야. 그리고 아까 따뜻한 떼로는 성이 안 찼어. 아이스 라떼 한 잔 하자!"

"맞다, 중요한 걸 먹을 뻔했잖아! 산티아고 마그넷도 사야지!!!"


3. 야심 찬 목표 수립

계획 세우기는 젬병이지만 임기응변에는 익숙한 나의 두뇌가 재빠르게 프로그래밍을 완료했다.

산타루시아 언덕 가는 길에 있는 맛집 찾기 → 빠르게 점심 먹기 → 아까 본 도서관 카페 들러서 아이스 라떼 사기 → 산타루치아 언덕 전망대 올라갔다 내려오기 → D가 알려 준 그 맞은편 기념품 거리 가서 산티아고 마그넷 사기 → 우버 잡기 (미션수행 제한시간: 1시간)

지나치게 야심 찬 목표에 기가 팍 죽어버린 '이성'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하... 저기... 지금 맛집 찾을 시간이 어딨어......"

목표 달성 확률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복수의 AND 조건을 걸어 D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혹시 산타루치아 언덕 가는 길에 & 빠르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 칠레 음식을 파는 &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맛집 좀 추천해 줄래?'

D는 빛의 속도로 A/S를 제공했다. 처음 나를 홀라당 넘어가게 만든 친절함으로 무려 식당을 세 군데나 추천해 줬다. 나는 그중 가장 간단한 음식을 파는 도보 10분 거리 식당으로 경보하듯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4. 주의력


목적지로 가는 길에 악마가 등장했다.

'잠깐 이것만 좀 보고 갈까? 여기 평생 다시 올 일 없을 텐데~'

가뜩이나 주의가 산만한 여행자는 악마의 유혹에 결국 3번이나 무릎을 꿇고 말았다.

첫 번째 유혹은 서점에서 찾아왔다. 여행 가면 현지서점은 한 번 구경해 주는 것이 예의인지라 어쩔 수 었다. 근데 하필 한강 작가님 책이 눈에 딱 들어오는 바람에 구경 시간이 더 길어지고 말았다.


두 번째 유혹은 어느 쇼핑거리에서 찾아왔다. 반짝이는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산책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상황이었다. 과연 이 날씨에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이름 모를 교회 앞에서 찾아온 세 번째 유혹. 불타지 않은 말짱한 교회 내부가 궁금해서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경유지 추가로 방향 감각을 상실한 나는 안전한 교회에 들어간 덕분에 당당히 핸드폰을 꺼내 놓고 지도를 찾아볼 수 있었다.




산타루시아 언덕도 식후경


P.M.2:00


이탈리아 국기를 닮은 칠레 샌드위치


10분 거리 식당에 무려 30분 만에 도착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시간은 30분 남짓, 이성적인 여행자라면 아마도 산타루시아 언덕을 포기하고 여유롭게 식사를 한 후 우버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 무엇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광기에 사로잡혔달까. 여기저기 정신이 팔려 시간을 다 까먹은 만큼 초스피드로 끼니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D가 알려준 식당 'Domino'는 칠레식 샌드위치를 파는 체인점인데, 현지인들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아 맛집이 분명했다. 이곳은 수도이지만 영어가 1도 안 통한다. 번역기 켜고 여기서 가장 잘 팔리는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Italia'라는 이름의 샌드위치가 나왔다. 아보카도, 마요네즈, 토마토의 배열이 이탈리아 국기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다른 테이블에서도 이걸 먹는 걸 보아 제대로 추천은 받은 것 같은데, 내 입맛에는 그냥 밍밍한 채식 샌드위치였다. 생존을 위해 허겁지겁 샌드위치를 목구멍에 쑤셔 넣은 후 산타루시아 언덕을 향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만약 오늘 비행기를 놓친다면, 그건 산티아고에서 1박을 하라는 우주의 뜻일 거야...'


