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차/볼리비아] 새벽 3시 야간버스부터 새벽 3시 스타라이트 투어까지
A.M.07:00
칠레를 떠나 볼리비아로 향하는 야간버스에서 맞은 아침. 새벽 3시까지 격하게 춤을 추다가 피곤해진 몸뚱이를 곧장 야간버스에 실은 보람이 있었다. 대략 120도의 각도로 앉은 것도, 누운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로 내 집 마냥 세상모르게 깊은 잠을 잤으니 말이다. 붉은 암막 커튼에 둘러싸인 버스 수면실에서 모두가 꿈나라를 한창 헤매고 있을 때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눈이 떠졌다.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다...' 주문을 걸었다. 안 봐도 비디오인 불결한 야간버스 화장실만은 쓰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버텨 볼 요량이라면 의식적으로 주의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창문에 선팅이 벗겨져 마치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 것 같았다. 어디쯤 왔을까? 아침 풍경이나 감상해 볼까 하고 그 구멍에 눈을 바짝 갖다 댔다. 풍경이랄 게 없었다. 여전히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 한가운데를 달리고 있었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척박한 사막이었다. 조만간 화장실이 있을 만한 어딘가에 정차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였다.
부디 사막을 질주하는 화장실을 체험할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맥주를 마시는 게 아니었는데... 활짝 열린 창문으로 칼바람이 쌩쌩 들어오는 사막뷰 화장실은 너무 특별한 나머지 기분을 언짢게 했다. 고장 난 수도꼭지가 놀랍지 않은 화장실이 선사한 불쾌함과 찝찝함을 견딜 수 없어 억지로 다시 잠을 청했다.
A.M.8:30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기사가 승객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그는 비몽사몽 한 승객들을 사막 한가운데에 떨구고는 덩그러니 서 있는 작은 건물 안으로 데려가 줄을 세웠다. 올 것이 왔다. 국경사무소가 틀림없었다. 하루 전에 남미여행 비행기표를 끊고 급하게 출국하는 바람에 볼리비아 대사관에 가서 입국비자까지 받아 올 시간이 없었던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었다. 창구 직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 한마디 없이 손을 내밀었다. 나는 하루 만에 바리바리 준비한 비자신청서류 뭉탱이를 창구 안으로 들이밀었다. 서류를 살펴보던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창구 밖으로 다시 서류 파일을 통째로 밀어냈다.
'설마...'
잠시 머릿속이 하얘졌다.
'입국 거절...?'
나는 다급하게 번역기를 켜고 다다다닥 자판을 두드렸다.
'도착비자 주세요!!!'
알고 보니 그곳은 칠레 출국사무소였다. 볼리비아 입국과는 전혀 무관한. 칠레에 입국할 때 공항에서 받은 PDI라는 영수증 같이 생긴 종이를 이곳에 반납해야 했는데 그 종이 쪼가리를 버리지 않고 여권 사이에 끼워두었길 천만다행이었다. 여전히 우유니 사막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함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이어서 버스에 실었던 모든 짐을 내리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우리는 모두 캐리어를 질질 끌고 국경 넘어 맞은편에 서 있는 볼리비아 입국사무소로 이동하였다.
신호가 불안불안하던 핸드폰 데이터가 끊겼다. 볼리비아는 남미여행 중 유일하게 입국비자를 요구하는 것도 모자라 로밍서비스 지원국에서도 홀로 빠져있는 참 여행하기 까다로운 나라다. 나는 남미행 비행기에 올라타서야 로밍서비스를 신청한 탓에 이륙 직전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핸드폰도 안 터지는데 만에 하나 입국 거절까지 당한다면? 답도 없는 상황이었다. 입국사무소에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남미사람들뿐인지 오로지 스페인어만 들려왔다. 눈치껏 줄을 서서 멀뚱히 디지털 디톡스를 실천하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저 벽에 붙은 QR코드 찍었어요?'
야간버스에서부터 누가 봐도 나홀로 여행객인 나를 위해 친히 버스기사의 말을 영어로 옮겨주던 남자였다. 까맣고 풍성한 수염 군데군데 하얗게 샌 몇 가닥의 털들 때문에 나이를 가늠하기는 어려웠지만 옆에 앉은 여자와 나란히 거대한 배낭을 짊어진 걸 보아하니 커플 여행객이 틀림없었다. 그가 챙겨주지 않았더라면 QR코드가 입국심사의 시작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볼리비아 입국 절차는 꽤나 복잡했다. QR코드로 문답을 작성한 후 창구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가방을 하나하나 열어 보이며 짐 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창구 직원에게 번역기를 들이밀었다.
