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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친자(우유니에 미친 자)의 초인적인 거울 사막 정복기

[7일차/볼리비아] 해 떴다 벼락 쳤다 불 타 버린 천의 얼굴 우유니

by 도나윤

우유니 사막에 해가 뜨면


A.M.5:30

소금 사막의 변신은 무죄

우유니 사막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일출'이다. 밤하늘의 쏟아질 듯한 별들도 황홀했지만,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면서 시시각각 변신하는 우유니 사막의 모습을 감상하는 건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경이로움을 안겨주었다. 벌겋게 물든 지평선을 배경으로 한참 사진을 찍다가 무심코 주위를 돌아보니 사방이 온통 오렌지빛으로 변해있었다. 서둘러 오렌지빛 판초를 빌려 입고 소금물 위를 신나게 날뛰어 다녔다.

흥분 상태

우유니 사막투어의 가이드들은 전문 사진 작가 못지않은 촬영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에게 사진을 부탁하면 우리가 생각지 못한 구도와 분위기로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준다.

날이 밝아오니 비로소 우유니 사막 바닥을 가득 덮고 있는 하얀 소금 결정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금물을 살짝 찍어 먹어 봤다. 소금물이 맞았다. 정말 짜다.

일출 무렵 우유니 사막의 변신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한창 소금 사막의 바닥을 구경하며 걸어 다니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어느새 지평선의 붉은빛이 싹 사라지고 세상이 온통 새하얗게 변해있었다. 다른 투어 차량들은 하나둘씩 사막을 빠져나가고 있었는데 앞으로 펼쳐질 말도 안 되는 장관을 구경할 수 있도록 사막에 잠시 더 머물러 준 우리 가이드님에게 무한 감사를 보낸다.

장관의 시작은 이러했다. 낮게 깔린 구름층의 테두리가 핑크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 아래로 살짝 보이는 하늘은 슬슬 본연의 푸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름층의 경계가 뚜렷해졌다. 우유니 사막 바닥에 거울처럼 하늘이 비쳐 아름다운 데칼코마니가 형성되었다. 사막의 거울이 만든 거대한 하늘색 띠 위로 개미 한 마리가 지나가듯 느릿느릿 차가 기어가고 있었다. 그림이 따로 없었다.

데칼코마니는 더욱 진하게 물들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이 구름이고 무엇이 소금사막인지,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대칭을 이루었다. 하늘색 띠 위에 무늬처럼 새겨진 머리 하얀 산과 그 앞에서 벌레처럼 움직이는 자동차만이 유일하게 하늘과 땅의 경계를 구분해주고 있었다.

머리털 나고 이렇게 포근하고 몽글몽글한 일출을 본 적이 있던가? 우유니 사막의 일출은 솜사탕을 닮았다. 그 달콤함에 취해 해가 떠올라 사막의 데칼코마니가 완전히 모습을 감출 때까지 찰랑거리는 우유니의 소금물 위를 걷고 또 걸었다.

지평선 위로 해가 완전히 떠오르면 선라이즈 투어도 종료된다. 새벽부터 우리와 함께 한 투어 차량을 소품 삼아 마지막 기념촬영을 했다. 우유니 사막을 이토록 찬양하는 것은 열과 성을 다하신 가이드님 덕분이기도 하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황홀한 장면들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붙잡아 놓은 가이드님의 노력 덕분에 이렇게 추억팔이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의 가이드는 사막을 떠나는 순간에도 열정을 불태웠다. 우리를 사막 위에 일렬로 쭉 세워놓고는, 차를 타고 우리 주위를 동그랗게 빙빙 돌면서 기가 막히는 동영상을 남겨주었다. 언젠가 남미여행 브이로그를 만들게 된다면 화려한 엔딩으로 집어넣으리라. 우리 팀은 해가 한참 떠르고 난 뒤에야 가장 마지막으로 차를 타고 우유니 사막을 떠났다.


A.M.7:30

분주한 아침, 3시간 만에 다시 사막으로

가이드는 우리를 투어사 앞에 내려주었다. 장화를 벗으면서 보니 옷이 위아래 할 것 없이 온통 소금물에 어 얼룩덜룩 망가져 있었다. 내 몸뚱아리 역시 피곤에 쩔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야간버스를 타고 우유니로 넘어와, 겨우 2~3시간 눈을 붙이고 사막에서 꼴딱 밤을 새웠으니 피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침대에 드러눕고 싶었지만, 일기예보와 달리 날씨가 너무 좋았다. 당일 날씨를 보고 데이투어 결제를 하기로 했었는데, 이 정도 날씨 운이라면 아무리 잠이 부족하다고 해도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데이투어를 하면 파란 하늘이 비치는 우유니 사막 한가운데에서 점심도 먹고 하루를 보낸 후 일몰 감상까지 해치울 수 있다.