전망대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산타루시아 언덕 입구에 들어서면 만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노오란 성에 들어온 느낌이 든다. 쪽에서는 분수가, 뒤쪽에서는 우뚝 솟은 야자수 나무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해주는데 왠지 모르게 스페인에 여행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구글 지도는 최단 거리를 알려준답시고 오전에 사진을 찍었던 샛노란 정문 입구가 아닌, 인적이 드문 뒷길로 나를 안내했다. '여기 맞아?' 잔뜩 의심을 품은 채 수상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드디어 눈에 익은 야자수 나무들과 장난감처럼 생긴 아기자기한 분수가 등장했다. 나는 여기가 전망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딘가를 향해 더 올라가고 있길래 그 뒤를 따라가 봤다.

초록초록한 나무들이 우거진 길이 길게 뻗어 있었다. 이 아름다운 길을 감상할 여유가 있으면 좋으련만, 비행기 시간 때문에 마음이 급해서 전망대를 찾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산타루시아 언덕도 관광객 대상 사건사고가 잦아 외교부에서 방문 자제를 권고한 곳 중 하나였지만, 나는 그런 위험을 감지할 겨를도 없었다. 이곳의 악당들도 거친 숨을 내쉬며 세상 바쁘게 뛰어다니는 외국인을 범죄의 표적으로 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보이는 길이 끝인 줄 알았다. 처음 등장한 전망대 표지판이 가리키는 오르막길로 접어드니 쭉 계단이 숨어있었다. 더 이상 달릴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아니... 진짜 비행기 놓치겠는데...?'

하지만 여기까지 힘들게 올라온 이상 아까워서 차마 그냥 내려갈 수는 없었다.

'당연히 전망대에 발도장이라도 찍어야지!'



전망대에서 연예인 체험


P.M.2:30


서울스러운 산티아고 시내뷰


당초 시나리오 상 공항으로 가는 우버를 탔어야 할 시간이 되어서야 전망대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놓칠 위기에 처했지만 그렇다고 전망대까지 올라와서 산티아고 시내뷰를 안 보고 갈 수도 없는 법이다. 도심과 아주 가까이에 병풍처럼 서 있는 안데스 산맥(비록 내가 갔던 날은 미세먼지 때문인지 뭔지 그 형체가 아주 흐리게 보였지만)이 정말 거대했다. 솔직히 그 외에는 대단히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다. 흐린 눈을 하고 보면 동네 뒷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시내와 꽤 흡사했다.

산타루시아 언덕은 현재는 산티아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원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산티아고를 세운 스페인 정복자 발디비아가 당시 원주민들의 거센 저항에 대응해 요새를 세운 곳이라고 한다. 시간 관계상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요새의 흔적으로 남겨 둔 전시용 대포도 볼 수 있다. 산티아고를 떠나기 전 이곳에서 마지막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사진을 부탁할만한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 아무리 늦어도 여기까지 올라와서 사진 한 장 안 찍고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황러운 사진 요청 쇄도


사진 부탁하기는 혼자 온 여행객, 특히 우리와 사진 철학이 비슷한 아시아계 여행객을 겨냥하는 것이 베스트지만, 여긴 정말 아무도 없었다. 차선책으로 포토존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던 현지인으로 추정되는 커플이 자리를 내어 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진을 부탁하였다. 그들은 흔쾌히 사진을 몇 장 찍어주더니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말을 걸어왔다.

내가 생각한 구도가 아니야...

눈치로 보아하니 나한테 같이 사진을 찍자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여자와 둘이서 몇 장, 남자와 둘이서 몇 장, 다 같이 셋이서 몇 장, 마지막으로 셀카까지 몇 장 찍고, 바디랭귀지로 몇 마디 대화를 나 후에야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어 서둘러 자리를 뜨려던 찰나, 이번에는 여자친구의 사진을 찍어주던 어떤 남자가 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커플의 사진을 찍어주려고 남자에게 핸드폰을 달라고 하자 그가 다시 부탁을 했다.