나는 유일한 여행 준비물인 비자 신청서류 뭉탱이를 들이밀었다. 그는 나의 통장 잔고 증명서, 서류만 떼고 무료 취소한 숙소 예약증, 가라로 만든 여행 일정표 등을 한 장 한 장 훑어보더니 160달러를 달라고 했다(이곳에서는 오로지 현금으로, 그것도 미국 달러만 받는다). 볼리비아 입장료가 무려 20만 원이라니! 한국에서 미리 받아왔더라면 고작 30불인 입국비자를 5배나 비싸게 구매하다니! 하지만 대사관에 왔다 갔다 하며 낭비했을 귀한 시간과 그보다 더 소중한 나의 연차, 출국 전날 충동이 이끄는 여행지로 훌쩍 떠날 수 있었던 기회비용이라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나를 버리고 가면 어쩌나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버스는 기나긴 웨이팅부터 승객 전원이 입국 심사를 받기까지 거진 1시간을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A.M.10:40
볼리비아 국경을 넘어 달리던 버스는 이내 다시 멈춰 서서 사막 어딘가에 승객들을 내려주었다. 기사님의 휴식시간이었다. 저 멀리 구름과 맞닿은 산머리에 눈이 쌓여 그림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반가운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려니 어디선가 독특한 옷차림의 할머니가 한달음에 달려와서 손을 내밀었다. 뽕이 잔뜩 들어가 둥그렇게 부풀어 오른 치마에 양갈래로 길게 땋은 머리, 사진으로만 보던 볼리비아 전통의상이었다. 나는 환전을 못해서 현금 한 푼 없는 상황이었다. 카드뿐이라고 카드를 보여주니 결국 나를 포기하고 내 뒷사람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물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게 되는 사막의 화장실에서 마침내 찝찝함을 씻어냈다.
알고 보니 버스 앞에 작은 컨테이너는 식당이었고 기사님과 몇몇 승객들이 거기서 밥을 먹고 있었다. 너무나도 배가 고팠던 나는 마침 그 식당 앞을 서성이고 있는 통역남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여기 카드 결제가 될까요?"
나의 질문 같지 않은 질문에도 그는 친히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당연히 안 될 거예요. 칠레 페소나 볼리비아 볼 없어요?"
내 수중에 있는 돈이라곤 단돈 5달러 1장뿐이었다. 식당에 들어가 5달러를 펄럭거리며 물었다.
"뽀시블레(possible)?"
식당 직원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통역남 커플은 식당에 자리를 잡고 밥을 먹고 있었다. 그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흘끔 쳐다보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허름한 식당의 조촐한 음식이 그렇게 맛있어 보일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식당을 나서는데 통역남이 따라 나왔다.
그는 내 손에 칠레 페소를 쥐어주었다. 깜짝 놀란 나는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 쳤다. 그는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커플이 내 친구인 줄 알았던 모양인지, 친구랑 같이 사 먹으라며 끝까지 내 손에 돈을 쥐어주었다. 그의 마지막 한 마디가 뇌리에 깊이 박혔다.
"It's nothing."
살면서 돈이 없어 밥을 굶어본 적이 있던가? 낯선 누군가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어 본 적이 있던가? 통역남에 대한 감사함이 밀려오는가 싶더니, 이내 내가 얼마나 차가운 사람이었는지 깨달음에 대한 충격이 휘몰아쳤다. 마치 통역남이 발산하는 그 온기를, 조금 더 과장하면 아직 죽지 않은 인류애를 느끼기 위해 머나먼 남미까지 이끌려 온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잠시 스치듯 지나갈 낯선 여행자를 위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이 여행자는, 도대체 얼마나 따뜻한 세상을 살아온 걸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남미의 온기는 여행 마지막 날까지 나의 차가운 마음을 데워주었다.
여행자 나부랭이가 이런 황송한 대접을 받아도 되나? 때로는 너무 뜨거운 온기에 고드름처럼 뾰족했던 마음이 방울방울 녹아내려 눈가에 고이기도 했다.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그들에게 은혜를 갚을 길이 없었다. 온 우주가 속삭이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지. 그럼 그 은혜를 다른 사람한테 갚아봐!'