고작 2주 남미에 머무는 직장인 여행자에게 내일이란 없는 법. 물론 내일 하루 더 시간이 있지만 혹시 잔뜩 흐리거나 비가 쏟아져서 우유니 사막의 거울을 영영 보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납할 수 없었다. 잠은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실컷 면 될 일이었다. 현명한 여행자라면 일단 3시간 뒤에 출발하는 데이투어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아침 일찍 열 거라고 했던 투어사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경험상 남미에서는 문 여는 시간은 고무줄, 문 닫는 시간은 칼이다. 구글 지도에 나와있는 오픈시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잠이 쏟아져서 더 기다릴 수도 없었다. 톡을 남겼다. 문이 닫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투어 출발할 때 결제를 할 테니 내 자리를 하나 꼭 남겨달라고. 그리고 서둘러 잠을 보충하러 숙소로 향했다.

다음 투어까지 주어진 시간 단 3시간, 이동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시간 동안 잠도 자고 아침도 먹고 다음 날 라파즈로 떠나는 야간버스 티켓도 사야 했다. 일단 그중 무려 1시간 반을 수면 보충에 할애했다. 사실 잔 것도 아니었다. 잠들었다가는 알람을 못 들을 것이 뻔했다. 그냥 눈만 감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시간이 부족해 조식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사막에서 쓰러질까 봐 부랴부랴 흡입했다. 운 좋게 조식 주는 숙소에 머물렀길 천만다행이지, 하마터면 식당을 찾아다니다 쫄쫄 굶을 뻔했다. 소박하지만 계란부터 과일까지 있을 건 다 있는 조식, 음미할 겨를도 없이 구멍에 마구 쑤셔 넣고 버스터미널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투어 집합시간까지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내가 여행을 하는 건지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하는 건지, 평화로운 우유니 시내에서 긴박하게 뛰어다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버스터미널에 버스회사는 또 어찌나 많은지, 도통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터미널을 헤매다 발견한 에 익은 간판 하나, 우유니로 넘어올 때 타고 온 야간버스 Cruz del Norte였다. 곧장 직행하여 라파즈(La Paz), 내일(mañana) 단 두 글자로 빠르게 티켓을 구매하고 투어사까지 다시 전력 질주 했다. 뛰어가는 길에 이미 집합시간이 지나버렸다. 아직 결제도 못한 나를 두고 이미 떠났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내가 조식을 왜 먹었을까...'

숨이 너무 차서 그냥 이대로 달리기를 멈추고 숙소로 돌아서 잠이나 자고 싶었다. '그래도 남미까지 어떻게 왔는데...'

애써 유혹을 뿌리쳤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직 출발을 안 했을지도 몰라!!'

숨을 헉헉 대며 마침내 도착한 투어사 앞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다행히 아직 사람들이 투어 차량에 올라타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터졌다.

언제나처럼 아슬아슬한 나의 여행인생... 재빠르게 결제를 하고 맨 꼴찌로 마지막 남은 조수석에 탑승했다. 3시간 만에 다시 사막으로 떠난다. 고개를 뒤로 돌려 뒷 좌석에 앉은 오늘의 일행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어제 투어사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던 J였다. 같은 투어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나와 나보다 한참 어린 J는 우유니에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두피 화상 입은 우유니 사막의 뜨거운 오후


우유니 관광지 투어: 기차무덤부터 소금호텔까지

놀랍게도 가이드님은 영어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스페인어가 유창한 J가 있었고, 그녀가 우리 일행과 가이드 사이에서 통역을 담당해 준 덕분에 한층 더 재밌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우유니 데이투어 코스는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는 우유니 사막의 절경을 바로 보여주지 않았다. 별로 궁금해 본 적 없는 우유니의 여러 관광지들로 데리고 다니며 빌드업을 시킨 후 우유니 사막의 미친 풍경은 하이라이트로 짠하고 보여주는 레퍼토리다.


