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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행성 착륙! 별이 쏟아지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

[3일차/칠레] 달의 계곡 & 별빛 투어와 함께 하는 달나라 별나라 탐험

by 도나윤

평화로운 아침의 유혹


그냥 이 호스텔에 살고 싶다...

집을 떠나 40여시간만에 처음으로 침대에 몸을 눕히고 세상 달콤한 늦잠을 잤다. 몽롱한 상태로 눈을 떴는데 여전히 꿈 속인 듯한 착각이 들었다. 어두운 방으로 새어든 아타카마의 황홀한 아침이 나를 맞았다. 오묘한 빛깔의 커튼 사이로 스며든 햇빛이 낡은 나무 장롱 위에 반짝이는 수를 놓고 있었다.

포근한 이불 속에 가만히 누워 한참동안 그 비한 그림을 감상다. 난 밤 누추한 행색의 이방인을 가족처럼 맞아준 호스텔 주인 커플의 온기 때문이었을까, 방 안에는 따뜻한 공기가 가득했다. 바깥에서 무언가 달그락거리는 소리, 누군가의 걸음 소리, 개 짖는 소리, 이런 저런 정겨운 소음이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시골 할머니 집에서 늦잠을 자고 일어난 어느 아침 같았다. 그 평화로움을 서둘러 깨고 싶지 않아 한숨 더 잘까 고민을 하는데, 조식 마감시간을 알리는 알람소리가 고요를 깼다. 나는 침대에서 겨우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식 먹다 악상이 떠오기까지

다른 여행자들은 벌써 식사를 마치고 부지런히 갈 길을 떠났는지, 부엌에는 내 아침상만 덩그러니 차려져 있었다. 바게트 빵에 치즈, 햄, 과일 그리고 주인 커플이 방금 만들어 준 뜨끈한 스크램블 에그까지, 소박하지만 정성스러운 맛있는 조식이었다.

조식을 먹으면서 오늘의 동행을 구해보려 했으나 부엌에 남아있는 자는 끊임없이 나의 조식을 탐하는 강아지 까망이(더 이상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급조한 이름) 뿐이었다. 까망이는 불쑥불쑥 두 발로 일어나 나를 놀래키고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기를 반복했다. 이따금씩 호스텔 주인가족의 딸(한없이 따뜻했던 그녀의 이름 역시 잊고 말았다...)이 짖어대는 까망이를 혼내러 부엌을 들락날락거렸지만 그녀의 훈계 따위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덕분에 나홀로 남은 부엌에서 외롭지 않은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차를 한 잔 들고 테라스로 나와 부엌에서 쓰던 모닝페이지를 마저 썼다. 소박하지만 기분 좋은 아침 식사,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호스텔 테라스, 적당히 건조한 공기와 따뜻한 햇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더 듣기 좋은 주인 가족의 스페인어 대화, 이 모든 것을 맛있게 버무려주는 재즈까지, 맘에 드는 것 투성이인 그 순간을 하나하나 글로 새겼다.

완벽한 아침이었다. 오늘 하루는 그냥 이 평화로운 호스텔에서 하루 종일 쉴까 싶은 유혹에 빠졌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더니 내 안에서 무언가가 또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타카마에 대한 노래를 만들어야겠어!' 언제든지 지금 이곳으로 나를 확 끌어당길 수 있는 그런 노래를 만들고 싶어졌다. 노래를 만들려면 이야깃거리가 더 필요했다. 나는 영감을 찾아 서둘러 아타카마 거리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 사막 아타카마의 오아시 같은 마을


남미의 동남아?