통역남처럼, 나 하나 바라보는 삶 말고, 주변을 둘러보는 삶을 살라고 말이다.
그날 아침 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감자수프를 먹었다. 맑은 고기 국물이 꼭 한국식 국물이랑 똑같아서가 아니었다. 따뜻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와 딱딱한 마음을 데워 부드러운 감자처럼 풀어주었다. 너무 배가 고팠었던 걸까? 눈가가 뜨거워지기까지 했다. 아직도 남미여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그날의 눈물 젖은 아침밥, 가장 허름한 사막 식당에서 먹은 가장 저렴한 감자수프다.
버스에서 나는 통역남의 손에 5달러를 억지로 쥐어주었다.
"It's nothing!"
수업료 치고는 아무것도 아닌 금액이었다.
P.M.12:15
드디어 남미여행의 하이라이트, 우유니에 도착했다. 아타카마와 우유니 사이에 1시간의 시차를 고려하면 버스로 10시간이 걸린 셈이다. 생각보다 아주 길진 않았다. 나의 남미여행 코스를 짜 준 조력자는 체력을 위해 반드시 비행기를 타고 우유니로 넘어갈 것을 당부했으나, 직전에 비행기를 사려니 터무니없는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서는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된 셈이었다. 버스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을 정도로 숙면을 취했으니 말이다.
로밍서비스가 볼리비아에서는 지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바람에, 나는 인터넷도 없이 숙소를 찾아가야 했다. 야간버스에서 미리 캡처해 둔 우유니 시내 구글지도 스크린샷을 띄워놓고 방향을 잡으려는데, 나의 좌표가 버스터미널이 아닌 다른 곳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숙소에서 더 멀리 떨어진 어느 지점이었는데, 얼마나 더 멀리 떨어진 것인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만약 도보 소요시간을 미리 찍어볼 수 있었더라면, 우유니 시내 길 상태를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무조건 택시를 탔을 것이다. (아니다. 어차피 나는 택시비를 지불할 현금이 없었다. 참고로, 우유니에 우버 같은 것은 없다.) 캐리어를 끌고 가기엔 너무 먼 거리였다. 비극이 시작될 줄 모르고 울퉁불퉁한 길 위로 바위 덩어리 같은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찾아 떠났다.
우유니 시내에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끄는 것은 독특한 옷차림이었다. 사막 화장실에서 만났던 할머니처럼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 곳곳을 활보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일상복쯤 되는 모양이다. 특히 엉덩이까지 기다랗게 땋아 내린 머리는 진짜 머리카락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정갈한 모양이었다. 설마 그 긴 머리를 매일 따는 건가? 번역기라도 들이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 해야 할 과제들이 있었다.
1. 유심칩 사서 세상과 연결되기
2. 환전소 가서 숙소비 결제할 현금 마련하기
먼저 야간버스에서 미리 캡처해 둔 구글지도를 따라 Entel이라는 통신사 대리점을 찾아갔다. 유심칩부터 먼저 장착해야 지도를 켜고 환전소를 찾아다니며 환율 쇼핑을 할 수 있을 터였다.
이럴 수가. 철창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버스터미널처럼 또 좌표를 잘못 찍었나? 아닌데? Entel이라고 쓰여있는데? 유심칩 파는 대리점이 아니라 회사 사무실인가? 아니면 휴일인가? 갑갑함이 밀려왔다. 오늘 핸드폰은 못 쓰는 건가... 계획도 없이 왔는데 데이터도 안 되면 어떻게 여행을 하지... 이렇게 되면 환전소도 찾아갈 수가 없는데...
볼리비아에서는 카드도, ATM기도 쓰지 말고 무조건 현금만 쓰라고 신신당부한 칠레 동행의 조언에 따라, 캐리어를 들고(도로 상태가 캐리어를 끌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낑낑거리며 환전소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났다. 그녀가 분명히 우유니 시내에 가면 환전소가 몰려있을 거라고 했는데, 어쩐 일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볼리비아에는 공식환율보다 훨씬 높게 형성되는 암환율이 존재한다. 볼리비아는 고정환율제라서 공식환율은 1달러당 대략 7볼인데 화폐가치 하락으로 실제 시장에서는 1달러당 대략 10볼 이상의 암환율이 형성된다. 그래서 합리적인(?) 여행자라면 매일 바뀌는 암환율을 가장 높게 쳐주는 사설 환전소를 찾아다녀야 한다. 나는 이런 기본적인 것도 안 알아보고 대충 카드 쓰지 뭐, 하면서 달러도 조금밖에 환전을 안 해왔는데, 숙소도 투어사도 모두 현금만 받아서 달러 부족 사태로 아주 애를 먹었다. 환전소에서도 작은 달러는 받아주지도 않으니 달러를 충분히 환전해 가는 것이 좋다.
