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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는 커피가 맛있는 날

4-3모닝페이지 : 코코넛 커피가 반가운 이유

by 윤채



다정한 시간이

주는 고마움




커피는 왜 마시는 걸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처럼 커피를 즐기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듯 나 역시 커피의 세계를 오래 이해하지 못했다.



카페에 가도 늘 커피보다는 케이크나 아이스티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책상 위에는 언제나 따뜻한 페퍼민트나 히비스커스 차가 놓여 있었다. 내게 커피는 기호가 아닌 타인의 루틴 혹은 취미 같은 존재였다.



그런 내가 가끔 커피를 찾는 날이 있다. 특별히 입맛이 바뀐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그 씁쓸함 속 달콤함이 그리워지는 날들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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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연둣빛 야자수 패턴에 '코코넛 커피'라고 적힌 상자. 그 순간 오래전 지인이 해외여행에서 사다 준 커피가 떠올랐다.



진한 커피 향에 코코넛 향이 섞인 독특한 맛. 처음엔 낯설었지만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 그날 지인의 무심한 듯 따뜻했던 손길까지. 그 기억에 이끌려 나는 코코넛 커피를 한참 바라보았다.



결국 밀크티를 사려던 손이 조용히 방향을 바꿨고 코코넛 커피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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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포장을 열고 스틱을 조심스레 컵에 부었다. 뜨거운 물을 붓고 스푼으로 천천히 저을 때, 달콤하고 고소한 향이 방 안에 퍼졌다. 향기만으로도 마음 한 켠이 몽글하게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첫 모금.



'맞아, 이 맛이었지.'



기억은 혀끝보다 마음속에서 먼저 되살아났다. 그때의 웃음, 소소한 대화, 선물 너머의 마음. 단지 커피 한 잔이었지만 그 안엔 다정한 시간이 들어 있었다.



나는 커피를 마신 게 아니었다. 시간을 마셨고, 오래된 다정함을 다시 한번 음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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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여전히 쌉싸름하고, 코코넛은 여전히 낯설다. 그럼에도 오늘은 이 커피가 참 맛있게 느껴진다. 아마도 맛이 변한 게 아니라 그 순간의 감정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자꾸 찾는 건, 맛이 아니라 기억일지도 모른다. 향기로 남는 사람, 온도로 떠오르는 마음. 어느 날 갑자기, 문득 기억에 문을 두드리는 선물 하나처럼.



오늘은 그런 날이다. 커피가, 꽤 괜찮은 날은 그런 날.





4-3

● 인생은 딱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10%는 일어나는 일, 90%는 당신의 반응이다. -찰스 스윈돌

●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패배하고 불명예스럽게 사는 것은 매일 죽는 것과 같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왜 기도할 때 꼭 무릎을 꿇어야 하나요? 저라면 정말 기도하고 싶을 때 이렇게 할 거예요. 혼자 드넓은 들판에 가거나 깊은 숲 속에 들어가서, 하늘을 올려다볼 거예요. 저 위 높디높은, 끝없이 푸른 아름다운 하늘을 바라보는 거죠. 그러면 정말 기도하는 느낌이 들 거예요. -빨강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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