산페드로 데 아타카마, 세상에서 가장 건조하다는 아타카마 사막 중앙에 위치하는 오아시스 같은 마을이다. 외계 행성에 온 듯한 사막의 독특한 자연 경관과 하늘 가득 쏟아지는 별을 보기 위해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현지에서 만난 동행에게 얼핏 듣기로 이곳은 남미 사람들에게는 동남아 휴양지같은 격이라고 한다. 듣고 보니 길거리가 정말 라오스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찌는 듯한 더위 마저도 비슷했지만 입술이 틀 정도로 습기 하나 없이 건조한 대기만은 아타카마만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투어사 천지삐까리

아무 준비도 없이 도착한 아타카마, 아직 그곳에서 며칠을 머물지도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일단 오늘의 투어를 예약하기 위해 시내로 나갔다. 투어까지 나가보면 얼마나 더 머물고 싶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안데스 투어'에 가서 한국인들이 많이 신청한다는 '달의 계곡 투어'와 '별 관측 투어'를 당일 예약했다. 이곳 아타카마에서는 투어사들이 천지삐까리라서, 투어 시작 직전만 아니면 당일 예약이 웬만하면 가능하다. 그리고 투어까지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국인들이 많이 간다는 엠빠나다 맛집 카페에 갔다. 전날 밤 먹은 맛 없는 엠빠나다와 비교하니 마치 엄청난 맛집처럼 느껴졌다.




사막을 달리는 달나라 투어


P.M. 2:30

달의 계곡 투어

투어 집합시간이 되었다. 투어사 앞에 오늘 함께 투어를 떠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예상대로 대여섯 명의 한국인들이 섞여 있었다. 혼자 여행을 오면 언제나 사진찍는 것이 문제인데 이렇게 투어를 하면 걱정이 없다. 특히나 혼자 온 한국 여행자들을 한 명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서로 열과 성을 다해 전담 사진기사가 되어준다. 우리는 투어버스를 타고 사막으로 떠났다. 우리의 가이드가 영어-스페인어 순서로 오늘의 투어를 브리핑해주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가이드와의 인연이 아타카마를 떠나는 마지막 밤까지 이어질 줄은!

우리는 첫 번째 투어장소에 내려 뙤약볕 아래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길을 힘겹게 걸었다.

아타카마의 사막은 모로코에서 본 사하라 사막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영화 매드맥스가 떠오르는 광경들이 펄쳐졌다. 분명 사막인데 사막은 아닌 느낌이었다. 지평선까지 모래가 한없이 펼쳐져 있고 낙타를 타고 모래 언덕을 넘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떠올리는 그런 사막이 아니었다. 가이드의 말을 들어보니, 이곳은 옛날에 본래 바다였는데 땅이 융기하여 솟아올랐는데 건조한 기후 때문에 물이 모두 증발하여 사막이 되었단다. 바다였다고 생각하고 보니 바닷속에서 본 해저 지형과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이곳 모래에서는 자세히 보면 반짝이는 소금 결정(?)도 찾아볼 수 있다.

기괴한 암석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지형과 바람이 빚어낸 거대한 모래 조각들이 마치 외계 행성에 불시착 듯한 느낌을 주었다. 가이드에게 왜 이 투어는 '달의 계곡'이냐고 물었더니 실제로 달의 표면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P.M. 6:45

모래 반 간식 반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 하나 없는 사막을 돌아다니느라 우리는 모두 지쳐버렸다. 마지막 일정은 일몰 감상, 해가 질 때까지 우리는 사막 한 가운데 차를 세우고 간식타임을 가졌다. 모래 바람 때문에 치즈에도, 과일에도 모래 가루가 마치 후추처럼 뿌려져 있었다. 배가 고파서 안 먹을 수는 없었다. 내가 모래를 먹는 건지 간식을 먹는 건지... 입안에서 모래 알갱이가 잔뜩 씹혔다.

'너희들(한국인무리)은 친구들끼리 온 거니?'

'아니, 대부분 남미에 와서 처음 만난 사이야.'