바위덩어리처럼 무거운 캐리어를 신경질적으로 쿵 내려놓고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땀을 식히고 있는데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뒤에서 대여섯 명의 소년들이 신기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연예인 체험이 또 시작된 것인가. 파란색 축구 유니폼을 맞춰 입고 어딘가 멋을 낸 그들은 우유니 모 중학교의 잘 나가는 오빠들 같은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나는 우유니 축구 소년단에게 손을 흔들며 "올라!"를 외쳐주었다. 우유니 축구 소년단이 꺄르르 웃었다. 마침 잘 됐다 싶어 아타카마에서 배운 스페인어로 도움을 요청했다.
"Cambio(환전소)?"
"Dollar(달러)?"
익스큐즈미를 몰라서 무례하게 한 단어를 툭 던졌는데 그들은 찰떡같이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소년들의 친절한 설명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손가락을 일로 꺾고 절로 꺾으며 방향을 재확인한 후 환전소 찾아 삼만리를 떠났다.
소년들이 나를 놀려먹었던 걸까? 환전소는 어디에도 없었다. 몇 바퀴를 뺑뺑 돌다 설마 여기? 하면서 좁은 골목에 들어갔는데, 그곳에 뜻밖의 유심칩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게 웬 떡이냐! 그러나 유심칩 천국에서는 아주 간단한 영어조차 통하지 않았다. 데이터가 없으니 번역기를 돌릴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 나는 가게 주인에게 손짓발짓으로 번역기를 켜달라고 요청한 후 구매를 시도했다. 그곳에서 파는 유심칩은 데이터가 아예 없다거나, 거의 없다거나, 여러모로 어딘가 부족한 것들이었다.
체념하고 돌아서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핸드폰을 들이대며 말을 걸었다. 연예인 체험에 익숙해진 나는 그녀와 같이 셀카를 찍으려고 자세를 잡았는데, 갑자기 우유니 소년축구단이 우루루 등장했다. 여기서 또 만나다니! 너무 반가웠다. 보아하니 축구소년단 멤버 중 한 명의 어머니인 것 같았다. 그녀는 축구소년단과 나를 벽에 나란히 세워놓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나는 소년들과 함께 깔깔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의 스페인어 실력을 뽐냈다.
"너는 이름이 뭐니? 난 한국에서 왔어."
동양인 여자를 신기한 눈으로 몰래 훔쳐보는 아이들을 만날 때면 이렇게 말을 걸어주었다. 그들의 수줍은 대답과 이어지는 질문을 알아들을 수 있었더라면 더 재밌었을 텐데... 스페인어 좀 배워 올 걸...
몇몇 행인들의 손가락 지시를 따라 어렵게 환전소를 찾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굳이 길을 묻지 않아도 주변을 잘 둘러보았으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위치에 떡하니 환전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대화가 필요 없다. 환전소 주인은 조용히 계산기에 환율을 두드렸다. 뜨거운 태양 아래 더 이상 캐리어를 들고 돌아다닐 수가 없었던 나는 그 환전소에서 바로 환전을 해버렸다. 동행들에게 주워들은 환율 정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우유니 시내를 돌고 돌아 어렵게 환전을 하고 한숨을 돌렸다. 그제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의외의 감성을 풍기는 우유니 골목도, 그곳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아기자기한 장식들도, 한 집 건너 서 있는 거대한 라마 인형들도.
P.M.13:30
캐리어를 들고 한참을 걸어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볼리비아 비자 신청서류 중 숙소 예약증이 필요해서 대충 예약해 두고 무료 취소 기한을 놓쳐버려서 오게 된 이곳, 유칼립투스 호스텔. 색이 바랜 허연 간판과 낡고 허름한 외관이 주는 무채색의 첫인상과는 달리 내부는 창문으로 새어 들어온 햇빛이 핑크빛과 노란빛이 물들어 따스했고 주인 부부는 정겨웠다.
