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아이의 멘토가 되어야 하는 이유

by 김정은



"있는 힘을 다해 내 아이를 축복하라!"


"내 아이가 나와 함께 하게 된 것을 신께 감사하자!"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아이였다. 정신을 집중해 돌이켜 보면, 우린 삶 속에서 저마다 여러 유형의 안내자들, 나침반, 생의 표지가 될 만한 인물을 만났다. 그들과의 관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걸어온 곳이 바로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장소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 아이, 우리 아이는 어떤 사람, 어떤 나침반, 어떤 안내자를 만나게 될까? 아이의 성장과 발달, 그리고 이른바 성공적인 삶을 위해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 아니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인간은 유전자뿐만 아니라 재능, 성향, 특기, 기호 등 모든 것이 다르다. 모든 인간은 개별자이자 우주이며 별이다. 아이들은 살면서 크게 두 가지 형태의 교육을 받게 된다. 하나는 학교와 같은 사회 시스템을 통해서,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학교 이외의 기관, 사람, 사물을 통해서. 학교는 같은 것을 교육시키고 아이들을 평준화시키며 고만고만한 인간으로 길러내도록 고안되었다. 학교는 아이의 개성이나 독특함, 특별함을 존중하거나 길러주는 데 취약한 기관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서 자신의 개성과 특별함, 취향, 능력을 찾고 키워낼 수 있는가?


교육은 평균적이고 전통적이며 기획되고 고정된 것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개별자로서 재능, 아이 각자가 지니고 있는 다이아몬드를 찾고 이를 발굴하고 세공해 냄으로써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나 학원 같은 보편적인 교육기관 이외의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진정한 나침반, 능력을 갖춘 안내가가 필요하다. 즉, 멘토의 역할이다.



영화 '샤인'의 인물, 데이빗 헬프갓



영화 '샤인'에는 두 가지 형태의 어른(멘토)이 등장한다. 한 명은 주인공 데이빗의 아버지이고 다른 한 명은 음악 선생이다. 데이빗의 아버지는 자녀 교육에 관한 한 고지식하고 막무가내인 데다 강압적인 마인드를 가진 아버지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좁은 틀 안에 데이빗을 끼워 맞추려 하고 아이의 자율성이나 자유, 주체성 따위는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 음악 선생은 데이빗이 지닌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가 가진 다이아몬드 원석을 신중하게 세공해 특별한 보석으로 키워내고자 제안을 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아버지 때문에 결국은 정신질환을 앓게 되고 천재성을 간직하기만 한 채 노년에 이르는 비운의 데이빗 헬프갓을 조명한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과 자유를 맛보다


부모 혹은 어른 혹은 선생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결과적으로 한 아이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우린 좋은 아빠(엄마)가 될 수도 있고 나쁜 아빠(엄마)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좋은 아빠(엄마)와 나쁜 아빠(엄마)에 대한 정의부터 내리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어쨌거나 그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샤인' 속 데이빗의 아버지처럼 아이를 강압적인 방식으로 기르며 끝내 좋지 않은 결말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부모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고 반대로 아이가 지니고 태어난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굴해 내는 데 도움을 주고 아이를 옳은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될 수도 있다.


자유, 책임, 권리, 행복, 사랑, 도덕. 나는 아빠가 된 이후 아이 교육(아이의 멘토 되기)에 관한 한 이 여섯 가지를 바탕으로 판단해 왔다. 교육에 있어 이러한 요소 간 균형은 무척 중요하다. 아이가 자신의 꿈을 스스로 찾고 이뤄가며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포용하고 고난을 극복하는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 아빠(엄마)는 최선의 교육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보낸 세월은 헛된 것이 아니라며, 늦은 나이에 학문을 시작한 유명한 학자들을 예로 들면서 지금부터라도 고전어 공부를 시작하라고 충고해 주는 편지였다. 나는 그 편지를 받고 너무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다. 깊은 회한과 갈등에 사로잡혀 있던 나에게 새로운 결심을 굳히게 만든 편지였다. 나는 곧 사업가 수습과정을 그만두고 바이마르로 떠났다. 그때가 1807년, 내 나이 19세가 되던 해였다.