A.M.11:00

기차무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우유니의 기차 무덤이다. 과거 볼리비아 최대 광산이었던 포토시 광산에서 채굴된 광물들을 운반하는 기차들이 1940년경 폐광으로 인해 녹슨 채로 버려진 기차 폐차장 같은 곳이다.

현재는 관광객들의 포토스팟이 되었는데, 너도나도 기차에 올라타 사진을 찍고 있어서 도무지 누가 피사체인지 알 수 없는 사진만 남는다.

기차에 올라타는 것은 생각보다 험난하다. 우리 일행도 기차 여기저기에 올라타 단체사진을 찍으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우리 일행은 중년 부부, 신혼부부, 그리고 혼자 온 나와 J까지 총 여섯 명이었다는데, 우유니에서의 기억이 이토록 아름답게 남은 건 환상적인 소금 사막의 풍경에 우리 일행의 따뜻함이 더해진 덕분 것이다.

함께여서 너무 즐거웠던 우유니 사막 동행들

P.M.12:00

콜차니 마을

다음으로 가이드는 기념품 가게들이 몰려 있는 콜차니 마을에 우리를 내려줬다. 이곳에서 우유니 마그넷과 판초를 샀다. 판초는 캐리어에 자리가 없어서 애초에 살 생각이 없었는데, 전날 우유니 스타라이트 투어에서 만난 동행들이 1인 1판초를 소장하고 있는 걸 보니 왠지 하나 사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코스 이동하는 길에 마주한 대낮의 소금 사막의 모습! 물이 가득 찬 우유니를 보려고 일부러 우기에 맞춰 겨울에 남미여행을 왔는데,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을 뿐 대부분은 메말라 있었다. 그래도 새하얀 사막이라니 절경은 절경이었다.

P.M.13:00

만국기 광장

가이드는 소금사막 한가운데에 만국기가 휘날리는 어느 지점에 우리를 내려줬다. 볼리비아 국기와 함께 인증샷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었고,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하여 한 명씩 사진을 찍었다. 바람이 심해서 펄럭펄럭 난리를 치는 국기를 붙들고 사진을 찍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옆에는 만국기 펄럭존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국기도 있었다. 금방 산 따끈따끈한 판초 착용샷을 찍어봤다. 생각보다 예쁘지 않아서 실망스러웠다. 이후에도 투어사에서 더 예쁘고 다양한 판초를 빌려주기 때문에 이 판초는 입을 일이 거의 없었으며, 한국에서는 역시나 예쁜 쓰레기로 방치되고 있다. (굳이 사지 마시길...)

P.M.14:00

우유니 사막 한가운데에서 즐기는 오찬 파티

관광지가 한 군데 더 남아있었지만 우리 일행이 배고픔을 호소하자 가이드는 융통성을 발휘하여 우리를 소금사막 한가운데로 데려갔다. 물 한 방울 없어도 거북이 등껍질처럼 n각형으로 쩍쩍 갈라진 소금 사막은 신기하고 또 신비로웠다.

우리의 가이드님은 차 트렁크에서 짐을 한가득 꺼내더니 우리를 위한 점심식사를 정성스럽게 준비하시기 시작했다. 우리는 엄마가 밥을 차리든 말든 거들 생각은 1도 없는 철부지들 마냥 비쩍 메마른 소금 사막 위에서 신나게 뛰놀았다.

점프샷 장인 나야나

가이드 엄마가 밥 먹을 시간이라고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치킨, 샐러드, 밥, 소박한 상차림이었지만 소금사막 위에서 테이블을 펴놓고 먹는 점심이라니, 낭만이 다 했다. 물론 맛도 있었다. 소금사막을 통째로 빌린 듯 그곳엔 오직 우리뿐이었다. 이렇게 프라이빗한 점심이 또 있을까! 점심을 먹으면서 우리 일행은 처음으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눴다. 어디서 왔는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그곳에는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 소리와 우리들의 즐거운 대화 소리만 존재했다. 세상에 우리만 남은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고요한 사막이었다.

P.M.15:30

플라야 블랑카 소금 호텔과 다카르 랠리 기념비

아직도 관광지가 하나 더 남았다. 우유니 최초의 소금호텔이라는 '플라야 블랑카'. 말 그대로 소금으로 지어진 호텔인데, 현재는 관광지로만 운영된다. 도대체 대망의 우유니 사막은 언제 보러 가는 걸까... 더 이상 관광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죽하면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화장실만 이용하고 나왔다(유료다...) 그 앞에 마련된 국기 광장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투어사에서 빌려 준 판초를 입고 사진을 찍어봤다. 내가 산 것 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2014년에 우유니 소금사막이 다카르 랠리 코스에 포함되면서 세워진 기념비가 있다. 당시에는 뭔지도 모르고 다들 사진을 찍길래 'Welcom to Bolivia'를 스페인어로 써놨겠거니 하면서 볼리비아 방문 기념샷을 남겼는데, 전혀 다른 기념비였다.