숙소에는 유독 일본인 손님들이 많았다. 일본에서 우유니 붐이라도 불고 있는지 유독 다른 나라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일본인 관광객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다 주인 아저씨는 나에게 일본에서 왔냐고 물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그는 아내가 슈퍼주니어 광팬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숙소 정리를 하던 주인 아주머니가 갑자기 나타나 슈퍼주니어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도 한때 슈주 팬이었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아 같이 떠들어 드릴 수는 없었다. 볼리비아에도 k-pop 열풍이 불고 있었다. 아주 느린 속도로...
숙소비를 결제하고 캐리어만 맡기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이미 방이 준비됐다면서 얼리체크인을 해주었다. 내 방에는 무려 침대가 3개나 있었다. 당연히 3인실 도미토리인 줄 알았는데 아무도 오질 않아 나중에 주인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이곳은 개인실만 운영하여 그 방을 온전히 나 혼자 쓰면 된다고 했다. 이런 뜻밖에 행운이! 덕분에 새벽에 나갔다 아침에 돌아오는 우유니 사막 투어를 어찌나 편하게 다녔는지 모르겠다.
주인 아저씨에게 유심칩을 사지 못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대체 어딜 가야 살 수 있는지 물었더니 오직 그곳뿐이라고 했다. 아마도 점심시간이었을 거라고 다시 가보라고. 철창까지 잠가두고 점심을 먹는다고...? 속는 셈 치고 다시 통신사 대리점을 향해 길을 떠났다.
우유니도 아타카마처럼 개들이 거리를 장악하고 있었지만 차이점이 확연했다. 아타카마 개들은 위풍당당한 걸음걸이에서부터 어딘가 힙한 구석이 묻어났다면 우유니 개들은 다 엉킨 털이며 흙 범벅인 옷이며 영락없는 시골 개의 모습으로 세상 여유롭게 널브러져 있었다.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순박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P.M.15:00
주인 아저씨 말이 맞았다. 점심시간이 지나 다시 찾은 Entel 대리점,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나는 맨 오른쪽 창구 직원이 나를 불렀다. 그녀는 조용히 스페인어 팜플렛을 내밀었다. 스페인어 까막눈인 나는 영어로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때 내 옆 창구에서 유심칩을 사고 있던 손님이 그녀에게 스페인어로 몇 마디를 묻더니 나에게 영어로 대답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이후에도 나의 몇 가지 질문들은 우연히 만난 통역가에 의해 그녀에게 전달되었고, 덕분에 나는 무사히 언리미티드 데이터를 탑재한 유심칩을 구매할 수 있었다. 직원들이 유심칩 세팅을 해주는 동안 우리는 창구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이어갔다.
"너 여기 출신이야?"
나는 그가 영어를 할 줄 아는 우유니 주민인 줄 알았다.
"그래 보여? 하하하. 아니 나도 여행 중이야"
그는 딱히 기간을 정해두지 않고 세계를 방랑 중인 오스트리아 출신 친구였다. 스페인어는 그냥 조금 할 줄 아는 거라고 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그가 반갑게 얘기했다.
"나 한국여행 두 번이나 갔다 왔어!!!"
그는 한국 여행 썰을 풀다가 가장 좋았던 여행지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해 괴로워했다. 스무고개 끝에 정답인 설악산을 찾아냈고 그사이 직원은 유심칩 교체를 완료하고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드디어 다시 세상과 연결되었다!
우리 대리점 앞에 서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무슨 일을 하고 사는지, 여기까지 왜 왔는지로 시작된 수다는 단 몇 분 사이에 서로의 인생사 요약으로 이어졌다. 방금 유심칩 사다가 처음 만난 사람인데 마치 오래 알았던 친구처럼 이야기가 잘 통했다. 아니, 오히려 그 순간만큼은 내 친구들보다 더 친구 같았다. 때로는 아예 낯선 사람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더 쉬울 때가 있는 법이니까.
그는 하루 만에 비행기표를 끊고 옆집 가듯 남미로 몸을 던진 나의 충동적인 여행 방식을 좋아했다. 나 또한 언제 집에 돌아갈지 아무런 기약 없이 떠돌아다니는 그의 자유로운 여행방식을 좋아했다. 아무 계획 없이 우유니 땅에 떨어진 우리는 각자의 여행준비를 위해 남은 수다는 다음 행선지인 라파즈에서 또 우연히 만나 떨기로 했다. 나는 당장 오늘 밤 우유니 사막에서 별을 보기 위해 투어사로, 그는 오늘 아침 우유니 사막에서 명을 다한 달랑 하나 가져온 운동화를 새로 사기 위해 시장으로 각자 갈 길을 떠났다.