-쇼펜하우어가 31세에 베를린대학에 제출한 자기소개서 중 (쇼펜하우어, 사랑은 없다, 16p)


아버지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인류는 위대한 철학자 한 명을 만날 수 없게 되었을 수도 있다. 10대의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아버지 밑에서 사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심으로써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철학의 길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쇼펜하우어가 지닌 재능과 잠재성 따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신의 관점과 경험 하에서 응당 해야만 하는 것을 억압적으로 강요하는 선택을 했다. 그의 교육엔 자유와 권리, 행복이란 요소가 빠져 있다. 물론 쇼펜하우어가 아버지 바람 대로 사업가가 되었다고 해도 그 삶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쇼펜하우어 역시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될 수 있는 한 최고의 모습에는 이를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쇼펜하우어 자신에게나 인류에게 있어서도 좋은 선택은 아니리라.


어떤 부모의 길을 선택하든 자유이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첫째 내 아이가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축복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동시에 그 아이가 내게 와서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경험을 공유한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회이자 행복인가, 하는 점이다. 이것은 실제로 특별한 경험이자 신이 주신 선물이다. 부모는 이 선물, 이 특별한 경험을 제대로 올바르게 받아들여야 하며 자녀를 갖게 됨으로써 가지게 된 책임을 잘 수행해야 한다. 둘째는 내 자녀가 그 스스로 될 수 있는 한 최고의 모습(존재)에 이를 수 있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연 아빠(엄마)로서 나 자신이 내 자녀에게 안내자 역할, 나침반 역할, 궁극적으로 멘토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가?


1900년 이후 100년 간 변한 것보다 2000년 이후 20여 년 동안 인류의 생산성, 기술, 과학 역량은 백 배 이상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것으로써,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향후 인류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엄청난 변화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란 점이리라. 유연하고 적응력을 갖추었으며 이 사회에 쓸모 있는 인간으로 키워내야 하는 의무가 부모에게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짐을 받아들인다면 스스로 더 나은 부모가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즉 멘토가 되어 주어야 한다.


아빠 혹은 엄마가 아이 인생에 있어 좋은 멘토라면, 아이의 입장에서는 그보다 더 큰 행운은 없다고 단정할 수 있다. 삶이란 높은 허들을 끝도 없이 (아마도 삶의 마지막 그 순간까지) 계속해서 넘어야만 하는 게임이다. 때로는 불공정하고 불의하며 잔인하기까지 한 이 게임에서 우리 아이들은 생존하고 성장하며 무엇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스스로 짊어질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로 성장해야만 한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패러다임 속에 살아갈 우리 아이들을 20세기의 고정된 교육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우리와는 질적으로 다른, 넘기 힘든 새로운 허들을 넘으며 살아가야만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 오랜 고민의 결과물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 특별히 아빠들에게 보내는 제안서이다.


내 아이의 특별한 멘토가 되고자 하는 모든 아빠(엄마)는 이 책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물론 이 세상은 조언과 가르침, 정보를 주고자 해 안달이 난 이들로 가득하다. 이것이 정답이야,라고 외치는 마술사들과 사기꾼, 업자로 넘쳐난다. 그만큼 현명함과 지혜를 갖고 좋은 정보를 걸러내고 교육의 지침이 될 만한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줄곧 이것이 쓰레기는 아닌지 자문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현직 아빠로서 이것이 정말 다른 아빠들(엄마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가진 것들 중에 선별하고 또 선별해 가장 중요한 지침만을 엄선해 냈다. 이 책은 그러한 나의 염려와 조바심, 걱정,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검열의 결과물이다.


1762년 발행된 장 자크 루소의 '에밀' 표지


아버지야말로 그 어떤 선생보다도 훌륭한 교사이다. (중략) 생각해 보면 교사란 얼마나 숭고한 영혼의 소유자인가? 그런 사람이 있을까? 하인이 주인에게 맞도록 훈련돼야 하듯 학생에 맞도록 교육받은 교사가? 아이에게 감명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나는 그런 사람을 알지 못한다. 타락한 이 시대에 그만한 덕을 쌓은 영혼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설령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교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아버지라면 자신이 직접 교사가 되는 것이 좋다. 그 편이 훨씬 더 수월하다. 자연은 이미 당신의 산물인 자식을 반쯤은 가르쳐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루소의 '에밀' 중 '아버지가 가장 좋은 교사다' (에밀, 26-28p)


루소가 말한 것처럼, 우린 매일 초심으로 돌아가 내 아이의 교사가 되어야 한다. 아이의 훌륭한 멘토가 되기 위해 아빠가 먼저 노력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소중한 보석을 다룰 땐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아빠는 나약하지 않고 강하며 어리석지 않고 지혜로워야 한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하나가 아이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숙고하고 또 숙고해야만 한다.


멘토가 되기를 열망하는 세상 모든 아빠들에게.


12층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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