드디어 거울 위에 서다!

P.M.16:30

촉촉 우유니

드디어 대망의 하이라이트! 촉촉한 우유니 사막에 입성했다. 물이 잔뜩 고여 하늘의 구름이 그대로 비치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말로만 듣던 우유니구나!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이 어찌나 멋있던지.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는데 가이드가 우리를 불러 모았다.

그는 트렁크에서 형형색색의 의자를 꺼내더니 우리들에게 이런저런 포즈를 지시하였다. 아리엘 매직투어에는 분명 사진 촬영 매뉴얼이 있을 것이다. 우유니 사막을 검색하면 나오는 여행자 단체사진과 똑같은 포즈들이었다. 가이드는 열과 성을 다해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때는 태양이 유독 뜨거우니 반드시 모자를 써야 한다. 나는 촉촉 우유니에 입성하기 전부터 우리 일행 중 두피 화상자의 조언에 따라 미리 모자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두피 화상을 입었다. 화상을 입은 줄도 몰랐다가 여행 중에 두피가 벗겨져 당황스러운 비듬 폭탄을 맞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시달리다 결국 피부과 치료까지 받았다...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환상적인 뷰였다.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우유니 사막은 남미여행을 통틀어 가장 감동적인 여행지였다. 마추픽추와도 비교할 수 없는 넘사벽의 경지랄까. 일행 중에는 기대 이하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구상에서 또 이런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우유니 사막 하나만으로도 남미에 올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이곳을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여행지 1위로 꼽 싶다.


P.M.18:00

마른 우유니 사진 놀이

이번에는 물 한 방울 없는 곳으로 이동하여 소품을 활용한 사진 이가 시작되었다.주병 위에 올라가기, 공룡이랑 싸우기, 프링글스 통 들어가기 등등 컨셉이 창의적이다. 우리의 가이드는 소금 바닥에 납작 엎드려 혼신을 다해 사진을 찍어주었다.

한창 재밌게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하늘이 번쩍번쩍거리기 시작했다."설마 이거 번개야?"모두 어리둥절했다. 두피가 타 들어갈 정도로 햇빛이 쨍쨍 내리쬐고 있었는데 갑자기 벼락이라니. 번개가 맞았다. 이내 우르르 쾅쾅 굉음이 들려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시커먼 먹구름이 잔뜩 몰려와 있었다.

"오늘 일몰은 망했네요..."

그 와중에 갑자기 몰려온 먹구름이 장관이었다. 새파란 하늘과 시커먼 먹구름의 대비가 비현실적이었다. 빗방울은 점점 더 많이 떨어졌고 아쉽지만 사진 놀이는 황급히 마무리되었다. 우리는 비를 피해 차로 대피했다. 사방에서 벼락이 시도 때도 없이 내리쳤다. 우유니 사막의 하늘을 쩍쩍 가르는 번개를 맨 눈으로 원 없이 구경했다.


P.M.18:30

우중 와인파티와 벼락 감상

신나는 사진 놀이를 하면서 일몰을 기다리는 것이 투어의 정석이 었을 텐데, 비가 멈추지 않는 바람에 우리는 꼼짝없이 차에 갇혔다.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니었다.

비가 살짝 잦아들자 가이드는 갑자기 우리를 모두 차에서 내리게 하더니 트렁크 쪽으로 소환했다. 그 잠깐 사이에 그는 트렁크에서 몰래 우리를 위한 서프라이즈 스탠딩 와인파티를 준비해 두었다. 이 투어에 와인 한 잔의 여유까지 포함되어 있을 줄이야. 우리는 우유니의 빗방울을 온몸으로 맞으며 우중 와인파티를 즐겼다. 저 멀리서

끊임없이 벼락이 내리치고 있었다. 번쩍거리는 벼락을 감상하며 홀짝홀짝 와인을 마시는 것도 낭만이 있었다. 동시에 바닥에 찰랑찰랑 차오르는 물이 약간의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만약 우리 머리 위에서 벼락이 내리치면... 전부 감전되는 거 아님?...'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유니의 날씨는 아주 변덕스러웠다. 한쪽 하늘은 비가 잦아들면서 파란 하늘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반대쪽 하늘은 먹구름이 점점 더 몰려들어 시커멓게 변해갔다.