"아니, 내 여자친구랑 같이 사진을 찍어줄 수 있니?"

귀를 의심했다. 자기들 사진을 찍어달라는 게 아니라, 나한테 자기 여자친구 옆에 서서 함께 피사체가 되어달라는 말이었다.

'아니, 나랑 사진을 뭐하러 찍지?'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그의 여자친구와 온갖 친한 척을 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동양인이 드물어서 그런지, 남미에서는 동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연예인 체험을 할 기회가 많다. (산티아고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쇄도하는 사진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조금 즐기기도 했다.) 완전히 늦어버린 나는 쫓기듯이 언덕을 뛰어내려 갔다. 여유를 즐기며 산책하는 사람들을 죄다 앞지르고 혼자 땀이 줄줄 나도록 전력질주를 하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까지 피곤하게 여행을 하고 있는가...'




최종 목적지로 36시간째 이동 중


P.M.3:10


택시를 놓치

산타루시아 언덕에는 입구가 여러 개가 있는 모양이다. 내가 아는 입구와 정반대 어딘가로 도착한 우버 기사는 몇 바퀴를 뺑뺑 돌다가 결국 나를 버리고 그냥 가버렸다. 안 그래도 늦었는데 이와중에 택시를 놓치다니... 재앙이 아닐 수 없었다.

애타게 새로운 우버를 불러댔다. 한참을 기다려 2km쯤 떨어진 먼 곳의 차량이 잡혔다. 계속 신호에 걸렸는지 뭔지 그 차는 도통 시원하게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이쯤 되니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체념할 준비. 비행기를 놓친다면 공항에서 짐만 찾고 다시 산티아고에 돌아와 구경을 더 하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비행기값은 매몰비용이니까 잃을 것도 없는 셈이었다. 그때 드디어 굼뜬 우버가 도착했다. 비행기 출발 2시간 전인 오후 3시는 이미 지나버린 상황이었다.


으로 질주

맡긴 짐도 찾고, 어딨는지도 모르는 국내선 터미널까지 찾아가야 하 비행기를 놓칠 가능성이 다분해 보였다. 버 기사에게 번역기를 들이댔다.

'비행기를 놓치게 생겼어요. 최대한 빨리 달려주세요!!!'

나는 할 일을 다 했다. 이제 공은 우버 기사에게 넘어갔다. 이 따위로 여행을 하다 비행기를 놓칠 뻔한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경험상 결국 다 타게 되어있다. 대부분은. 만약 비행기를 놓친다 해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 나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러나 방 새로운 불안아왔다.

'무사히 도착은 할 수 있겠지...?'

우버 기사는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무섭게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자유자재로 차선을 바꿔가며 질주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나의 사정 때문이 아니라 원래부터 목숨을 담보로 질주를 즐기는 스타일임이 틀림없었다.


오후 3시 30분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도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슬아슬하게 탑승 수속을 마쳤다. 라탐항공 데스크에 대기 줄이 하나도 없었던 덕분이었다. 그리고 공항에서 마지막 미션, 산티아고 마그넷 쇼핑을 했다. 근데 아무리 공항이라지만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비싸고 못생겼는지, 내가 생각하는 산티아고의 모습이 담긴 마그넷은 단 하나도 없었다. 결국 여행 역사상 최초로 마그넷을 사지 못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마그넷조차도 특색이 없을 만큼 산티아고가 여행지로서 가치를 발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P.M. 5:00

36시간째 이어지는 험난한 여정

드디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성공적인 레이오버였다. 공항 대기시간을 1분도 낭비하지 않고 알차게 털어 쓰고 비행기지 탔다. 2시간 동안 하늘 위에서 수면 보충을 하 칼라마에 도착했다. 공항에 있는 공유택시 트랜스빕 창구에서 아타카마로 가는 마지막 남은 한 자리 티켓을 현장 구매했다. 운이 좋았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사막 너머로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인천에서 출발해서 36시간째 최종 목적지를 향해 이동 중이라니...'

