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감정을 분리하지 않는 다정한 루틴 지속하는 법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머릿속에는 분명 무언가가 떠오르지만 막상 키보드를 두드리면 문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써놓은 글은 스스로에게조차 어색하게 느껴진다. 그럴수록 의심은 깊어지고, 문장은 쓰는 족족 지워지기 일쑤다. 하루를 글 앞에서 보냈음에도 남는 건 피로와 자책감뿐이고 무엇도 써내지 못했다는 무력감은 다음 날 다시 쓰는 용기를 더 멀게 만든다.
이럴 때 무리하게 창작을 밀어붙이기보다, 방향을 바꿔 일기를 써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기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므로 완성도나 구조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날의 감정이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적는 일기 쓰기는 창작을 포기하는 시간이 아니라, 창작을 지탱하는 시간이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자신에게 말을 건네듯 적어보는 이 과정은 흐트러진 감정을 정리하고 다시 쓰는 흐름을 회복하는 데 유효하다.
심리학자 제임스 페니베이커는 일기 쓰기를 ‘감정의 언어화(emotional disclosure)’라고 정의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만큼 글로 풀어내는 행위도 자기 인식을 돕고 스트레스를 낮추며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실제 연구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글로 기록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정서적 안정과 면역력 면에서 더 높은 수치를 보였다. 감정을 글로 다룬다는 것은 감정에 휘둘린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감정을 객관화하고, 스스로의 상태를 인식하는 건강한 방식이다.
일기를 쓴다는 건 결국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창작이 막힌 날에도 문장을 이어갈 수 있다는 확신은, 장기적으로 글쓰기 근육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잘 쓰지 않아도 되는 문장을 통해 스스로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면, 다시 창작의 자리로 돌아오는 길이 한결 가벼워진다.
일기 쓰기를 지속 가능한 루틴으로 만들기 위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두 가지 태도가 있다.
무던한 하루, 기억에 남을 사건이 없는 날에도 몇 줄을 적어보는 습관은 감정과 상관없이 기록하는 힘을 길러준다.
일기는 결론을 내는 글이 아니다. 흐름만 남겨두어도 충분하다. “오늘은 이유 없이 지쳤다”처럼 단순한 문장도 훌륭한 일기다. 되려 이런 열린 문장이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창작이 막히는 날에는 스스로에게 더 정직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완성하지 않아도 결과를 내지 않아도 한 줄을 적는 행위 그 자체가 창작으로 이어지는 시작점이 된다. 무엇을 쓰든 멈추지 않는 사람은 언젠가 다시 흐름을 찾는다. 일기 쓰기는 그 과정에 다정하게 기여하는 습관이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 일기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글을 멈추지 않게 해주는 가장 실용적인 글쓰기다.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기보다, 자신을 관찰하며 언어화하는 이 루틴은 감정과 창작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견디는 힘을 길러준다.
창작자에게 필요한 건 언제나 완성된 완벽한 결과물이 아니라 스스로를 점검하고 회복할 수 있는 하나의 문장이다. 일기는 그 문장의 시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