우리의 가이드는 사정없이 벼락이 내리치는 와중에도 투철한 직업정신을 발휘했다. 그는 우리를 사막 한가운데에 일렬로 세워놓고 이런저런 포즈를 학습시킨 후, 차를 타고 커다란 원을 빙빙 돌면서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나중에 동영상을 보니 벼락이 같이 찍혀서 마치 재앙이 닥친 우유니를 지키는 후예들 같은 포스가 났다.

재앙이 닥친 우유니
우유니의 용감한 후예들
우유니는 우리가 지킨다




우유니 사막에 해가 지면

P.M.19:00

불 타 버린 우유니의 특별한 일몰

날이 개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먹구름은 점점 더 두터워졌다. 두꺼운 잿빛 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었고 우리 일행은 일몰 감상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역시 여행은 날씨 운이라고 낮에라도 쨍쨍한 하늘을 봤음에 감사하며 애써 아쉬운 마음을 위로했다. 모든 것을 체념했을 때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좀 봐!!!"

우유니 지평선을 따라 하늘이 살짝 열리더니 지평선이 불 타오르기 시작했다! 저 멀리 투어 차량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사람들이 신기한 광경을 보려고 개미떼처럼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수채화 물감이 물을 만나 번져 나가듯 붉은 일몰이 지평선을 따라 퍼져나갔다.

너무 특별한 일몰이었다. 그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앞으로도 볼 일 없을, 오직 오늘 이 순간에만 감상할 수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일몰! 날씨 운이 따라주지 않은 것이야말로 행운이었다. 하루 만에 두피가 타 버릴 정도로 쨍쨍한 우유니와, 시커먼 먹구름이 쥐어짜는 빗방울도 모자라 쉴 새 없이 벼락이 내리치는 성난 우유니, 그리고 일몰에 신기하게 불 타 버린 우유니까지 모두 봤으니 말이다. 나는 우유니 사막의 변덕스러운 모습에 홀딱 반해버렸다.


P.M.20:30

6시간 반 만에 다시 사막으로

우리는 녹초가 되어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우유니 사막의 변덕스러운 매력에 홀딱 빠져버린 J와 나는 6시간 반 뒤 다시 사막으로 돌아가는 강행군을 택했다. 이제부터는 체력이 아닌 정신력의 영역이었다. 나는 전날 새벽 스타라이트 + 선라이즈 투어에서 너무 감동을 받은 나머지, 똑같은 투어를 한번 더 하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길 것 같았다. 이번에는 우유니 사막이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까? 무수히 쏟아지는 별도, 포근한 일출도 다시 한 번 눈에 담고 싶었다. 운 좋게 전날 밤 첫 시도만에 가이드도 혀를 내두를 만큼 별이 잔뜩 박힌 완벽한 밤하늘을 보았지만, 한국에 삼각대를 두고 오는 바람에 직접 카메라에 별을 담을 수 없었던 것이 영 아쉬웠기 때문이기도 했다.

J와 나는 주린 배를 안고 투어사 옆 중식당으로 직행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자꾸만 삼각대 생각이 났다. 결국 J에게 금방 돌아오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충동적으로 식당을 뛰쳐나와 전날 우연히 발견한 유심칩 골목으로 달려갔다. 상점들이 문을 닫기 전에 핸드폰 삼각대를 찾아내야 했다. 다행히 세 번째 가게에서 삼각대를 발견했다! 흥정할 겨를도 없어 거금을 들여 삼각대를 구매한 후 중식당으로 잽싸게 돌아왔다. 우리는 그 평범하디 평범한 볶음밥을 걸신들린 듯 순식간에 해치워버렸다. 숙소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넘어있었다. 투어 집합시간은 새벽 3시, 알람을 10개 정도 맞춘 후 잠시 쪽잠에 들었다.