P.M.16:00
투어사로 향하는 길, 너무 배가 고파서 우유니에서 유명하다는 한식집에 들렀다. 생각해 보니 하루 종일 감자수프 외에는 먹은 것이 없었다. 쫄쫄 굶었으니 오랜만에 한식으로 보상을 할 만했다.
볼리비아의 한류 열풍은 느려도 너무 느렸다. 한식집 티비로 언제 적 겨울연가가 무한재생되고 있었다. 슈퍼주니어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드디어 잔뜩 기대하며 시킨 진라면이 나왔다. 맛없을 수 없는 이 라면이, 맛이 없었다. 단순 물 조절 실패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밥을 추가했는데 거의 죽이 나왔다.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한 끼, 콜라로 배를 채웠다. 그나마 먹을 만했던 건 특이한 맛이 나는 김치였다.
바깥에는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더니 별안간 천둥이 내리쳤다. 분명 비 예보는 없었는데... 야간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부지런히 우유니 선셋 투어를 떠난 한국인 커플이 떠올랐다. 시내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지만 부디 사막에는 해가 쨍쨍하길. 우산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다음 도시인 라파즈 숙소 검색을 시작했다.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하루쯤은 아무런 일정 없이 여행준비를 하며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 어느새 폭우 소리가 잦아들었다. 가방을 챙겨 나갈 준비를 하는데 테이블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맞은편에 놓인 빈 의자에 누군가 앉았다.
나홀로 전세내고 있었던 식당에 들어온 두 번째 손님이 하필이면 아까 유심칩 사다가 사귄 친구일 줄이야! 라파즈에서 다시 보자고 요란하게 굿바이를 외친 것이 무색하게 불과 1시간 만에 우리는 재회했다. 반가움도 잠시, 아쉽지만 그의 메뉴 선택만 도와주고 바로 자리를 떠야 했다. 나는 당장 오늘 밤 우유니 별 투어를 하기 위해 결제를 하러 가던 길이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더 지체했다가 투어사가 문을 닫아버리면 우유니에서의 소중한 첫날밤이 그냥 날아가버릴 테니까.
P.M.17:30
그 유명한 우유니 소금사막을 보려면 시내에서 차를 타고 한참 들어가서 사막 안에서도 바닥에 물이 찰랑찰랑 고여있는 곳을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투어사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나는 일부러 우기에 맞춰 1~2월에 여행을 가서 온통 물밭인 우유니를 기대했는데, 지구온난화 탓인 건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생각보다 물이 별로 없어서 깜짝 놀랐다.
투어사를 이용하면 차도 태워주고, 사막에서 밥도 차려주고, 장화도 빌려주고, 판초도 빌려주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진도 잔뜩 찍어준다. 거진 황제투어다. 특히 우유니에는 한국인들에게 특화된 투어사가 있는데 바로 그 유명한 '아리엘 매직투어'다. 일단 사진이랑 동영상은 정말 기가 막히게 찍어준다. 가이드들이 프로페셔널한 촬영 스킬 장착은 물론이고,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뒤로, 앞으로 같은 간단한 한국어 패치까지 되어있다. 무엇보다 카톡으로 투어 예약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편리하다. 물론, 당일 투어 전까지 현장결제를 해야 예약이 확정되므로 나는 부랴부랴 투어사 사무실을 찾았다.
투어사 메뉴판에는 너무 다양한 메뉴들이 있어서 무엇을 선택할지 참 고민이 되었다. 나보다 먼저 투어사에 와있던 나홀로 여행객도 결정 장애를 호소하고 있는 듯했다. 이국적인 외모, 스페인어 대화로 보건대 외국인이 틀림없어 보였는데 쾌활한 목소리로 나에게 한국말을 걸어왔다.
"투어 뭐뭐 하실 거예요?"
아뿔싸. 알아들을 사람 없다고 혼잣말을 잔뜩 중얼거렸는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척 태연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저도 고민이에요! 날씨 때문에... 일단 오늘 밤 별 투어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내일 날씨 보고 결제할까 봐요!"
