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과 중단을 견디는 쓰기의 내공
그냥 때려치울까?
글을 쓰다 보면,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문장이 있다.
아무리 고쳐도 마음에 들지 않고, 단어 하나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날들...
심지어 며칠, 몇 주가 지나도 도저히 다시 열어보고 싶지 않은 글도 있다. 그런 글에는 실패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것만 같다. '이건 망했다'라는 생각과 함께 창 닫기 버튼을 눌러버린다.
하지만 작가라면 결국 그 구린 글로 돌아가야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글이 ‘미완’이기 때문이다.
'미완'이라는 상태는 불완전한 결과이자, 아직 끝나지 않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때 중요한 건, 창작자는 완성보다 회복을 통해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의외로 안 구릴지도!)
글을 다시 열고, 미완의 문장을 똑바로 마주하는 행위 자체가 내공이다. 좋은 문장은 갑자기 완성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엔 못 쓴 글이어야만 나중에 더 나은 문장이 된다.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은 뇌가 불확실성과 오류 상황에서 더 많이 활성화된다고 설명한다.
"왜 잘 안 풀리지?"라는 인지 부조화 상태에 놓일 때, 뇌는 해석을 시도하고 패턴을 찾으려 하며 새로운 연결을 만든다. 이는 곧 창작 능력을 강화하는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으로 이어진다.
즉, 글이 막힐 때 멈추지 않고 다시 돌아가 마주하는 작가의 뇌는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훈련되고 있다. 글쓰기를 잘하게 되는 사람은 단순히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못 쓴 글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성하려고 하는 사람이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는 자존감의 회복은 '자기 통제감의 회복'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쓰던 글을 중단한 상태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기 쉽다. "나는 왜 이것조차 못 끝내지?"라는 자책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다시 열어보고, 단 한 줄이라도 덧붙이는 순간, 우리는 그 통제권을 되찾기 시작한다. 완성 여부와 관계없이 ‘쓰고 있다’는 감각은 심리적 회복을 돕는다. 글쓰기가 회복을 주는 이유는, 내가 여전히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호를 나 자신에게 보내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 융은 "창작은 완성의 상태가 아니라, 계속 마주하는 반복의 행위"라고 정의했다. 이 반복은 고통스럽지만, 결국 ‘내가 돌아온다’는 자기 신뢰의 증거가 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완벽함이 아니라 관계의 유지다. 글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 때로는 흐릿하고 지저분한 초고라도 그것이 끊긴 문장이 아니라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믿는 태도, 그게 결국 작가를 만든다.
잘 써진 글만이 내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시 돌아온 글, 끝내 완성한 문장들이야말로 가장 나다운 자국을 남길 때도 있다. 그렇기에 포기하고 싶을수록 다시 펜을 잡고 키보드를 두드려야 한다.
못 쓴 글에도, 나만의 복권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 복권은, 돌아온 사람만이 긁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