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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May 21. 2024

두 딸과 자전거 타고 한강 가는 아빠

두 딸에게 자전거를 사 준 것은 조금 오래된 일이다. 물론 처음 사 줄 땐, 같이 타야지, 하는 마음도 있긴 했다. 그러나 생각은 바뀌는 것. 바쁘고 지치고, 귀차니즘에 빠져 단 한 번도 그러질 못했다. 하하하. 보통의 아빠 모습, 도망가고 싶어 하고, 숨고 싶은 아빠의 마음으로 !


그러다가, 더 이상 도망갈 데가 없어졌다. 둘째 딸이 아빠를 졸랐다. 아빠, 자전거 타자.


그래, 가자.


해서, 첫 날은 그냥 동네 주변 몇 바퀴를 돌았다.


그만 갈까?


아이는 순순히 내 말을 따랐다. 휴 살았네!


며칠 뒤 주말에, 둘째 딸이 다시 졸랐다. 


아빠, 자전거 타야지.


안 타면 안 될까?


안 돼.


안 타고 싶은데. 아빠 힘든데. 쉬고 싶은데.


그냥 계속 쉴래? 아님 딸을 고를래?


당연히 아빠는 딸이지.


그럼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가자.


하여, 아이에게 이끌려 다시 자전거를 타게 됐다. 우리 두 모녀는 좁은 엘리베이터에 자전거를 간신히 싣고 1층으로 내려왔다. 


어디 가지?


오늘은 좀 더 멀리 가고 싶어.


그래?


응.


한강 갈까?


좋아!!


내가 왜 그 말을 했을까. 물론 나는 그 말을 내뱉자마자 후회했다. 그러나 어쩌랴. 게다가 내 둘째 딸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내가 뱉은 말을 실천하지 않으면, 밤새 우는 아이다. 아, 그런 상황은 끔찍하다. 에라 모르겠다, 가 보자, 한강!


관악구 집에서 한강까지 가는 경로는 몇 개가 있으나, 나는 자전거 길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 길의 유일한 장점은 안전이다. 하지만 지루하고 너무 멀다. 나는 다소 안전하지는 않으나, 짧고 모험 가득한 다른 루트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좁은 인도, 공사장, 건널목 수십 개를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불안전함이 있으나 자전거 타는 맛은 있는 길이다.


나는 마치 소대장이 훈련병을 이끌고 산악훈련을 하듯이, 앞장서서 뒤에 따라오는 둘째 딸을 지휘하며 길을 내달렸다. 둘째 딸은 얼굴이 시뻘개질 정도로 힘들어하면서도 지친 내색 없이 잘 따라왔다.


이 녀석, 의지가 보통이 아닌 걸?


딸의 모습을 보며,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내 생각보다 더 컸구나. 이 녀석, 든든하네.






우리는 마침내 여의도에 도착했고, 여의도공원을 가로질러 한강에 다다랐다. 딸내미는 나름대로 무언가 해냈다는 느낌을 받는 모양이었다. 아빠로서 이 녀석, 대견했다.


한강을 바라보고 5분쯤 쉰 뒤 다시 되돌아오는 여정에 올랐다. 내가 다니는 회사 앞 편의점에서 물을 나눠 마신 뒤, 자전거를 내달려 몇 개의 오르막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왕복 2시간 반에 이르는 힘겨운 여정.


너무 보기 좋은데?


아내는 나와 둘째가 한강에 다녀온 것을 듣고는 기뻐했다.


나는 죽는 줄 알았어.


나는 토로했다.


그래도 너무 보기 좋아.


아내는 말했다.


아빠, 다음주에 또 가자. 그땐 언니도 같이 가자.


어.... 어?


일주일에 한번쯤은 괜찮을 것도 같긴 하다. 물론 나에게는 지옥 같은 일인 것이 사실이다. 주말은 누구나 쉬고 싶지 않은가? 그러나 하고 나면 뿌듯하다. 아이와 깊은 유대감을 쌓을 수 있고, 추억 한 페이지를 대충이나마 만들어낼 수 있으니, 괜찮은 일이다. 내 몸의 피로와 게으름만 극복할 수 있다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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