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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Oct 28. 2023

내가 꿈꾸는 노년이란?

목표가 있다면 그에 걸맞은 마지막 모습이 그려지는 것이다

짧디 짧은 우리 삶


주변에 늙은이들을 숱하게 마주친다. 그들은 이방인, 낯선 타자이면서 내 모습이기도 하다. 물론 지금의 나와는 차이가 있다. 나는 아직 늙지 않았고 어느 한 군데 아픈 데도 없다.


나는 내가 이제는 더 이상 젊지만은 않다고 느낀다. 몸은 예전만 못하고 체력은 쉽게 방전되며 활력도 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춰 보자면, 주름살이 보이고 탄력을 잃은 것이 뚜렷하다.


물론 다행히 내가 노안은 아니다. 머리숱도 아직은 많고 이도 성성하다. 나는 여전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수시로 점검하고 확인하고 안도한다. 늙는다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어떤 모습일까? 자못 궁금해진다. 60살이 된 나, 70이 된 나, 그리고 80에 다다른 나 말이다. 씁쓸하지만 나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타인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친구들은 몇 명이나 남아 있을까? 내 아이들은 제대로 제 자리를 잡았을까?


철학과 역사, 문학 등을 닥치는 대로 읽어 왔는데, 그럼으로써 나는 스무 살의 나보다 이만큼 성장했다고 확신하는데 살펴보자면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더 멀다. 그러한 체감은 나 자신을 두려움과 불안으로 몰아넣곤 한다. 이대로 삶이 끝나 버린다면 어떡하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삶을 끝내야 할 운명이라면?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그래, 난 단 하루도 빠짐없이 그 말을 되새겼다. 오늘 죽을지도 몰라, 그 마음으로 순간에 매달려 왔다. 초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챙기고 실천했다. 한다는 것,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쓰고 벽을 무너뜨리고 수레를 밀고 나아가야만 나는 1 밀리미터쯤 자랄 수 있다.


후회는 없니?


다행히 그렇게 살아온 덕분에 내 삶의 지도에 후회란 점은 없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더 잘해 볼 수는 없다는 의미다. 나는 삶 속에서 닥쳐오는 시험대 앞에서 대체로 물러서지 않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삼아 싸우고 부딪히고 밀어보려 안간힘을 썼다. 상처와 고통스러운 기억이 남게 됐고 그만큼 배울 것들이 쌓였다. 그러니, 후회랄 것이 별로 없다. 책을 읽으며 내 생각은 어떤지 수없이 자문해 봤고 그래서 나름의 주관성이 생겼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말하고 글을 썼다. 가만히 숨죽여 있고 숨어 있으면 나 자신은 자연의 돌과 다름없는 것에 불과하나 일어나서 한 걸음 내딛고자 하는 자는 바람을 맞고 비를 맞는 법이다. 그리하여 나는 더 단단해졌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지금까지 쌓아 온 것들을 차분히 정리하는 것이리라.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너저분하게 벌린 것들은 번호표를 붙여 순서 대로 질서를 부여해야 한다. 나는 지금의 상태로 20년을 더 갈 수 있으리라고 예견한다. 그 이후엔 힘과 리듬을 지금처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것을 할 수 없으므로 서열을 매겨 가장 중요한 것들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나는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 글을 쓰고 말을 하고 강연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매일매일 나 자신을 수정하고 다듬어나가야 한다. 노년이 되어도 그러한 과정을 멈추고 싶지 않다. 마치 방이 깨끗이 치워지는 것처럼, 지적 과제들을 흔들림 없이 수행해 말끔하게 정돈된 형태로 그것들을 마무리하고 싶다. 멋진 신사가 되고 싶다. 사랑하는 연인을 곁에 두고 싶다. 아이들이 제 자리에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어느 날, 낙엽이 떨어지듯 고요하게 땅에 묻히고 싶다. 열심히 살았고,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살겠다 할 만큼 성실하게 노력을 멈추지 않았어, 이젠 그만 쉬고 싶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에 입 맞추고 포옹하며 작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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