내일 일기예보가 오락가락해서 더욱 고민이 되었다. 잔뜩 흐리거나 비바람이 몰아친다면 우유니 사막의 거울 반영을 볼 수 없을 테니 굳이 투어를 나갈 필요가 없었다. 투어사 직원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사막의 날씨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우유니 시내의 날씨와 사막의 날씨는 또 전혀 다르다면서. 실제로 그랬다. 그 정확한 아큐웨더도 사막의 우기 날씨를 점치지는 못했다. 일기예보가 온통 비, 구름이어도 쨍쨍한 해가 떴고, 일기예보에 해가 떴어도 사막에는 천둥번개가 치기도 했다. 그냥 모든 것을 운에 맡기고 날 좋은 날이 얻어걸릴 때까지 계속 투어를 다니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투어는 30불정도로 우유니가 주는 감동에 비하면 매우 저렴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결국 새벽 3시에 출발해서 별과 일몰을 감상하고 아침에 돌아오는 스타라이트+선라이즈 투어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내일 투어를 마치고 돌아와서 날씨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한국인 여자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그녀와 내가 우유니에서 절친이 되어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될 줄은.
P.M.18:00
원래는 여행준비를 신속하게 마치고 예쁜 카페를 찾아 며칠 동안 쓰지 못한 모닝페이지를 쓸 생각이었으나, 여러 가지 변수로 인해 저녁이 되어서야 글을 쓸 수 있었다. 우유니에서 노트북 작업 공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나는 우유니에 존재하는 유일한 갬성 카페인 '라마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온갖 외국어가 들려왔다. 어디 숨어있나 싶었던 여행객들이 다 여기 모여있었다. 야간버스에서 굶주린 나에게 아침 밥값을 건네준 통역남도 그곳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우유니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이질적인 실내 인테리어 때문에 잠시 한국에 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이곳 사장님이 주신 카페 스티커에는 한국어가 적혀 있었다.
'사랑하며, 여행하자!'
그곳에서 글도 쓰고 커피도 마시고 배고파서 저녁밥까지 시켜 먹었다. 남미 땅을 밟자마자 바쁘게 싸돌아다니느라 처음으로 가져 본 휴식시간이었다. 아무런 일정도 없는 날이 이렇게 달콤한 것이었다니! 그곳에 눌러앉아 게으름을 피우고 싶었지만 영업시간 종료로 인해 나의 짧은 휴식시간도 끝이 났다.
P.M.20:30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어디선가 웅장한 음악이 들려왔다. 음악 소리를 따라 홀린 듯 어두운 골목으로 빨려 들어가니 좁은 공터에 이르렀다. 그곳에 악기를 든 열댓 명의 앳되어 보이는 악사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거대한 북소리, 씩씩한 트럼펫 소리, 시원한 심벌즈 소리가 어우러져 제법 축제 분위기가 났다.
그들을 둘러싼 마을 주민들 틈에 끼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우유니 길거리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감상했다. 그곳에서 외국인이라곤 나와 내 옆에 있던 일본인 관광객 몇 명이 유일해 보였다. 누군가 우리에게 따뜻한 술을 한 잔씩 나눠주었다. 보아하니 종교적인 축제인 것 같았다. 나중에 숙소 주인 아저씨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여쭤보니 매년 2월 열리는 깐델라리아 성모를 기리는 행사라고 했다. 나는 참 운이 좋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로컬 축제 현장까지 구경을 했으니 말이다.
숙소에 도착해서 짐 풀고 잘 준비를 하니 밤 10시가 넘어버렸다. 투어 집합 시간은 새벽 3시, 5시간도 채 잘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불안한 마음에 눈 뜨자마자 몸만 튀어나갈 수 있도록 옷까지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우유니의 밤 날씨는 예측이 어려워 겹겹이 껴입어야 한다. 추위에 철저히 대비하지 못하면 아무리 별이 많이 떠 있어도 오래 감상할 수가 없다. 레깅스 3겹, 양말 3겹, 상의는 3겹+a로 겹겹이 껴입고 누워보니 몸뚱아리가 영 편치 않았지만 투어에 늦지 않으려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화장할 시간도 없을 테니 지우지 않고 고대로 잠들었다. 참고로 장화를 신어야 하니까 긴 양말을, 걸어 다니다 보면 하얀 소금물이 온 사방에 튀어 난리가 나니까 반드시 망가져도 되는 옷을 입는 것이 좋다.
