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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아도 예찬할 가치가 있다

‘잘 써야 한다’는 강박보다 ‘계속 쓰는 나’를 선택하는 법

by 윤채



'미완벽'이라는 이름의 찬란한 선언




"지금 이 글을 써도 괜찮을까?"



글을 쓰다가 멈칫할 때, 내 안에서 튀어나오는 질문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쓴 글의 완성도가 의심스럽고, 방향이 흔들릴 때가 있다. 심지어 누가 볼 것도 아닌데, 이대로 두면 부끄러울 것 같은 문장도 더러 존재한다. 그런 의심은 종종 악마처럼 쓰기를 막는다.



"이런 글은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이 문장이 뭐가 대단하다고?"



이런 목소리가 들릴 때일수록 되물어야 한다.



"완벽하지 않으면, 진짜 가치가 없는 걸까?"



완벽하지 않은 글을 쓰는 일은 어쩌면 불안과 친해지는 일이다. 제대로 써야만 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대부분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좋은 출발이지만, 그것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한 걸 잃는다. 바로 '계속 쓰는 나'라는 존재 자체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완벽주의(perfectionism)가 창의성과 행동 지속성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본다. 특히 자기비판형 완벽주의는 글쓰기와 같은 창조적 작업에서 "쓰기 전에 미리 판단하고 멈추는" 경향을 유발한다. 이는 인지 회피(cognitive avoidance)로 연결되어 시작 자체를 회피하거나 자주 중단하게 만든다.



실제로 창작 활동은 두뇌의 '탐색 모드(exploratory mode)'를 활성화해야 유지된다. 이 상태에서는 오류를 허용하고 새로운 연결을 시도하며 전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반대로 '판단 모드(evaluative mode)'가 너무 앞서면 뇌는 위험 신호로 해석하여 행동을 억제하게 된다.




222893fgsdl.jpg Reading at lamp light_Delphin Enjolras (French, 1857-1945)



심리학자 폴 휴이트와 고든 플렛(Gordon L. Flett)은 그들의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완벽주의는 개인의 동기를 방해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키움으로써 자기표현의 흐름을 끊어버릴 수 있다." (Hewitt & Flett, 1991)



글을 끝까지 써본 사람은 안다. 잘 쓴 글보다 끝까지 쓴 글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또한, 심리언어학에서는 독자가 글을 기억하는 핵심 요소로 ‘문장의 정교함’보다 ‘감정의 흐름’과 ‘문맥적 연결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 즉, 어설픈 문장도 감정과 진심이 담겨 있다면, 독자는 그 글에 몰입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 글, 아직 덜 완성된 것 같아."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서 더 예찬할 가치가 있어."



왜냐하면 미완성일지라도 지금도 여전히 ‘쓰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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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더라도, 끝까지 쓰고 싶은 그 마음은 좋은 글로 이어진다. 그 마음 자체가 예찬받아 마땅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그 예찬은 언젠가 당신이라는 존재에게로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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