A.M.03:00

우유니 혹한 체험

새벽 2시가 조금 넘은 시각, 알람 소리가 아닌 요란한 천둥소리에 눈을 떴다. 또다시 번쩍번쩍 번개가 치고, 전쟁통에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은 거대한 천둥소리 끊이지 않았다. 별 투어가 취소되어야 마땅한 날씨인데, 얼른 투어가 취소되어서 깊은 잠을 자고 싶은데, 3시가 다 되어갈 때까지 투어사로부터 아무런 취소 통보 연락도 오질 않았다. 이렇게 벼락이 치는 와중에도 굳이 사막까지 가서 별을 보여주겠다는 건가? 천둥번개를 뚫고 집합장소까지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J도 똑같은 고민 중이었는지 연락이 왔다.

'우리... 별 보러 가는 거야?...'

J는 투어사까지 걸어가는 밤길이 무서워 돈을 조금 더 내고 숙소 픽업 서비스를 신청했는데 여태껏 픽업이 안 왔다는 것이다. 투어가 당연히 취소됐나 보다 싶어서 침대에 다시 몸을 뉘었는데 J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픽업 왔어!'

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켜 투어사까지 약 10분 거리를 잽싸게 뛰어갔다. 늦어서 버려지는 일이 없도록, J를 태운 픽업 차량이 집합 장소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도 도착을 해야 했다. 새벽 3시가 넘어가자 거짓말처럼 천둥번개가 잦아들고 약간의 빗방울만 부슬부슬 떨어졌다.

어찌 된 영문인지 함께 투어를 신청했던 나와 J는 각자 다른 투어 차량으로 끌려갔다. 밤새도록 같이 별을 볼 줄 알았는데 우리는 뜬금없이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J를 태운 만석 차량이 먼저 출발한 후 나 혼자만 타고 있었던 우리 차량은 그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거진 30분이 넘도록 차량은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별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자꾸 줄어가는데 가이드랑은 의사소통이 안 되고, 결국 나는 투어사에 항의 카톡을 보냈다. 그제서야 투어 차량이 지각 손님을 포기하고 사막을 향해 출발했다.

가는 길에 커플 손님을 하나 더 태우고 마침내 도착한 우유니 사막! 기대와는 달리 전날보다 기상여건이 너무 열악했고, 별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칼바람 부는 사막은 옷을 잔뜩 껴입어도 너무 추웠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을 쳐다보면 눈이 시려서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전날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툭 떨어진 것 같았다. 만약 이런 혹한기 밤하늘만 경험한 여행자가 있다면, 우유니 사막이 완전 기대 이하였다고 떠들고 다녔을 것이다.

'어제는 그냥 초심자의 행운이었구나... 나 삼각대 왜 샀니...'

추위와 맞서 싸우느라 별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힘들게 구한 삼각대는 세찬 바람 때문에 감히 단 몇 초도 서 있질 못했다. 가이드가 손에 쥐어주는 후레쉬로 하늘에 대충 광선을 몇 번 쏴주고 순식간에 사진 촬영도 끝내 버렸다.

우리는 차 안으로 대피하여 잠시 몸을 녹였다. 나 말고 나머지 일행 둘은 페루에서 온 커플 여행객이었는데, 그들은 내게 남미가 얼마나 따뜻한 곳인지를 또 한 번 가르쳐주었다. 서로 자기소개를 하다가 그들이 페루 출신이라기에 앞으로 페루 쿠스코로 떠나는 나의 여행일정을 공유해 주었다. 그랬더니 나홀로 여행객의 외로움을 걱정해 주면서 갑자기 나의 연락처를 물어왔다. 맛집도 물어보고, 심심하면 같이 놀러도 갈 수 있게 쿠스코에 사는 자기 친구들을 소개해 주겠다면서... 세상에, 만난 지 1시간도 안 된 쌩판 모르는 낯선 이방인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 수 있다니... 그녀는 도대체 얼마나 따뜻한 세상에서 살아온 걸까? 내가 만난 남미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한결 같이 따뜻한 걸까?

바람이 잦아들자 가이드는 대망의 레이저(?) 사진 촬영을 위해 우리를 밖으로 불러냈다.

전날보다 훨씬 적은 인원으로 이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그는 엄청난 스킬을 뽐내며 B급 감성 우유니 인증샷을 만들어냈다.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주인공 변신 장면을 쏙 빼닮은 아름다운 작품들이 대거 탄생했다.

일출 때까지 밖에서 별을 구경했더라면 좋았겠지만, 너무 추워서 별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었다. 덕분에 차 안에서 조용히 지난 이틀간 수면 부족으로 혹사당한 몸뚱아리에게 잠시 휴식시간을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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