A.M.03:00
새벽 3시, 용케 일어나 사람 한 마리 없는 우유니의 새벽 골목을 혼자 걸었다. 나는 새벽 3시에 만나 우유니 사막에서 별을 보다가 일출까지 감상하고 시내로 다시 돌아오는 스타라이트+선라이즈 투어를 신청했다. 투어사 앞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한국인 6명이 이미 와 있었다. 그들은 각각 혼자 반시계 방향 국민 루트로 여행을 하다가 페루에서부터 만나 볼리비아까지 쭉 같이 여행 중인 일행이었다. 이럴 땐 대세를 거슬러 혼자 시계방향으로 여행하는 것이 조금 외롭다. 장화로 갈아 신고 투어사 차를 타고 어둠 속을 한참 달렸다.
가이드는 깊은 어둠 속에 차를 멈추고 우리를 내려주었다. 깜깜한 어둠에 눈이 적응하는 동안 흐르던 몇 초간의 정적을 깨고, 넋 나간 탄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미쳤다..."
마치 무대의 막이 오르고 화려한 조명이 확 들어와 시선을 빼앗듯, 깜깜한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찬란한 자태를 뽐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에도 땅에도 별이 박혀있었다. 쏟아지는 별과 시도 때도 없이 날아다니는 별똥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우유니 사막의 수면 위에 그대로 비치고 있었고, 우리는 반짝이는 별을 밟고 황홀하게 서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장관 앞에 모두 할 말을 잃고 '미쳤다'만 외쳐댔다. 현지 가이드는 우리의 반응을 이미 예상한 듯 '미쳤다'를 따라 했다. 우유니 사막의 별을 처음 본 한국인들이 하나같이 '미쳤다'를 외쳐댔다는 것이다.
하필이면 한국에 삼각대를 놓고 오는 바람에 그 장관을 렌즈에 담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일행 중 한 명이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와서 우리들의 사진을 남겨주었다.
사실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아도 투어사에서 알아서 프로페셔널하게 사진을 찍어주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하늘을 향해 광선을 쏴보라고 후레쉬도 빌려주고, 판초도 빌려준고(물론 유료다), 차 위에도 올려준다. 가이드가 실수로 내 판초를 안 들고 와서 뿔이 나 있던 상황이었는데, 개인 판초를 소장하고 있던 일행들이 기꺼이 판초를 빌려 준 덕분에 다양한 판초를 입어볼 수 있었다.
사실 별이 쏟아지는 여행지는 널렸다. 하지만 우유니 사막이 특별한 것은 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들이 바닥으로까지 쏟아져 박힌다는 점이다. 별빛으로 반짝거리는 우유니 사막 위를 걷고 있으면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로 황홀했다. 비현실적이게 아름다웠다. 특히 내가 별 투어를 했던 날은, 날씨 걱정이 무색하게 별이 많이 보였다. 현지 가이드도 이렇게 별이 잘 보이는 날은 오랜만이라면서 감탄을 쏟아냈을 정도였다. 맨 눈으로 별천지를 감상하는 것, 그거 하나만으로도 머나먼 남미까지 여행 올 가치가 충분했다.
A.M.05:00
서서히 어둠이 걷히고 별들도 하나둘씩 잠이 들었다. 가이드는 처음 보는 신기한 사진 촬영 기술을 뽐내며 우리들에게 이런저런 포즈를 요구했다. 내가 가장 감명받은 사진 컨셉은 바로 '라마 행렬'이다. 이렇게 기발할 수가!
이어서 가이드는 우리를 세워놓고 우리 뒤를 돌아다니며 신기한 묘기를 부리더니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할 법한 창의적인 사진 작품들을 연달아 탄생시켰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심심할 틈이 없었다.
우유니 사막에 가면 모두가 한다는 네온사인 글씨 쓰기를 끝으로 우리의 신기한 사진놀이는 종료되었다. 깍두기처럼 혼자 굴러들어 온 나에게 아낌없이 판초를 빌려주고, 핫팩도 나눠주고, 심심하지 않게 말도 걸어주고, 열심히 사진도 찍어 준 일행들이 참 고마웠다. 그들과 함께 했기에 하하호호 웃으며 즐겁게 별구경을 할 수 있었다. 7명이었기에 라마도 3마리나 만들고, 사진에 KOREA 다섯 글자도 새길 수 있었다.
비록 한 명 한 명의 이름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별을 보러 가는 차 안에서 같이 음악을 듣고 대화를 나누던 순간, 별천지에 착륙하자마자 동시에 탄성을 쏟아내던 순간, 추위도 잊은 채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던 순간은 기억 속에 생생하다. 우유니의 첫날밤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아직도 한바탕 꿈처럼 느껴질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