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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채 Oct 20. 2024

불안할 땐 자폭하는 존재의 단상

보석 같은 책, <운명이 건네는 호의> 읽는 중

'불안'을 성공의 원동력으로 삼으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난 불안할 때마다 불안을 원동력을 삼지 못하고 무너지는 내가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사이드 아웃 2>를 볼 때, 내 속의 '불안이'를 너무도 잘 표현해서 공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불안이'가 내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아는 어른이다. 하지만 불안과 어떻게 공생하면 좋을지 여전히 해답을 알지 못하는 불완전한 어른이기도 했다.







최근 협찬받은 도서 중 하나인 <운명이 건네는 호의, Favor>에서 불안을 다룰 나름의 실마리를 찾았다. 불안을 통해 운의 흐름을 타는 방법이란 부제에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불안 속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관해 친절히 알려주는 도서였다.



이 책에 따르면 불안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는 크게 A와 B타입으로 나눠볼 수 있다.




A유형
-불안을 원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불안을 연료로 태우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배는 그대로 가라앉는다.

-ex. 학교 다닐 때 벼락치기에 강하고, 시험 전날만 되면 유독 집중해서 공부하던 타입 
B유형
-먼저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균형을 잡아야 한다.
-불안의 에너지를 흩어지게 하면서 배가 잘 떠 있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우선이다.
-이 유형은 불안을 느끼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불안이 잠자고 있던 행운을 깨우는 것)

-ex. 벼락치기 할 때 '다 못하고 망치면 어쩌지.' 등 걱정하는 타입.



불안은 어느 정도 다스려야 한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한 달 가까이 병원을 다니면서 일정과 업무 모든 게 엉망이 되니 불안한 마음을 아무리 가라앉혀도 돌발적으로 툭툭 튀어나와서 나를 괴롭게 했다. 퇴원 후엔 악몽에 시달렸다. 아무래도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지옥 같은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자주 다그쳤다. 넌 왜 이렇게 나약하고 한심하냐고. 일도, 일상도 뭐 하나 잘하는 게 왜 없냐고. 물론 내가 나한테 너무 잔인한 거 같아서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가 너무 답답했고, 과연 다가오는 2025년을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을지까지도 심히 걱정되었다. 불안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불안을 원동력으로 활용해보려고 했다. 하나 이상하게도 남들은 불안을 동기부여로 힘낸다는데, 난 불안할수록 자포자기하고 싶지 더 열심히 하고 싶지 않.



과거를 돌아봐도 그렇다. 불안할수록 자포자기한 것들이 많았다. 자폭하면 어찌나 편한지. 에라 모르겠다 모드가 되어서는 모든 불안을 외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내 옆에서 불안한 소리를 계속하면 그 사람과 관계를 포기하거나 정말 부정적인 말에 휩싸여서 내가 하던 걸 울며 겨자 먹기로 포기하곤 했다. 불안은 내게 그 어떤 동기부여도 주지 못했고, 자폭할 이유만 되어주었다. 이런 경험과 현재 상태를 돌아보는 나는 때에 따라 A유형도 될 수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B유형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철수와 달리 어차피 안 될 거 잠이 잤던 나




난 일이든 공부든 벼락치기를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학교 다닐 때도 공부는 평소에 했다. 시험 시간이니까 몰아서 공부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불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억지로 업무를 벼락치기로 할 때가 많았다.



어떤 사람은 벼락치기를 했을 때 더 집중도 잘되고, 성과도 좋다지만 난 전혀 아니었다. 벼락치기는 내 능력의 50%도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임시방편이자 스트레스의 원인이었다. 불안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채 해야 할 일만 바라보고 있으니 일이 제대로 풀리지도 않고 몸은 몸대로 아팠던 것 같다.






좋지 않은 운을 만나는 요즘. 운명은 과연 내게 어떤 호의가 있는 것일까?



나는 내 운을 자꾸 불운으로만 바라보는 게 싫었다. <운명이 건네는 호의>를 읽으며, 현재의 내 불안을 다스리는 것에 관한 중요성과 운이 내게 보내는 호의를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을 지속적으로 가졌다.



그러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더 해빙>의 후속작인 <운명이 건네는 호의>를 운 좋게 만나지 않았다면 불안을 억지로 원동력으로 삼으려 노력하다 더 큰 탈이 났을 수도 있겠구나.



운명은 내게 이번 시련을 계기로 내 속의 '불안이'와 더 많이 친해지라는 기회를 주고 있었다. 앞으로 무언가를 할 때, '남들처럼'이란 말로 스스로 잔인한 채찍질은 하지 말고, 내 속도대로 불안부터 다스리며 꿋꿋하게 나아가란 가르침을 준 것이다.




누가 뭐라든 나만의 방식으로




나는 불안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전부 포기하며 살기 싫다. 불안할 때 자포자기 해버리는 타입이라는 걸 알았으니, 이제 내 일상을 잘 지키고, 불안 속에서도 꿋꿋하게 내 행운을 순탄하게 활용할 일만 남았다. 그래, 불안을 연료 삼아 앞으로 간다는 건 아직 내겐 잘 맞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이 또한 얼마나 큰 행운인가.




섣부르게 결정을 내리거나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는 것은 되도록 지양하시고요. 대신 운동이나 명상처럼 불안을 잊고 잠시 몰두할 수 있는 활동에 하루 30분 정도만 할애하시기를 추천드려요. 덧붙이자면 그 이상의 시간을 쓰시는 것도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아요.

-운명이 건네는 호의, p95


퇴원 후 일상 회복을 위해 아주 조금씩, 꾸준히 무언가를 시도하고 있다. '바쁜데 너무 태평하게 구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불안을 잘 다스리고 자포자기하지 않는 나를 위해 꾸준히 명상하고 일기를 쓰는 이 일상을 더 열심히, 더 예쁘게 유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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