우리는 처음으로 다 같이 대화를 나눴다. 어느 나라에서 왔니, 여행은 며칠째니, 다음엔 어디로 가니 등등. 약 2주 일정으로 초단기 남미여행을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칠레 in으로 시계방향 여행을 하는 사람도 나뿐이었다. 특히 한국인들은 대부분 아타카마를 끝으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들 중에서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부터 몇 번 마주쳤거나 쭉 동행을 함께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다음 나라로 같이 이동할 사람이 없었다! 그치만 오히려 좋아... 새로운 사람들을 계속 만날 수 있으니까. 우리의 친절한 한국인들은 나에게 온갖 여행 팁을 전수해주고 떠났다. 우유니에서는 이렇게 해라, 쿠스코에서는 어딜 가라, 등등. 혹시 나처럼 하루만에 대충 여행준비해서 남미로 떠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일부러 남들과 반대로 시계방향 루트를 타기를 추천한다. 미리 알아보지 않아도, 현지에서 여행자들을 만나 이미 그들이 다녀온 도시의 온갖 팁들을 전수받을 수 있다.


P.M. 8:00

일몰 감상

달의 계곡 투어의 하이라이트는 일몰 감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몰 포인트에는 오늘 아타카마에서 출발한 모든 달의 계곡 투어 차량들이 이미 한데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 이곳에서는 외계 행성이 붉게 물드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결국 이 전망 포인트에 이르기 위해 한낮 땡볕 아래 사막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백명쯤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일몰을 기다렸다. 사막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낯선 곳, 지구 상에 이런 외계 행성 같은 곳이 존재했다니.

태양이 지평선을 향해 점점 다가갈수록 외계행성은 점점 주황빛을 머금더니, 마침내 온통 붉게 물들었다. 저 멀리 전망대에 모인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보였다. 광활한 풍경 앞에 서서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렇게 아름다운 지구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참 복 받은 존재들이다. 이렇게 척박하고 야생적인 땅 위에 마을을 짓고 지금과 같은 문명을 발전시켰다니, 인류는 참 대단한 존재인 것 같다.

넘어가는 해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서 어느 한 여행객 무리에게 부탁을 했다. 칠레로 여행 온 칠레 여행객들이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가족여행인 것 같았다. 칠레 자매(?)님들 중 한 명은 나에게 아주 기초적인 한국어로 말을 걸었다.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누다가 칠레 자매(?)의 사진 요청으로 우리는 함께 단체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투어시간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태양이 귀가한 후 핑크빛으로 물드는 하늘과 아마도 보랏빛으로 저물어갈 외계행성도 볼 수 있었을텐데. 저녁 투어 일정 때문에 우리는 서둘러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


P.M.9:00

별 관측 투어

달의 계곡 투어를 마치고 시내에 돌아오니 대략 8시 30분,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달의 계곡 투어에서 만난 한국인 동행들 대부분은 9시에 출발하는 별 관측 투어까지 연달아 참여했다. 기다리는 동안 아타카마 시내의 노을을 감상했다.타카마를 끝으로 이제 한국로 돌아가는 한 동행 숙소에서 남은 고산병 약을 가져와 나에게 버려주셨다. 다음 날에는 다른 동행분도 남은 고산병 약과 타이레놀을 잔뜩 넘겨주셨다. 현지 약국에서 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뜻밖에 선물(?)을 받다니! 참 따뜻한 세상이다... 남들과 반대방향으로 여행하면 이런 점도 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도시의 빛을 피해 어딘가로 한참 올라갔다. 버스는 깜깜한 어둠 속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우리는 거대한 망원경으로 돌아가면서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을 관측했다. 가이드가 하늘에 레이저를 쏴서 별자리도 설명해주고 별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도 즉석에서 받아준다.

대략 2시간 동안 별이 쏟아지는 아타카마의 밤을 감상할 수 있다. 투어가 끝나면 간단한 간식이 제공되고 돌아가면서 가이드가 개인 사진도 찍어준다. 모래를 양념 삼아 사막에서 먹었던 간식과 동일하였다. 치즈, 과자, 과일, 대신 이번에는 와인이 제공되었다.

같이 갔던 동행에게 판초를 빌려 입고 사진을 찍었다. 달 없는 시즌을 맞춰간 보람이 있었다!

갤럭시로 촬영한 아타카마 밤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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