온갖 외국어가 들려오는 차 안에서 홀로 일몰을 감상하며 시 휴식을 취하려다가 할 일이 떠올랐다. 당장 오늘 밤 아타카마 일정 짜기. 여행 커뮤니티에 동행 모집 글을 올렸다.

'늘 밤 아타카마 십자가 언덕에 별 보러 이 가실 분!'


P.M. 9:40

숙소 문이 왜 잠겨있지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아타카마에 도착했다. 트랜스빕은 여행자 한 명 한 명을 숙소 앞에 내려주었다. 근데 전날 예약한 숙소의 문이 굳게 잠겨 있 것이 아닌가...

심지어 오늘은 남은 방이 없다는 종이쪼가리까지 붙어있었다.

'예약이 잘못 됐나?'

전화를 몇 번 해도 받질 않았다. 이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데 과연 나를 받아줄 숙소가 남아있을까... 문을 열어달라 메세지를 남겨놓고 길바닥에서 부킹닷컴을 켜고 당일 숙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니... 이 나왔다...

'살았다...'

기다림을 관두려던 찰나 숙소 문이 열렸다. 도의 한숨이 터졌다. 내 핸드폰 로밍 문제 전화가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우습게도 굳게 닫힌 문 옆에는 대놓고 초인종이 있었다. 그곳은 한 가족이 운영하는 호스텔이었는데 늦게 도착한 손님을 아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마치 40시간 만에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편안했다.


P.M. 11:00

별이 쏟아지는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의 밤

긴장이 풀리니 허기가 느껴졌다. 나는 쫄쫄 굶주린 배를 채우러 아타카마 시내로 걸어갔다. 척박한 사막 위에 투박하게 지어 올린 건물들, 그 사이 군데군데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 독특한 밤 거리의 분위기가 맘에 쏙 들었다. 하늘에는 별이 잔뜩 박혀있었다.

뭐 다 좋은데, 개판이 따로 없었다. 밤 10시가 넘어 한산해진 거리에는 사람보다 개가 더 많았다. 거대한 개들이 목줄도 없니 사람인 척하며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충격적인 현장.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면 남미여행이 조금 힘들 수도 있겠다.

다행히 자정까지 하는 몇몇 식당들이 있었다. 칠레에 왔으니 아무 데나 들어가서 엠빠나다를 시켰다. 맛있는 저녁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는데, 이 맛없기 힘든 음식이 맛이 없었다.

결국 그날 별 보러 갈 동행은 구해지지 않았다. 나는 숙소에 돌아가 쏟아지는 별을 한참 구경했다. 급하게 짐을 싸다 보니 집에 삼각대를 놓고 오는 대형 실수를 저질렀다. 쓰린 마음으로 바닥에 핸드폰을 눕혀 놓고 별 사진을 찍어봤다.

마침내 약 40시간 동안 혹사 당한 몸을 침대에 뉘었다. 호스텔에서는 어찌 된 사정인지 오늘은 2인 1실 방을 그냥 혼자 쓰면 된다고 했다. 덕분에 남미에서의 첫날밤은 안락하고 따뜻하고 포근했다. 지구 반대편에 닿기까지 길고 험난했던 여정이 쭉 스쳐갔다. 인천에서 미국 애틀란타, 칠레 산티아고와 칼라마를 거쳐 마침내 첫 여행지인 아타카마에 도착하기까지. 하루 만에 후루룩 준비해서 참 멀리까지도 왔다. 드디어 남미에 왔다. 그리고 누웠다. 드디어 누워서 잠을 잔다!

나는 이번에도 충동이 이끄는 아슬아슬한 여행을 하고 있다. 이 지긋지긋하고 피곤한 여행 습관은 아마도 영영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스릴을 즐기고 있으니 그냥 종특이려니 평생 이렇게 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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